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갈수록 도로변이 묘지천국이 되어가고 있다 -

[무안신문] 성묘차 고향에 다녀왔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고속도로변이나 국도변에 무덤들이 많이 새롭게 조성된 것을 보았다. 지방도로로 들어설수록 그 도는 더했다. 밭 가운데, 혹은 인근 산의 소나무 숲을 갈아엎고 묘지를 조성하고, 석물과 묘비, 그리고 나무를 심어 단장했다. 조상을 모시는 애틋한 감정을 엿볼 수 있다.

도로변으로 조상 묘를 이장한 것은 후손들이 교통이 편리한 곳으로 옮겨서 접근성을 높이자는 뜻에서 일 것이다. 힘겹게 살아온 사이 방치된 깊숙한 산골의 조상 묘를 기왕이면 교통접근성이 용이한 도로변으로 옮겨 새롭게 단장해 후손의 예를 다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거칠게 말해서 그것은 졸부들의 자기현시 욕구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환경파괴의 사례로 보일 수도 있다. 그것을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자기 조상 묘를 제외한 모든 묘는 혐오시설로 인식하는 세태고 보면 눈총을 받으면 받았지, 효성 지극한 후손으로 대접받는 것 같지는 않다. 지금은 그러한 것으로 가문의 영광으로 보는 풍조도 아니다.

유럽은 16세기 흑사병(페스트)이 번져 수백 만의 인구가 죽었다. 시체를 어떻게 처리할 수 없을 정도로 거리마다 시체가 넘쳐났다. 밤이면 늑대 등 짐승들이 시체의 팔을 물고 다니거나, 두상, 다리를 물고 돌아다녔다. 시체의 내장을 뽑아 물고 다니다 길거리에 버리니 전염병은 더 창궐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늑대 하면 유럽에서는 악령으로 그리는 문학작품이 많다.

유럽의 골목마다 썩은 사체들이 나뒹구니 전염병은 더 번지고, 그래서 시체를 태워 없애는 장례문화가 발달했다. 유럽의 장묘문화가 화장으로 본격 이행된 것은 흑사병이 기여한 바가 크다. 그후 추모공원, 또는 묘지공원을 조성해 추억의 장소로 이용한다. 도로변에서 무덤을 찾기란 별로 없고, 대신 합동 추모공원을 볼 수 있다.

우리도 화장문화 추세로 이행돼가고 있지만 분묘가 문제다. 기껏 화장한 유해를 유족들이 각자 개인 땅에 묘를 조성한다. 그러다 보니 전국 어디를 가도 묘지 천지다. 이 묘를 관리하기 위해 집안 대소간에 갈등도 생긴다. 해마다 벌초를 하고, 집안 대소간에 참여도를 놓고 누구는 적극적이고, 누구는 외면한다느니로 싸운다. 묘역을 넓게 잡을수록 품은 더 들고, 벌초를 하는 데 노동력은 그만큼 배가된다. 이때 참여도에 따라 불쾌감을 드러내다 보니 형제간에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는 경우도 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안했을 때의 괘씸함은 크기 마련이다.

어느 자료에 따르면, 2001년 현재 우리나라 묘는 2050만기다. 무연고 묘까지 합하면 더 될 것으로 추산된다. 그리고 매년 20만기 안팎의 묘가 늘어난다고 하니 지금은 2500만기가 넘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가히 무덤 천국이다. 국토 이용의 효율화를 위해 재검토하지 않으면 안될 단계에 이르렀다. 환경 파괴, 경관 파괴, 집안 분쟁요인, 무관심한 묘지 관리 등으로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중국에 가보면 유교에 뿌리를 둔 조상숭배와 효사상이 전통적으로 깊은 나라라서 천지사방에 묘가 넘쳐날텐데도 찾기가 힘들다. 그것은 마오의 장사문화 혁신에서 온 것이라 한다.

1949년 마오쩌둥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선포하면서 내린 첫 교시가 “전국의 무덤을 없애라. 더 이상 무덤을 쓰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반기를 든 막료가 나타났다.

“내가 마오 동지를 따라 풍찬노숙하며 장정에 나섰을 때, 고향의 부모님은 일본군에 맞아죽고, 아내는 일본군에 윤간을 당한 뒤 목매 자살했소. 내가 할 일은 억울하게 돌아가신 부모와 아내의 묘를 조성해 제사를 지내는 것 뿐인데, 이것을 못하게 막는다면 나는 더 이상 살 희망이 없소”

이 말을 듣고 마오는 다시 회의를 열어 그 막료만은 예외로 하고, 전국의 묘를 더 이상 쓰지 못하도록 국무회의 안을 통과시켰다. 그래서 그런지 중국의 산하를 돌아보면 묘지를 보기 힘들다. 덩샤오핑 유해도 화장해 홍콩 앞바다에 뿌렸고, 저우언라이, 후야오방도 마찬가지였으니 새삼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들이 우리보다 못해서 그랬을 리는 없을 것이다.

얼마 전 혹카이도에서 대지진이 일어나 주변의 수백개 산이 벌겋게 무너져 내린 것을 우리는 보았다. 그런데 무덤 하나 손실이 없었다고 한다. 우리 산이었다면 수많은 산소가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혹카이도의 조상 묘 손실이 없었던 것은 산에 쓴 묘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농촌 도로변은 묘지들이 초병처럼 서있다. 현재와 같은 장묘 관행이 이어진다면 우리나라 도로변은 머지않아 무덤 천국이 되리라. 내 조상 묘 이외의 모든 묘는 혐오시설이라고 누구나 말하는데 역설적으로 길가엔 무덤 천국이다. 농촌일수록 합동 추모공원을 조성해 분묘가 산개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온 산을 부스럼 딱지처럼 묘들이 파고들어 산림을 훼손하는 일을 막아야 한다. 무연고 묘도 대대적으로 정비해야 한다.

묘지는 환경 차원에서 다루기를 바란다. 행정안전부·보건복지부·환경부·지방자치단체가 적극 나서서 기준을 새롭게 마련해 정비해야 한다. 양지쪽은 한결같이 사자(死者)가 점령해 생자(生者)보다 대접받고,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오염시킨다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 이 칼럼은 인터넷 매체 breaknews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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