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신문]

정기연(전, 영암신북초 교장, 몽탄출신)
정기연(전, 영암신북초 교장, 몽탄출신)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 친분이 두텁지 않을 경우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제자 경옥을 만나 건 56년만이다.

필자는 추석을 앞둔 지난 9월12일(일요일) 고향인 몽탄면 선산에 있는 부모님 산소를 찾아가 벌초를 마치고 광주로 돌아오기 위해 몽탄역을 찾았다. 7∼80년대만 해도 몽탄역은 통학생을 비롯해 광주, 서울, 목포 등지를 오고가는 교통 요충지 중 하나로 사람들이 붐비는 역이었지만 지금은 역무원이 없는 간이역이다. 때문에 교통 이용자가 거의 없다.

이날 필자는 등산복 차림에 배낭을 메고 막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젊은이(?)라면 그렇지만 나보다 더 젊어 보인 젊은이(?) 한 사람이 막차를 타기 위해 대합실로 들어섰다.

가방도 없이 빈손이었고 피곤해 보였다. 잠시 후 젊은이는 “어르신은 무슨 일을 하고 가십니까?” 젊은이가 물었다. “조상의 산소 벌초하고 갑니다.” “저도 조상님 산소 벌초하고 갑니다” “하신 일이 같은 조상에 효도하는 일이구먼요” 함께 웃었다.

“어르신은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83세입니다” “71세인 저도 예초기로 벌초하는 일이 힘들었는데 아주 힘드셨겠습니다. 어르신은 고향이 어디 십니까?” “ 몽탄 사천리입니다” “저는 몽탄면 내리 남천입니다.” “그렇다면 사천리가 고향이신 정기연 선생님을 혹시 아십니까?” “제가 정기연입니다.”

그러자 젊은이는 “선생님의 제자 서경옥입니다”라며 정중하게 절을 하는 것이었다.

60년대 필자가 몽탄초등학교 교사로 근무 중 6학년 때 담임한 제자 서경옥을 56년 만에 만난 것이다. 그것도 두 사람 모두 나이가 지긋이 들어 조상의 산소에 벌초하고 가는 작업복 차림으로 말이다.

“선생님 한번 뵙고 싶었습니다.”

담소를 한참 나누는 사이 오후 6시 51분 막차가 도착했다.

승차 후에도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제자의 안부를 물었고 지난날 살아온 이야기도 들었다.

제자는 몽탄초등학교 졸업(65년) 후 목포의 한 중학교로 진학했다가 부친의 직장 따라 서울로 이사 해 그곳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제대 후 경찰시험에 합격해 경감으로 정년퇴임 하고 지금은 제2의 직장에서 근무한다 했다. 서울에서 살고 있지만, 해마다 고향에 들러 산소 벌초를 하고 있다고 했다.

필자가 살아온 이야기를 했다.

필자는 몽탄초를 거쳐 65년도에 현경초, 70년도에 광주시로 전근해 10년 근무를 마치고 80년도에 신안군으로 옮겨 교감 승진 후 84년 영암군, 완도군을 거쳐 나주시에서 교장으로 승진했다. 여수 소라서초 교장, 영암군 신북남, 신북초, 곡성 오산초 교장을 거쳐 2001년 43년의 교직을 마치고 정년퇴임했다. 그 후 호남직업학교에 입학하여 6년간 직업교육도 받았다. 지금은 여러 언론매체 논설위원으로 연간 200여 편의 칼럼을 쓰면서 고향 몽탄에 유실수를 가꾸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린 송정리역에서 내려 인근 전주식당으로 갔다. 식당의 전문 메뉴인 소머리 국밥을 주문하고서야 마스크를 벗은 얼굴로 스승과 제자는 대면했다. 제자는 필자를 껴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초등학교 때도 키가 컸는데 어른이 되어서도 키가 크고 건강했다. 식당 벽에는 김대중, 나훈아, 황석영 등 많은 사람이 식객으로 다녀간 사인이 벽을 메웠다.

음식 주문을 해 놓고 제자는 잠깐 다녀올 데가 있다며 밖에 나갔다 와서 소머리 국밥을 같이 맛있게 먹었다. 식사가 끝난 후 제자는 9시 KTX 열차를 타고 가야 하기에 시간이 있어 먼저 선생님을 전송한다며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입구에서 헤어지면서 악수를 하며 내 손에 무언가를 쥐어 주었다. 구겨진 돈이었다.

“카드만 있고 현찰이 없어 잠깐 은행 CD기를 들렸다고 했다. 오랜만에 만난 스승님께 대접을 못 해 선물 값으로 드립니다. 건강하게 오래 사십시오. 선생님!"

교직자로써 보람과 함께 가슴에 무언가 먹먹함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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