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자 시인

몇 일간 극성을 부리던 황사 앞에서 놀란 자라목처럼 위축되었던 초목들이 긴장을 풀며 심호흡을 하고 있다.

그 숨결이 어찌나 향기로운지 자꾸만 코가 벌름거려진다.
산은 진달래 불꽃놀이가 절정을 이루고 들에는 민들레의 팡파레를 시작으로 풀꽃들의 향연이 막을 올렸다.
우리 집 뜰에도 드디어 세 송이의 목련꽃이 처음으로 눈부시게 피었다. 내 얼마나 봄이 오기를, 아니 저 목련이 피기를 기다렸는지 모른다. 설레임과 기쁨과 그리움이 출렁이는 물결처럼 마음의 심연에서 밀려온다.

“목련은 너무나 깨끗하여 단순히 깨끗함을 지나 어떤 고귀함을 느끼게 한다. 한창 피어나는 목련나무를 한 동안 바라보면 그 고귀함이 오히려 오만하게까지도 보여 인간이다 보니 자꾸만 결점을 잡아 보려고 해도 티 만한 결점도 찾을 수가 없다. 우리 인간은 저 백목련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중략-

이 글은 고 육영수 여사가 쓴 글 중의 일부분이다.
나는 그 분을 너무 존경하고 좋아했다. 인자한 미소와 단아한 모습, 검소한 생활을 늘 마음의 모델로 삼았는데 여사님이 목련을 좋아한다는 걸 알면서부터 나도 목련을 좋아하게 되었고 어느새 육영수 여사=목련이라는 등식이 내 안에 자리잡게 되었다.
그럼에도 정작 우리 집에는 그가 설자리 하나 마련하지 못하고 매년 봄이오면 남의 집 담장 너머 눈부시게 고운 목련만 부러움의 시선으로 눈맞춤 했는데 2년 전 세 그루의 대추나무를 과감하게 베어내고 무안 장에 나가 한 그루 사다 심었더니 올해 드디어 꽃을 피운 것이다.
하얀 봉오리가 하늘을 향해 얼굴을 내미는 모양은 흰 버선발로 달려나가 봄을 맞는 여인의 모습이요 꽃잎이 조금씩 열려 가는 모양은 나뭇가지에 살포시 앉아 있는 학과 같아서 바람이 조금만 세게 불어도 후르룩 날아 가버릴 것 같은 조바심 마저 준다.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깨끗하고 순결한 만큼 상처를 쉽게 입는다는 것이다.

약한 늦서리에도 여지없이 누렇게 멍이 들고 땅으로 떨어진다. 긴 긴 여울 밑 등을 후려치는 칼바람에도 의연하게 버티며 꽃 피울 준비를 했건만..., 어쩜 그 점이 순수를 위해 타협하지 않는 목련의 본 모습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이야 빨, 주, 노, 초, 파, 남, 보 색색의 옷을 준비해 놓고 얼마나 자주 자신의 모습을 바꿔버리는 이중성을 가졌는가. 변장술에 능한 사람들이 어제는 웃고 오늘은 울며 삶을 꾸려 가는 무대.......
관객이든 배우이든 이 봄에는 모두가 저 목련꽃처럼 순결하고 깨끗한 마음의 옷 한 벌씩 준비하면 좋겠다.
저작권자 © 무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