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신문] 시대를 살아가는 70년대 이전에 때어난 40대 후반의 사람들이라면 어린시절에 ‘쌀’이 얼마나 귀했다는 것을 안다. 당시 쌀밥 먹기란 모내기나 큰 잔치쯤으로 꿈에서 떡 얻어먹는 꼴에 불과했다. 가정에서는 가마솥에 보리밥이나 서숙(조)밥을 하면서 귀퉁이에 한줌 정도의 아버지 밥이 쌀밥으로 지어졌다. 학교에서는 혼식을 장려했고, 쌀 소비 억제책 일환으로 도시락 검사도 했다. 요즘 ‘검정고무신’ 텔레비전 프로그램 정도의 삶이었지 않나 싶다. 당시에는 ‘쌀밥’ 한번 실컷 먹어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만큼 귀했던 쌀이 요즘에는 천덕꾸러기가 됐다. 식당에서 몇 명 어울려 먹는 소찬의 밥 한끼 가격이면 3∼4인이 한달은 먹을 수 있는 쌀 한포대는 거뜬히 살수 있다. 그 만큼 쌀 가격이 하락했고, 또 쌀밥을 먹지 않는 시대가 왔다.

결국 어린시절 그토록 먹고 싶었던 쌀이 재고미로 쌓이고 급기야 정부가 이 쌀에 대해 사료용으로 늘리는 소비정책을 추진하면서 소가 우리시대 최고의 쌀 소비자로 대접받게 됐다.

한국의 급속한 산업화와 함께 국민들의 소득과 삶의 질이 높아지고, 먹거리가 다양해지면서 쌀은 천대받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소들의 신분만 높여 놓는 꼴이 됐다. 중노동을 담당했던 농경사회의 소의 역할을 지금은 농기계가 대신하고 소들은 정부의 특별한 배려(?)로 놀면서 재고미 사료만 열심히 먹어 치우면 된다. 농민의 생존권까지 감당하는 귀하신 동반자가 된 셈이다 보니, 기아에 허덕이는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보다도 더 호강하는 셈이다.

정부는 쌀재고량이 증가해 쌀값 하락을 막자는 정책으로 올해부터 재고미 중 5년 이상된 구곡 9만9천톤을 사료용으로 공급했다. 지난달에는 쌀수급 안정을 위해 11월부터 사료용 쌀을 추가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농림부 쌀수급동향에 따르면 정부 재고미는 7월말 현재 175만톤(국산 130만톤, 수입산 45만톤)으로 전년 동기(139만톤) 대비 36만톤이 많다. 민간 재고미도 8월말 26만톤으로, 전년동기(19만톤) 대비 7만톤이 많다.

이 같은 쌀 재고미 증가는 쌀 소비 감소와 수입쌀까지 보태져 쌀값 파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시장경제에서 제품 가격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으면 떨어지기 마련이다. 올해도 쌀이 과잉 생산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조생종 나락은 이미 산지에서 40kg 포대당 4만원선이 무너졌고 쌀값도 작년보다 15% 이상 하락해 농가의 생존권이 위협받으면서 농민들은 정부의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매년 줄고 있다. 정부 통계자료에 따르면 국민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밥심’으로 살았던 1970년 136.4kg을 정점으로 매년 줄어 지난해는 62.9kg까지 떨어졌고, 내년이면 60kg 이하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1인당 쌀 소비량이 1kg 감소하면 1만ha 내외의 벼 재배면적이 축소된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경제 체제 가입 이후 쌀시장을 개방하지 않은데 따른 의무수입물량으로 매년 40만톤 이상씩을 들여오고 있다. 결국 쌀소비는 급감한 반면 값싼 수입쌀과 재고미는 급증해 쌀값 하락은 구조적으로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라서 정부를 제외한 정치인, 단체장, 농민들은 이구동성으로 ‘쌀값 폭락 대책을 내놓으라’고 외치고 있다. 하지만 귀를 닫은 정부에게는 240만 농민의 절규 목소리는 메아리에 불과하다. 장기적 대책보다는 올해도 그 동안 추진해 왔던 소비정책 발표와 2016년산 쌀 소비량 초과 물량 전량에 대한 시장격리가 커다란 대책이라면 대책이다.

정부가 1948년부터 시행해오던 추곡수매제를 2005년 폐지할 당시 쌀농가들이 절망하자 정부는 공공비축미 매입과 쌀소득보전직불제 등과 같은 대책을 마련해 어려움을 극복해왔다.

올해도 정부는 쌀소득보전직불제를 통해 목표가격(18만8000원/80kg)의 일정수준이 보전되는만큼 농가수입은 목표가격의 97%는 보장된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농민들은 이를 믿지않고 있다. 그 동안 정부의 일회용 땜질과 립서비스식 정책 때문이다.

쌀값 안정을 위해서는 구조적인 수급 불균형이 해소되어야 한다. 넘침에 의해 발생한 피해를 수습하고, 쌀생산농가들이 버텨낼 수 있도록 버팀목이 되어 주어야 하는 것이 정부의 몫이다. 당장은 재고를 해결해 주었던 인도적 차원의 북한에 대한 쌀 지원도 2007년 끊긴 후 어려운 실정이고, 가난한 나라에 대한 해외원조도 어렵다면 재고미의 사료량을 확대하고, 쌀을 주 원료로 식품을 만드는 기업에게 각종 혜택을 주는 등 다양한 쌀소비 진작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쌀 과잉생산 억제와 넘쳐나는 재고쌀 문제를 해결한다면서 재배면적 축소 등 타작물 재배 유도로 단기적 쌀 구조조정에만 나서고 있다. 하지만 쌀이 남는다는 이유로 농지 축소보다는 식량안보를 위해 일정 규모의 농지를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실제 지난 1970년 80.0%에 달했던 곡물자급률은 1980년 56%, 1990년 43.1%로 하락했고, 2009년 29.6%, 2013년 23.3%까지 떨어진 뒤 20%대에 머물고 있는 상태다.

쌀이 지금은 천대받지만 기후변화 등을 고려할 때 흉년 등 곡물파동이 일어날 경우 식량대란이 발생, 언제 귀한 쌀로 변할 지 모른다. 특히 쌀을 재배하는 논 역시 생태계 보전 기능과 환경에 미치는 파급 효과를 감안하면 경제적 가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중요하다.

무엇보다 쌀은 주식이기 이전에 반드시 지켜야 할 식량 안보의 보루이기에 더더욱 쌀농사를 포기하도록 해서는 안된다. 단순히 벼 농사 면적을 줄이기보다는 실질적으로 농가소득을 보존해 줄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농업생산환경 조성이 절실하다. 곧 쌀을 지키는 것은 미래 우리 국민의 생존권 문제와 직결된다는 점 때문에도 말이다.

저작권자 © 무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