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광 무안군청 식량정책팀장

{무안신문] 벌초(伐草)란 백중과 추석사이에 조상의 무덤을 찾아 여름동안 자란 풀과 나무를 베어내고 무덤 주위를 깨끗이 정리하는 세시 풍속 중 하나이다.

예부터 한식 즈음에는 무덤에 떼를 입혀 잘 가다듬는 사초(莎草)를 하고 가을 기운이 느껴지는 처서 즈음에는 벌초를 해 왔다. ‘제사 안 지낸 것은 남이 몰라도 벌초 안한 것은 남이 안다’는 속담이 있듯 벌초는 자손의 도리라고 생각하며 정성을 다해왔다.

이재광 무안군청 식량정책팀장
이재광 무안군청 식량정책팀장

날로 치솟는 물가 폭등 속에 더 이상 졸라매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허리띠를 붙잡고 여기저기서 불만을 성토하며 못마땅한 감정을 드러내는 중에도 추석명절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벌초와 이른 성묘에 나선 차량행렬이 러시를 이룬다.

연례행사처럼 해왔던 풍속을 당신들의 세대에서 그만 둘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도회지에 나가있는 자식들은 불러들인다. 또, 자식들도 지금까지 해왔던 일이기에 열일을 재껴두고 동참을 하는 것일 것이다.

이런 벌초 풍속도 마음에서 우러나와 하는 일이 아니고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숙제(?)처럼 여긴다면 벌초는 더 이상 세시풍속이 아닌 짐인 것이고, 벌초(罰草)가 될 것이다.

그렇다보니 요즘은 매장(埋葬)보다는 화장 후 납골당에 유골을 안치하거나 수목장(壽木葬)이나 산분장(散粉葬)이 늘어가고 있는 추세이다. 사실, 매장 후 후손들이 돌보지 않아 방치된 채 골총(古塚)으로 남아 있는 묘지들을 종종 보게 되는데, 흉물스럽고 볼썽사납다.

지난 주말 벌초를 위해 귀향을 했다. 8월에 벌초하는 사람은 자식으로 치지 않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아니라도 시제를 모시는 윗대 할아버지들이 모셔진 산소에 대한 벌초작업을 매년 이맘때 해오고 있다.

손이 귀한지라 많지 않은 친지간인데 처음에는 바쁘다는 이유로 연례(?)행사에 빠지는 사람이 있다 보니 썩 좋은 분위기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다들 나이를 먹어 간다는 것을 아는지 8촌 이내 친족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한 자리에 다 모이게 된다.

사실, 집안의 어른이시던 선친께서 살아 계실 때 파묘(破墓) 후 납골당에 안치하자는 얘기가 나왔었다. 하지만, 돌아가신지 4년째가 되지만 선친의 성격이 워낙에 완고해서 그 일은 매듭을 짓지 못했는데, 다시 진지하게 고민을 해봐야 할 시점이 온 것이다.

작년까지는 대행업체에 맡겨 벌초를 하자는 얘기가 나왔었는데, 올해는 지금과 같은 넓은 묘역은 관리가 어려우니 봉분을 없애고 평장(平葬)묘로 모시자는 것이다. 물론, 수목장이나 산이나 강․바다에 유골을 뿌리는 산분(散粉) 장은 시기상조일 것이다.

문제는 우리 세대에는 이런 문화가 지속이 되고 있지만, 우리가 가고 후대사람들이 이런 모습을 얼마나 이해를 하고 과연 이어가느냐는 것이다. 더군다나 핵가족화로 자식들이라고 해봐야 아들이나 딸 하나가 전부이거나 딸만 있는 집들이 많다보니 그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뭐든 앞을 내다보고 고민을 해봐야겠지!

코로나 확진이후 후유증 여파인지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감지하면서도 처삼촌 묘에 벌초하듯 해선 안 되는 것이 벌초이기에 여름내 수북하게 자란 큰 풀을 쳐내고 다시 작은 풀들을 베어낸 후 갈퀴질을 야무지게 끝내놓으니 참 깔끔하다.

그래, 이곳에 누워 계시는 조상님들께서는 후손들이 이렇게 지극정성을 다해 당신들의 안식처가 깔끔하게 정리가 된 모습을 보신다면 흡족해 하실까? 물론,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모를 일이다. 하지만, 후손된 도리를 다한 내 자신이 왠지 뿌듯하고 안도감을 느끼면 그만 아닌가?

피부에 와 닿은 가을 기운에 갑자기 달달한 믹스커피 한 잔이 당기는 월요일 아침이다. 몸은 비록 천근만근 무겁기만 해도 기분만은 최고인 한 주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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