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신문]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랑/겨울은 아직 멀리 있는데/사랑할수록 깊어가는 슬픔에/눈물은 향기로운 꿈이었나~’

박석원(전 무안교육지원청 교육장)
박석원(전 무안교육지원청 교육장)

계절병인가. 가을이 되면 나도 모르게 중얼거려지고 듣고 또 듣게 되는 노래. 가을은 그런 계절이다. 떠나보내야 하는 이별 앞에 가슴이 아파오는 계절.

패티김의 부드럽고 깊이 있는 목소리가 마음을 적신다.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랑” 툭 던지는 노래의 첫 소절에 언젠가 걸었던 산사(山寺)의 깊은 가을이 내게로 다가와 휑한 가슴에 소슬한 바람을 일으킨다.

가을의 끝자락, 늦은 오후 천변공원을 걷는다. 스산한 바람에 서걱이던 마지막 한 잎마저 내려놓고 홀가분해진 나무, 나무들.

무슨 미련이 남아있는가. 이름만큼이나 덩치가 큰 대왕참나무만이 꼬깃꼬깃 구겨진 휴지 같은 갈색잎을 매단 채 바람과 맞서고 있다.

“내려놓아라. 왜 떠나보내지 못하고 보듬고 서 있는가.”

물어도 대답 없는 대왕참나무를 바라보다 문득 당나라의 선승 조주선사와 엄양존자의 문답을 생각하기에 이른다.

어느 날 탁발승 엄양존자가 선물을 갖춰오지 못하고 조주선사를 친견한 자리에서 “하나의 물건도 가져오지 않았을 때는 어찌 합니까?” 하고 물으니, 조주선사는 “방하착(放下着)하라”고 답한다. 집착하지 말고 내려놓으라는 말씀. “한 물건도 갖고 오지 않았는데 무엇을 방하하라는 말씀이신지요?" 그럼 “착득거(着得去)하시게.”라고 했다고 한다. 내려놓지 못하겠거든 갖고 가라는 말씀이다.

수행자인 엄양존자가 내려놓지 못하고 집착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깨달음을 향한 조급한 마음쯤이 아니었을까.

붓다는 물질이든 마음이든 집착하는 것은 괴로움을 낳는다고 하였다. 하지만 세속에 사는 우리들은 내려놓기보다는 움켜쥐기에 열중하며 사는 것이 사실이다. 돈, 명예, 지위 같은 것들을 얻기 위해 평생을 동분서주하며 사는 것이 인생살이 아니던가. 열심히 사는 것이 잘못일 수는 없겠지만 자신의 능력 이상의 것을 탐하거나 옳지 못한 방법으로 이를 취하려 애쓰는 것은 집착이리니 어찌 괴로움이 따르지 않으리오.

삶의 최종적이고 가장 강한 집착은 수명(壽命)에 대한 것이 아닐까. 나이가 들어가니 어떻게 살다 갈 것인지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다. 한때 99팔팔23死라는 말이 회자된 적이 있다. 99살까지 팔팔하게 사는 것은 언감생심 바라는 바가 아니지만 2,3일 아프다 저 세상으로 가는 것만큼은 욕심을 내고 싶다. 선조들은 이처럼 제 명대로 살다가 편안히 죽는 것을 오복 중의 하나인 고종명(考終命)이라 하였다.

행인지 불행인지 이제는 의학의 발달로 고종명도 쉬운 일이 아닌 것이 되었다. 얼마 전 우리 부부는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면 보건소에 가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기로 하였다. 산소마스크를 쓰고 링거줄을 주렁주렁 매단 채 누워있다 가고 싶지는 않아서이다. 의학적인 도움으로 생명을 부지하는 것은 무위자연사(無爲自然死)를 거스르는 일. 갈 때가 되면 가게 내버려 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산뜻하게 떠나는 것도 장수시대의 크나큰 과제가 되고 말았다.

마지막 잎새 마저 떨쳐버린 깔끔한 모습의 나목들과 마른 잎들을 붙들고 서 있는 칙칙한 모습의 대왕참나무를 바라보며 내 삶의 마지막 모습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목숨에 대한 방하착, 때가 되면 딴 짓 하지 않고 미련 없이 떠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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