무안군청 식량정책팀장 이재광

[무안신문] 농사짓는 사람들에게 있어 일 년 중에서 가장 기다려지는 순간이 수확 앞둔 가을 들판을 바라보는 때가 아닐까? 하지만, 들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표정이 그다지 밝지가 않다. 되레 수심만 가득하다.

금년산 공공비축 매입 물량과는 별도로 구곡을 포함 45만 톤의 쌀을 시장에서 추가격리를 하겠다는 정부발표가 있었으나 이를 받아들이는 최 일선에서는 무덤덤할 뿐 와 닿질 않는다는 거였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격리를 하겠다는 지난해산과 올해 산 45만 톤 쌀의 소유권만 농협이나 민간 RPC업자에서 정부로 바꾸는 ‘시장격리’ 라는 봉인(?)조치로 쌀값이 얼마나 지지가 될까 하는 우려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쌀값을 안정시킬 수 있는 근본적인 해법은 없는가? 바꿔서 얘기하면 농촌 민심을 다잡을 수 있는 대책은 요원하다는 것인가? 결론을 말하면 쌀 수급물량을 조절하는 것이다.

쌀 소비량은 해마다 줄고 있는데, 생산량은 그대로이거나 소비량에 비해 감소추세가 더디다면 재고량이 쌓이는 건 당연한 이치이다. 쌀 소비를 확대해야 한다는 여론과 함께 지자체마다 다양한 시책들을 내놓고 있다.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쌀 소비를 포함한 이런 시책들이 일회성 이벤트이거나 단발성이 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밀가루에 길들여진 입맛을 예전으로 다시 돌려놓는 일이 우선해야 되지 않을까? 쌀 소비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만 하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일선 지자체 농정부서의 식량정책을 맡다 보니 쌀 얘기만 나오면 더 쌀쌀맞게 와 닿고 머리가 지끈 지끈거린다. 쌀 적정(?)생산이라는 가늠하기도 어려운 목표를 설정해 놓고 벼 재배면적을 줄인다고 발버둥을 쳐보지만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심지어는 두어 해 전 중앙 정부에서 중단한 벼 대신 논에 타 작물을 심는 농가에 보상금을 주는 사업을 다시 시도했지만 파종에서부터 수확까지 기계화가 가능한 벼농사를 견줄 만한 농사는 없다는 것이다.

“쌀 생산비와 생산량을 줄여라!” “브랜드 쌀을 만들어라!” 단순히 쌀을 생산하는 것으로 고민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생산농가의 소득까지 염두를 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다.

내년도 분질미 생산단지 조성사업에 참여하겠다는 신청자를 대상으로 발표평가를 하는 자리에 다녀왔다. 들녘경영체로서는 규모를 갖춘 관내 모 농업법인에서 이번 공모사업을 신청해서 예비심사 통과 후 최종 발표평가를 하는 자리였다.

사실, 농업인이나 농업생산자 단체들이 중앙의 공모사업에 참여를 하고 싶어도 지자체의 협조가 없거나 소극적이면 추진이 어렵다. 또 지자체에서 이런 사업들을 끌어와 변화를 주고 싶어도 농업인이나 생산자단체에서 하고자 하는 의욕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갑자기 이뤄진 출장일정에 의거 정부 세종청사까지 올라가는 길이지만 가는 내내 머릿속에는 남아도는 쌀로 가득 별의별 생각이 다 드는 것이다. 공무원 한사람, 선도농업인 한사람, 정치인 한사람이 고민해서 해결될 일이라면 행복한 고민이기에 찾아서라도 하고 싶을 텐데 그렇지 못하니 그럴 것이다.

분질미 생산은 밀 수입의존도를 낮추고 쌀 수급 과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정부 방안으로 2027년까지 전국에 200개의 생산단지를 조성하여 20만 톤의 분질미를 생산한다는 것이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쌀 과잉생산 문제와 식량안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획기적인 해법임이 분명해 보였다.

부랴부랴 윗 분께 평가에 대한 일정을 보고 드리러 갔는데, 와 닿는 얘기를 해 주시는 것이다. “다른 때도 아니고 들판에서 모를 심고 벼를 수확하면서 일회용 포장용기에 배달되어온 밀가루음식을 시켜 먹는 모습이 너무도 자연스럽더라”, “그러면서 쌀이 남아돈다고 목소리를 높이면 소비는 누가 할 것이냐?” 는 것이다. 충분히 공감이 가는 얘기였다.

편이성만 추구한 나머지 우리 쌀이 아닌 수입 밀을 소비하면서 한 끼 식사로 지출되는 쌀값(300원)을 얘기한다는 것은 분명한 모순(矛盾)이다. 그래, 밀가루 음식에 길들여진 입맛을 쌀가루로 만든 음식으로 다시 바꾸게 할 수만 있다면?

밀가루 대신 쌀가루. 분질미를 생산하는 과장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또, 가공과정도 결코 호락호락하지마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무엇인가는 해봐야 하지 않을까? 분질미(가루쌀) 생산을 위해 팔을 걷어붙인 전국의 39개 식량작물 들녘경영체 대표들에게 감사와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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