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신문]

박금남(발행인)
박금남(발행인)

경북 예천군 지보면 대죽리 한대마을에는 언총(言塚)이 있다고 한다. 말(馬)의 무덤이 아니라, 사람들이 말(言)을 묻은 무덤이다. 

네이버 등에 따르면 언총은 400여 년 전, 조선시대 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마을은 여러 문중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으로 사소한 말 한마디가 씨앗이 돼 문중 간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다. 이에 해결책을 모색하던 중 어느 날 길을 가던 나그네가 쾌도난마(快刀亂麻)처럼 제안한 해법이 말무덤이다. 

나그네는 마을을 둘러싼 야산이 개가 짖는 모습과 비슷해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래서 싸움의 발단이 된 거짓말, 상스러운 말, 가슴에 상처가 되는 말 등을 사발에 모아 구덩이에 묻으라고 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의 말대로 따랐고 이후 마을은 평화로워졌다고 한다.

내년 대통령 선거(3월9일)와 지방선거(6월1일)를 앞두고 정치의 시간이 진행 중이다. 언제나 처럼 여야 대권 주자들이 쏟아내는 말은 많지만 국가 비전도, 정책도, 정치철학도 보이질 않는다. 오직 진영 논리와 진보-보수의 프레임 속에 갇혀 있다. 늘어놓은 거시적인 청사진은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뜬구름 잡기다.

정치인의 최대 무기는 말이다. 대권 주자라면 말에 정치 철학, 국가 비전이 담겨 있어야 한다. 그런데 검증이랍시고 아니면 말고식 상대편 중상모략 및 흑색선전 마타도어가 난무한다. 

얼마 전 국민의 힘 홍준표 후보가 윤석렬 후보에게 “거짓말 하는 것을 보니 정치인이 다 됐다”는 말을 했다는 언론보도를 접하고 실소가 나왔다. 정치인들이 거짓말쟁이라는 것을 스스로 자인했기 때문이다. 물론 정치인의 거짓말은 관행이다 보니 새삼 놀랄 일은 아니다.

요즘 대통령이 꼭 돼야만 봉사가 가능할 것처럼 말하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언행을 모습을 보면서 이스라엘의 벤구리온과 아인슈타인이 크로즈업 된다. 
이스라엘이 패망하고 수천 년 만에 불모지 사막에 나라를 세우고 초대총리로 아인슈타인을 선임하려는 계획을 가졌다. 이 소식을 들은 아인슈타인은 “총리는 나보다 잘할 사람은 많지만 물리를 나보다 잘 가르칠 사람은 많지 않다”고 사양했다고 한다.   

이스라엘의 초대 총리를 지낸 벤구리온이 갑자기 정계은퇴 선언을 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고향에서 일할 일꾼이 부족하므로 고향에 가서 땅콩농사를 짓기 위해 총리직을 사임한다”고 했다. 기자가 “농사보다는 총리가 더 가치 있는 일을 하는 자리가 아닙니까?”고 물었다. 그러자 “총리는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은 자리이고 또 누구나 할 수 있는 자리다. 그러나 땅콩농사는 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지 않고 또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어서 나에게는 총리보다 땅콩농사가 훨씬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정치인들의 힘을 볼 수 있는 이야기다.
반면 우리나라 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신뢰를 잃은 도덕성 결여다. 이들의 비도덕성은 청문회 등을 통해 끝을 예단 할 수가 없을 지경을 지겨울 정도로 보았다. 무엇보다 정치인들은 당선되면 국민(군민)을 위한 봉사는 뒷전이고 초청하는 곳만 찾아가 낯짝내고 대접 받는 것부터 배운다. 그리고 불필요한 말을 많이 하고, 예기치 않은 논란을 자초해 편을 가른다. 

세상을 살면서 옳고 바른 삶은 어떤 것을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왔느냐가 더 중요하다. 권력, 재물, 명예 등은 인간 모두가 추구하는 목표다. 하지만 그것도 젊었을 때이지 나이든 사람에게는 과욕이다. 그런데도 이를 내려놓지 못하는 기성세대들의 추태(?) 때문에 요즘 50대 이상 부모 세대들은 젊은이들에게 도매금 ‘꼰대’로 치부를 받는다. 

언총에 버려야 할 말들이 넘쳐나는 요즘 정치인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국립묘지 방문이 바로미터처럼 삼고 있지만 한번쯤 말무덤인 언총도 들러 봤으면 싶다. 아니면 국회 의사당 앞에 언총을 만들어 말의 무게를 느끼는 기회로 삼았으면 싶다. 

민생정치는 국민(군민)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상처를 보듬는 것이다. 

말의 중요성은 모든 사람에게 중요하지만 기초단체장, 지방의원에게 강조도 넘치지 않는다. 따라서 대권 주자나 지방정치 출마를 준비중인 사람들은 말의 무게와 무서움부터 배웠으면 싶다. 말은 한 번 뱉으면 주워 담을 수도, 바로 잡을 수도 없는 부메랑이 되기 때문이다.

한 대마을 언총 주변 큰 돌에 ‘혀 밑에 죽을 말 있다’는 속담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말을 잘못하면 재앙이 되니 말조심하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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