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소설가, 전 언론인, 해제출신)

[무안신문] 박근혜 정권의 몰락에 대한 진단과 분석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집권세력이었던 구여당은 물론 우군으로 늘 그들을 비호했던 보수언론조차도 여러 갈래의 분석을 내놓았으니 새삼 다시 꺼낸다는 것이 부질없어 보인다.

필자는 박근혜 정권의 몰락을 부른 몇가지 말기현상을 국민의 정서적 감성을 토대로 살펴보고자 한다. 박근혜 대통령 집권 초기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자 사건보도가 있었다. 검찰이 18대 대통령선거 불법성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조선일보가 채 총장의 ‘혼외자’ 사실을 폭로해 그는 부도덕한 사람으로 몰려, 결국 검찰총장 직에서 물러났다. 그와 함께 불법선거 수사는 유야무야 됐다.

채 전 총장을 낙마시킨 이 사건은 국정원 직원 송 모씨 등 몇몇 공무원의 일탈에서 빚어진 사건으로 드러나 법의 심판대에 올랐다. 그런데 항소심 재판부는 송 모씨의 행위에 대한 처벌과 별개로 국정원 윗선 등의 음모를 의심하며 송씨에게만 책임을 지우는 건 부당하다고 판시했다. 고법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당시 사건은 결국 채 전 총장의 혼외자 의혹을 검증하고, 이를 구실로 삼아 검찰의 (선거부정에 대한)적극적 수사를 방해하고자 하는 모종의 음모에 따라 국정원의 상부 내지는 그 배후 세력 등의 지시로 저질러졌음이 능히 짐작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또 “이 같은 불순한 의도를 갖고 아동의 개인정보 조회 및 수집을 지시한 국정원 상부 내지는 그 배후 세력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처벌을 하지 않은 채, 이에 대한 책임을 이들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 송씨 개인에게만 모두 돌리는 것은 형사법의 원칙인 책임주의에 반하고, 책임의 형평성에도 크게 어긋난다”고 판시했다. 이 사건은 현재 대법에 계류중이다.

필자는 이런 법적 진행 과정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고법 재판부의 판시가 일반 국민의 정서법과 일치한다고 보기 때문에 인용했을 뿐이다. 이 사건으로 권력은 당시 선거부정 혐의를 수사하고 있는 윤석열 검사를 지방으로 쫓고, 채 검찰총장은 도덕성에 타격을 주어 쫓아냈다고 국민들은 본 것이다. 공직자의 도덕성을 겨냥해 검찰총수를 내친 권력의 비정성은 사건의 본질을 완전히 가려버렸다. 보수언론이 그 역을 담당했다. 결과적으로 부정선거 혐의 수사를 막는 보호막 역할을 해준 것이다. 지켜본 국민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는 수구보수 집단의 세월호 유족들의 단식장에서의 폭식잔치다. 이건 당시 미국의 CNN방송이 보도한 것을 인용하는 것으로도 족하리라 본다. CNN은 2014년 9월 9일자 보도에서 “세월호 유가족과 이들의 지지자들은 특별진상조사위원회를 만들어 성역없이 조사하고, 혐의가 있는 사람을 처벌할 수 있는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에 들어갔다”며 유가족과 시민들이 가담해 광화문에서 단식투쟁을 하게 된 연유를 설명했다.

그런데 극우 성향 일베 이용자들과 단식 항의 극우주의자들이 “유가족들의 텐트 앞에서 유가족과 유가족을 지지하는 시민들을 조롱하기 위해 많은 양의 치킨과 피자를 (게걸스럽게)먹어댔다”며 일베와 극우성향의 자유대학생연맹의 폭식투쟁을 보도했다. 그중 한 50대 남성은 “일베들에 대한 지지 의사를 표시하기 위해 피자 100판을 배달시켰다”고 CNN은 소개했다. CNN은 “그러나 대중들의 반응은 부정적이며, 어느 누구도 고통받는 사람에 대해 비인간적이고 비정하게 대해서는 안된다”며 폭식투쟁에 대한 비판 여론을 전했다. 폭식잔치 헤프닝으로 유가족을 야유하고 조롱한 이 같은 비인간적인 행동에 국민적 분노가 들끓었음은 물론이다.

정치적이든 아니든 굶고 있는 사람 앞에서 치킨과 피자와 햄버거를 한 입 입에 물고 히히덕거리는 모습을 보고, 과연 이 사람들이 이성사회를 살 자격이 있는지를 의심케 했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들의 행위에 대해 국민들은 본인이 모욕을 당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배후에 보수권력이 또아리를 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인간이길 포기한 이런 패륜과 사회적 약자를 벌레처럼 취급하는 수구 보수세력의 광기를 보고 국민들은 좌절하고 말았다. 정권의 타락과 오만과 폭력의 말기현상을 적나라하게 본 것이다.

세 번째는 백남기씨 사망 진단이다. 백씨는 TV에도 여러 차례 방영되었다시피 경찰의 과잉진압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뇌사상태로 병원에 실려가 깨어나지 못하고 끝내 사망했다. 그런데 명색이 한국 최고의 병원이라는 서울대학병원 의사가 급성신부전증으로 사망했다고 진단했다. 여러 전문 의료용어를 써가며 사인을 말하는데, 복잡하게 설명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사술이다. 교통사고로 뇌사상태로 병원에 입원한 환자가 회복하지 못하고 몇 개월 후, 혹은 몇 년 후 숨져도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이지 심장병, 호흡기질환 따위로 숨졌다고 보지 않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물대포를 맞고 뇌사상태로 숨진 것이 아니라 다른 병변으로 사망했다니, 국민들은 그렇게 진단을 내린 의사를 탓하기보다 정권이 또 한 의사를 저렇게 이용해 인격과 양심을 파탄내구나 하는 절망감을 느꼈다. 아니 집단 허무주의에 빠지고 말았다. 성실하게 의료활동을 하는 의사마저 가만두지 못하는 시대에 사는 아픔에 넌더리를 쳤던 것이다. 많은 국민들은 이런 권력의 타락을 통해 두말없이 말기현상을 보았다.

네 번째는 이런 사안들을 보고도 진실 대신 정략적으로 사실을 보도하거나 회피하고, 왜곡보도하는 유력매체들의 보도태도다. 이른바 의례적이고 기계적인 보도태도이자 발표문 보도다. 권력이 불러주는 대로 받아 적는 인쇄물. 진실을 추구하는 취재를 포기하고 발표문으로 신문을 대체한다면 왜 굳이 일류대학을 나온 엘리트들을 기자로 뽑는가. 그런 정도의 보도라면 중졸로도 가능하다. 실제로 대만이 한때 그랬다. 물론 사회주의 국가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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