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 칼럼 ‘이 생각 저 생각’

발상의 전환과 열린 세계관이 남북 경제발전 - 한민족 부흥 발판될 것

이승만 시대에도 우리는 사상적 의사표현이 자유로웠다. 그래서 ‘사상계’ 같은 시사 월간지가 수십 만 부 팔리면서 그 시대 지성을 대표했다. 그런데 5.16 이후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북에 대한 자유로운 의사 표현은 곧 종북 빨갱이로 매도되고, 천형처럼 낙인을 찍었다. 지금도 보수야당 대표가 여차하면 종북 척결을 들고 나온다. 레드 컴플렉스를 자극하자는 옛 습관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종북좌빨‘을 내세우는 것은 그것이 권력 유지 및 경제적 이익에 유효하다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냉전 반북 대결주의와 색깔론, 동서 지역 분열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면 권력 유지의 무풍지대를 달릴 수 있다고 보았고, 실제로 재미를 보았다.

다시 말해, 70년 체제를 유지해온 한국의 자칭 보수는 탈냉전 개혁 세력이 정치권에 진입하는 것을 가로막기 위해 어떻게든 용공·친북·좌경으로 몰아붙였다. 그리고 권력을 쥔 한편으로 우호 자본 세력을 키웠다. 권력과 자본이 결합한 기간이 70년 이상 가다 보니 그들의 우산 밑에서 밥벌이한 사람이 늘어나고, 지식인도 예외가 아니었다. 성장 만능주의와 냉전 반공주의를 고집하고, 관료-재벌-영남으로 연결된 구체제 카르텔이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핵심 세력이 되면서, 결국 70년의 긴 세월동안 이익을 본 세력이 그만큼 늘어난 것이다. 지배층이자 기득권층을 형성한 세력이다.

보수 세력이 ‘종북좌빨‘을 들고 나오는 이유는 간단하다. 패권을 유지하는 비용으로 가장 적게 지불하면서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 새끼 빨갱이야, 한마디면 이익이 넝쿨째 들어오니 그 수법을 써먹게 된다. 그래서 그 수법의 확신범이 된다. 빨갱이로 몰면 그 자는 지렁이처럼 움츠러들고, 그래서 틀림없이 빨갱이이고, 또 빨갱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른바 각인 효과다. 이렇게 해서 정부 비판자나 양심적인 사람은 빨갱이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손발이 묶이고 집안도 박살난다. 이런 야만과 광기의 시대를 우리는 살았다.

구세력이 북의 위협과 호전성을 과도하게 포장해 장기간 유포시킨 정치적 프로파간다에 국민들도 세뇌되다 보니 그들 역시 반신반의하다가도 어느새 믿게 된다. 오늘의 10대와 20대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특히 북한의 핵위협에 노출되어 초․중․고․대학을 다닌 세대다. 북 집단이 핵을 개발한 이유를 객관적으로, 입체적으로 살필 것 없이 북의 위협만 강조하고 매도하니 공포스럽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핵개발의 구조적 요인은 묻어둔 채 권력과 언론이 총동원돼 북의 침략성을 강조하니 북한하면 박멸해야 하는 벌레쯤으로 여기고 살아왔다. 그래서 북 하면 일본 놈들보다 나쁜 놈으로 인식되고, 통일의 대상에서 저만치 밀려났다.

요즘은 지식인사회가 더 타락했다는 말도 나온다. 자기 이익에 따라 옳은 것도 틀렸다고 비틀고, 틀린 것도 옳다고 억지 쓰는 풍토가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도 이익에 따라 거래되는 상품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북에 대한 태도는 특히 구 권력의 입맛에 맞는 반북 대결주의를 외쳤다.

그동안 안보팔이, 냉전 반공주의를 앞세운 방송의 패널들과 학자들을 본다. 북한에 대해서는 아무렇게나 말해도 언론 자유가 보장된 탓일까, 무책임하고 편향된 관점이 여론 시장을 장악한다. 전문가랍시고 해외 사례 몇 가지와 국정원 등으로부터 받은 정보를 현란한 수사를 동원해 늘어놓는다. 그러나 특정 정치집단의 정치적 프로파간다를 확장시켜주는 역할에 머무는 수준이다.

남북 사이의 이데올로기 승부는 벌써 30년 전에 끝났다고 본다. 체제 전쟁에서 이겼다는 것은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빠짐없이 듣고 있고, 40대1의 경제력 차이에서 거듭 확인된다.

우리 남한사회가 대형 백화점 수준이라면 북한은 골목 구멍가게 수준이다. 그런 집단을 누가 선호할 것인가. 그래서 주구장창 외치는 냉전 반북 대결주의는 공허할 수밖에 없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남북 화해협력은 새로운 먹을거리다. 통일이 아니더라도 유럽 연합에서 보듯 단일 경제 블록화로 공동 번영해 나간다면 우리의 국부는 그만큼 창출될 것이다. 분단으로 인한 피폐한 정신 세계도 웅혼한 기상으로 펼쳐질 것이다. 이런 꿈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작은 예 하나 더 들겠다. 국내 각종 공장에 근무하는 산업 전사들을 언어 소통이 잘 안 되는 먼 동남아 국가에서 꿔오지 않아도 된다. 그들보다 값싼 대가로 불과 두세 시간 거리에 있는 인력시장이 펼쳐져 있다는 것은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 될수 있다. 발상의 전환과 열린 세계관이 남북 경제 발전과 한민족 부흥의 발판이 될 것이다.

*이 칼럼은 인터넷뉴스 breaknews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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