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신문] 가난이 가난을 만들고 돈이 전부인 나라/ 노력하면 노력한대로 뒷통수를 맞는 나라/ 살겠다고 발버둥치면 무식하다고 하는 나라/ 위안부가 창녀가 되는 나라/ 우리 땅을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지 못하는 나라/ 착한 대통령은 죽어야 하고, 나쁜 대통령은 자자손손 잘먹고 잘사는 나라/ 일당 400만원 황제노역의 나라/ 이혼율·자살률 1위인 나라/ 청소년이 가장 많이 죽어가는 나라/ 등등

작년 한 해, 청년세대를 주축으로 뜨겁게 달군 키워드가 ‘헬조선’이다. 마치 지옥에서 사는 것처럼 한국사회에서 살아가기 힘들다는 ‘헬조선’과 금수저, 흙수저로 사회 계층을 구분 짓는 ‘수저계급론’은 작금의 청년세대가 얼마나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지 짐작하게 했다.

취업난이 청춘의 로망을 앗아가고, 부모의 경제력 같이 애초 선택할 수 없는 조건들이 청년들을 힘겹게 만들면서 무기력, 좌절, 분노 등 부정적 감정들만 높아지게 하고 있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20대 10명 중 7명 이상은 다른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 만큼 우리나라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을 만큼 요즘 청년들이 아프다. 그러나 아픈 곳을 치유할 방법을 정부는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이는 최근 나모 전 교육정책기획관의 ‘평등할 수 없기 때문에 신분제를 공고히 해야 한다. 민중은 개, 돼지다.’ 는 발언을 보더라도 정부가 특수계층 1%만을 위한 정책을 펴고 있는데서 기인함을 알수 있다.

사실 나씨의 발언은 대단히 놀랄 말도 아니다. 우리 사회는 금수저, 흙수저로 나뉘어진지 오래고 지난 서울 시장 선거 때 정몽준 후보의 아들이 ‘국민이 모여서 국가가 되는 건데 국민이 미개하니까 국가도 미개한 것 아니겠냐’고 한 말처럼 다수의 국민은 미개 취급을 받으며 살아 왔다. 세월호에서 영문도 모르고 죽어간 아이들 중 내가 직접 아는 아이는 없으니 그걸 가슴 아프다고 하면 위선 떠는 거 아니냐는 것이 그들 1%의 사고방식이다. 가족의 중요함을 알면서도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이들 1%에게는 ‘개·돼지’에 불과하다. 하루에도 수십명이 죽으니 국민의 생명에 무감각한 국가가 되고 있다. 이들의 자살은 나로 인해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달라는 의미도 없지 않지만 1%의 사람들에게는 ‘사회적 의사표현’이 아니라 ‘개인의 신병비관’일 뿐이다. 반면, 모 대통령의 아들은 40억의 세금을 탈루하고도 하루 400만원 노역으로 갚아가고 있다. 1%의 사회에서나 가능함이다.

나씨는 자신을 1%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1%까지는 아니다. 1%안에 넣고 1%의 의식을 따라하고 싶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좀 더 잘나가는 편에 서고 싶고 좀 더 우위를 선점한 사람들의 의견에 동조하여 같은 수준이라는 것을 보이고 싶어 한다.

문제는 나씨 한 사람이 아니고 교육부 전체 분위기가 그따위였을 수 있다는 점이다. 교육부의 제1책무는 백년대계이지만 이런 사고에서 당연히 조령모개가 될 수밖에 없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교육에 의해 엄청난 모순이 생기고, 사람답게 살기 위해 교육받는데 그 교육 때문에 청소년들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죽어가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학생들 공부 시간이 OECD국가 중 제일 긴데 학업성취도는 꼴찌다. 그들의 1% 생각 때문이다.

영화 <내부자들>의 대사처럼 ‘대중은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지는 존재입니다’ 라고 하는데 우리가 늘 그래왔다는 것도 사실이다. 역사교과서도 그렇고, 우리나라에 사드가 배치되면 어떤 파장이 오는지도 모른 체, 북한의 더 강력한 무기 배치로 막을 수 있다고 하는 말에 그런가보다 한다. 북한의 위협만을 막기 위한 거라면 왜 중국과 러시아가 저 난리인지, 사드 배치로 우리의 실익이 무엇인지 따져볼 생각도 없이, 먹고 사는 게 밀접한 나라는 요즘 중국인데도 방관한다.

공권력은 쓰라는 곳에는 못쓰고 소외된 사람을 점점 소외시키는 방향으로 쓰여지는 나라가 1%만을 위한 우리나라다.

우리가 이런 뻔한 이야기에 분개하고 난리치는 사이, 세상은 그 1%가 결정하는 대로 돌아가고 그 1%가 말하는 것을 언론에서 떠들고 그 1%만을 위한 사회로 나아가는 데도 그렇게 발맞추어 가다보면 어느 사이 자신도 1%가 된다는 착각을 멈추지 않고 있다.

소설가 조정래 씨가 최근 나씨의 발언을 두고, “국민의 99%가 개·돼지 새끼들이라면 개·돼지가 낸 세금받아 먹고 살아온 그는 개·돼지에 기생하는 기생충이거나 진딧물 같은 존재”라고 하여 그 한마디로 위안을 삼는 게 99%의 국민이다.

사회의 온기는 점점 메말라가고 경제적으로 좋아진다는 것은 숫자놀음에 불과하고 서민정책을 편다면서도 서민이 적어도 연봉 1억원 이상되는 서민정책을 펴고 있다.

이제는 더디 성장하더라도 1%만을 위한 사회가 아니라 99%의 사회적 차별을 받고 있는 국민들에 대한 정책이 필요할 듯 싶다. 곧 국민의 생명권과 우리 후손의 미래가 최고의 가치가 되는 정책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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