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신문] 금까지 젊은층 일부에서나 볼 수 있던 ‘각자내기(더치페이)’ 문화가 우리나라 국민 전 계층으로 확산되는 이른바 n분의 1시대가 열리고 있다. 그동안은 개인주의와 편의주의를 대변하는 젊은 층에서 눈치 보지 않고 신세를 지지도 않는 각자내기로 통용돼 왔다.

그러나 대한민국 접대문화 프레임은 지난달 28일 발효된 일명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로 송두리째 바뀌고 있다. 고착화한 한국 접대문화를 고려할 때 너무 속도가 빠르다. 친구간 모임에서도 익숙하지 않지만 ‘더치 페이’ 말이 서슴없이 나오는 것도 빠른 변화다.

하지만 40대 이상 중장년들에게는 ‘각자내기’는 여전히 낯설고 어색하며 불편하다. 한국식의 따뜻한 ‘정(情) 문화’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각박해 졌다는 사회를 ‘우리’ 대신 ‘나’를 앞세우는 개인주의로 흐를 게 분명하다는 점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우리는 밥값 내주는 것을 일종의 인정이라 생각해 왔다. 음식점이나 술집을 나설 때는 서로 돈을 내겠다고 다투는 모습도 그에 일환이다. 지갑이 얇아 계산을 할 형편이 안되는 사람도 ‘내가 내겠다’며 대열에 합류하는 게 한국의 미덕처럼 여겼다. 외국인들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정(情)으로 다져진 한국의 미풍양속(?)으로 여겨져 온 관습이다.

관습(慣習)은 어떤 사회에서 오랫동안 지켜 내려와 그 사회 성원들이 널리 인정하는 질서나 풍습을 말한다. 따라서 미풍양속처럼 굳어져 혈연과 지연, 학연 등을 중시하는 특유의 우리문화 속에서 사회의 유대를 강화하고 동료 의식을 심어 주며, 환경에 적응하는 방법으로서 도움이 된다고 믿어 왔다.

그런데 이제 접대라는 명분으로는 ‘우리’라는 개념이 용납되지 않는 새로운 ‘문화 충돌’을 겪고 있다. 언젠가는 이 과정을 넘으면 자연스러워지겠지만 각자내기는 그동안 우리 사회의 정서와는 거리가 있었다.

‘더치 페이’(Dutch Pay)는 네덜란드 사람들의 접대 문화에서 유래된 말이란다. 함께 식사를 한 뒤 자기가 먹은 음식에 대한 비용을 각자 서로 부담한다는 것을 뜻한다. ‘더치 트리트(Dutch treat)’가 유래다. 더치는 ‘네덜란드 사람’을, 트리트는 ‘한턱내기’ 또는 ‘대접’을 뜻한다. 하지만 네덜란드인들에게는 썩 긍정적인 용어가 아니다. 1602년 네덜란드와 영국이 식민지 쟁탈전에서 3차례 전쟁을 치르면서 갈등이 쌓였다. 이때 영국인들이 네덜란드인을 비하하기 위해 ‘지불하다’는 ‘트리트’ 대신 ‘이기적이고 째째하다’는 의미가 내포된 ‘페이(pay)’를 가져다 붙여 부정적인 뜻이 크다.

따라서 국립국어원은 ‘더치 페이’를 ‘각자 내기’로 순화해서 사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더치페이는 서구 문화를 일찍 받아들인 일본도 ‘분빠이’(分配) 문화가 일상화된 나라다.

영란법의 적용을 받는 기관은 중앙·지방행정기관, 시·도교육청, 일선 학교, 언론기관 등 4만 919개에 이르고, 적용대상 인원은 400여만 명에 달한다. 적용대상자와 배우자는 직무 관련성과 대가성이 있는 상대와 광범위한 영역에서 청탁이나 금품수수를 할 수 없다.

부정청탁 대상 직무는 인·허가, 인사 개입, 수상·포상 선정, 학교 입학·성적 처리, 징병검사·부대배속 등 총 14가지지만 사실상 공공기관이 수행하는 업무영역의 거의 전부에 해당한다.

따라서 김영란법은 우리 사회의 접대문화를 근본부터 바꿔놓을 것으로 보인다. 관공서와 법원, 학교, 병원 등 적용대상 기관들은 관행적으로 이뤄져 오던 청탁을 멀리하기 위해 김영란법 교육을 강화하는 등 경계령이 내려진 상태다.

공무원 사이에서는 ‘시범 케이스에 걸려선 안된다’는 인식 확산하면서 약속까지 꺼린 채 납작 엎드리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구설수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자기 밥값은 자기가 내는 인식이 확산이 부정부패를 걷어내고 청렴 문화를 정착시키려는 시대적 요구 때문인지, 아니면 법 시행 초기 ‘소나기는 피하자’는 셈법의 산물인지는 현재로써는 판별하기 어렵다.

하지만 김영란법 시행으로 최대 수혜자는 공직자들의 거절명분이 생겨 가장 수혜자라는 점도 없지 않다. 또한, 김영란법이 거대한 부정부패는 뿌리뽑지 못할 것이라는 맹점도 있다. 이들 문제에 대한 제도개선은 생각해 볼 문제이다.

김영란법의 시행은 대한민국이 깨끗하고 부정부패가 없는 사회로 가는 첫발을 내디뎠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우리 사회가 투명 사회로 한 발짝 나아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영란법의 정착을 위해서는 이웃, 친척, 학교 선·후배 등 인적 네트워크 문화가 매우 강한 인정에 이끌려 우리 고유의 문화 또는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행해 온 행위들을 바로잡는 인식 전환이 요구된다. 이 과정에서 형사처벌의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인 직무 관련성의 개념이 모호해 시행 초기 상당한 혼선도 예상된다. 400만명으로 추산되는 광범위한 적용대상, 사례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는 모호함 등 때문에 적용 기준에 소홀해서도 안된다.

특히, 김영란법 시행으로 사회 전반의 거품이 걷히는 과정에서 생길 경제적 충격을 줄이는 방안도 소홀해선 안 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김영란법 시행으로 연간 약 11조6천억 원의 경제적 손실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 정도의 내수 위축이라면 그렇지 않아도 침체한 경제에 큰 타격이다. 정부는 피해가 예상되는 산업이나 업종에 대한 지원책을 강구하고, 소비 감소로 인해 경제가 가라앉지 않도록 선제적 재정운용 등의 충격 흡수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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