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신문] 나는 1960년대 국방의무를 다하기 위하여 입영했고 논산훈련소에서 제대할 때까지 3년간의 공동급식을 먹었다. 군대에서는 공동급식을 위해 여자가 아닌 남자 군인들이 밥을 지어 배식을 한다.

요즘은 당시 보지 못한 초등학교, 중학교 공동급식이 다향하게 펼쳐지고 있다. 학교 급식은 공부하는 학생들이 밥을 짓지 않는다. 일정한 임금을 받고 조리원들이 급식을 담당한다.

한 가정의 급식은 대부분 여성들이 일일 3끼를 담당하면서 평생 동안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만족스럽게 밥이 안 되었을 때는 식구들에게 미안해하면서 불편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하루 3끼 식사를 준비하여 상을 차려 내 놓는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루 이틀에 끝나는 일도 아니고 1~2년에 마무리 되는 일도 아니다. 하지만 50~60년 평생 매식을 담당하면서 불평을 하지 않는다. 철저한 의무처럼 정성을 다해 식단을 차린다. 그 수고를 조금이나마 알려면 일주일간만 아내나 어머니를 휴가 보내고 자신이 반찬 준비를 하여 밥상을 차려 식구들에게 제공해보면 그 수고가 얼마나 큰지 알게 된다. 어머니로써 아내로써 보수도 없이 감당해 내는 그 책임감을 값으로 환산한다면 얼마를 지불해야 할까.

우리 남성들은 여자는 당연히 해야지, 여자가 하는 거야 할지도 모르겠으나 사실 식사 준비 노동이란 힘도 들지만 그 가치는 보석으로도 바꿀 수 없다.

2016년 6월~7월 우리 마을은 공동식급을 하면서 너와 나의 거리가 좁혀졌고 공동급식에 참석을 하지 못하면 다음 공동급식 때 그 이유를 알게 된다. 개인 간의 관심사도 될 뿐만 아니라 그 가정사까지도 알게 된다. 그렇게 진행되다 보니 50여 가정들이 한 식구가 되어 버린 느낌을 갖게 된다.

무안군에서 지원되는 금액은 1개월 동안 마을에서 자력으로 실행한 후에 나온다. 어느 날 진행하는 과정에서 쌀이 부족할 것 같다고 김진철 이장이 혼자 말을 했는데 그 말을 들었던 주민들이 쌀 포대를 들여오고 자진해서 후식 디저트로 수박, 참외, 단호박, 커피, 옥수수 등을 계속 들여온다. 금액도 5만원부터 10∼20여만 원씩 들어온다.

이장이 급식비가 행정에서 일부 지원된다고 말을 해도 계속 들어온다. 50세대에서 급식비를 협조한 가정들이 45세대이다. 부녀회장과 조리사는 1개월 수고비 50만원을 사양하므로 급식일정을 2개월로 진행 중이다.

마을 이장의 헌신적 지도력과 섬김의 자세, 한 푼의 거짓도 없이 공개된 수입, 지출 등 이장은 사심이 없다. 또한 행정기관에서 회의나 지시사항 및 전달사항이 있으면 지속력으로 5~6회 반복 전달하여 누구나 다 알 수 있게 만든다. 어쨌든 간에 마을공동급식에 대해 감회가 깊고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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