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나일환

[무안신문] 정유년 윤달 오월이 들어섰다. 오월이 되면 오월에 왔다 오월에 가신님! 수필가이신 금아 피천득 선생님이 생각난다. 그는 1910년 5월 29일 태어나 97세의 나이로 2007년 5월 25일 선생이 가장 좋아하는 오월 속으로 가셨다. 그는 아직도 오월의 시간 속에 21살의 나이로 청순함을 간직하며 살고 있다.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한 스물한 살의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있는 비취가락지이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둘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민족정기와 조국광복 노래한 저항시인 김영랑(윤식)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이란 시다. 모란의 달 오월에 영랑도 조국 광복의 꽃이 피기를 기원했다. 오월은 진정 축복의 달이요, 희망의 달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가고 있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나이는 세어 무엇 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 “(피천득의 오월 중에서)

유난히 오월을 사랑한 피천득 선생님은 오월을 무척 사랑했다. 오월이 가는 마지막 길목에서 우리의 가슴속에 남아있는 명작 “인연과 수필은 청자연적이다.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라는 대표작을 남긴 우리 문단의 대표적인 수필의 거목이다

오월이 간다. 모란이 피고 앵두가 익어가는 계절의 여왕이요 축복의 달, 오월이 가고 있다. 오월을 청순한 21세의 나이로 보는 수필가의 글속에 우리에게는 많은 꿈을 피우게 한다. 오월이가고 유월이 오는 날이 우리에게는 희망의 역사보다는 아픔의 역사를 기억하게 하고 강한 의지와 결심을 만들기도 한다. 한민족이 두 동강이 나고 서로 적이 되어 피를 흘리는 처참한 역사 또한 우리는 잊을 수 없는 우리의 아픈 기억이다.

오월은 대자연의 싱그러움과 함께 역사 속에서도 많은 상처를 갖고 희망을 갖게 하여 투쟁의 진보된 기록을 갖고 있다. 평화를 갈구하는 민중들의 열망이 오월에는 한층 빛을 발하기도 했다. 5,18 민주항쟁 또한 위도 아래도 없는 무등의 정기를 받은 젊은 피를 희생시키며 민주와 평화를 얻었다.

오월의 주인인 금아 피천득 선생!

“그리워하면서도 한번을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엔 정말이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찾아오는 인연도 있나봅니다. 이제껏 알지 못한 곳에서 이제껏 각각 다른 모습으로 살다가 어느 날 문득 내 삶 속에 찾아온 그.. 그가 나에게 어떤 인연일까? ...” 피천득의 인연이다.

그는 철저하게 약속을 지키고 어린 동심의 세계에서 맑은 영혼으로 글 세상을 노닐다 오월에 꿈과 희망을 우리 가슴에 남기고 유월이 오면 꿈의 나래를 활짝 펴 진실한 삶의 향을 뿌려주기를 원했던 님의 영전에 가슴을 묻어본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하루하루 변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숨어만 간다. 부귀보다는 부족한 듯 살면서 청빈한 모습으로 사람답게 살기를 원한님! 그는 난蘭이요! 학鶴 이였다. 금아 피천득 선생님! 필자는 그분의 삶 속에서 가슴에 무언의 배움을 한껏 안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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