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체육교육에 반평생 바쳐

아무 것도 내세울 것 없이 단지 순수한 열정 하나만 가지고 교육자로서 40년의 길을 걸어왔다는 ‘현 경희대 체육대학원장’고기채 박사. 세월의 연륜은 어디로 갔는지 아직도 젊은 패기와 제자들에 대한 사랑은 젊은이 그대로 였다.

고기채(65)박사는 해남군 화원면 장충리에서 (부)고광민과 (모)김애금사이에서 13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시절 그 고장 교육환경이 열악하여 3차례의 전학을 하면서 힘든 초등학교 시절을 마쳤다.

당시 그의 부모는 교육 열의가 대단해 목포로 유학을 보냈고 자식 공부하는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온갖 노력을 쏟으셨다고 한다. 고기채 박사의 집안은 부모님을 비롯하여 일가 친척 가운데 체육선수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배출해 대대로 운동을 잘하는 집안으로 정평이 났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운동을 좋아했고 기초체력이 튼튼해 운동이 적성에 맞았다고 한다.
고2때부터는 선후배들에게 남은 시간을 활용하여 자신들을 보호할 수 있는 호신술을 가르쳤을 만큼 열정이 대단했다고 한다. 때문에 주위에서는 체육학과를 가면 좋겠다는 권유도 많이 있었다고.

드디어 1958년 그 당시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체육학과가 있는 경희대에 입학을 하게 된 것이다. 학창시절 간부활동을 하면서 그는 전성시대를 맞이하였고 학교에서도 그에 대해 애착을 많이 가졌다고 한다. 총장의 총애를 받던 그에게 군 입대전 장교로 가지말고 한시가 급하다며 일반 사병으로 가서 제대한 후 빨리 학교로 돌아올 것을 권유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 신뢰를 받던 그는 설립자 장학금 제 1호를 받는 영광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런 열성으로 인해 1965년 젊은 나이로 모교 체육학과 교수로 부임을 하게 되었고, 학교에 재직하면서 시간을 쪼개어 고향의 일과 고향사람들의 일이라면 발벗고 뛰었다고 한다.

학생회 관장으로 있을 때는 의과대학 학생을 데리고 고향에 내려가 약 7,8년 정도 동하기 방학동안 무의촌 진료활동을 펼칠 만큼 고향 사랑이 남달랐다고 한다. 그는 제자들을 대학교수로 보낼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는 그는 학자로서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동안 운동선수들을 많이 보살펴 왔는데 그 제자들이 바쁜 중에도 찾아와 존경을 표할 때 세상 모든 것을 얻은 것 같이 기쁘다고 했다. 인성교육만큼은 어느 나라를 불문하고 자신의 제자들 만큼 으뜸이 없다고 자부하는 고 박사.

그런 일들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부인 김학자(59)여사의 숨은 노력 또한 크다. 그의 부인은 약사이면서 고박사 못지 않게 모든 운동을 잘한다고 했다.

고박사는 해남군 향우회 회장과 문태 동문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1997년 문태 동문회 사무실 건립과 문태 산악회를 만들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문태 개교 60회 기념 재경 동문회 장학재단 설립을 추진 중에 있다. 이 장학금은 모교 재학생, 후배, 선생님들께 전달될 것이라고 한다. 앞으로 몇 년 남지 않는 교직 생활은 오로지 후학양성에 힘쓰며 퇴직 후에는 고향에 내려가 평화로운 삶을 살겠다는 그는 많은 체육인들이 부끄러움 없는 사회지도층으로 자리했으면 하는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약력 ▽경희대 체육학 이학박사▽한국체육학외 전 선임 부회장▽경희대 체육대학 학장▽현 경희대 대학교 체육대학원 원장▽현 재경광주전남향우회 상임부회장▽현 재경해남군향우회 회장▽현 재경문태중고동문회 회장▽현 재경 문태 산악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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