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신문]지난 1월 새해 첫날 무슨 계획을 세웠는지도 가물거린다. 이제는 설날이 새해라는 변명을 하는 주변 지인들의 넋두리는 아직도 희망을 잃지 않았음을 반증해 서로 웃고 만다.

“목표는 꿈을 꾸어야만 이룰 수 있다”는 어린 시절 선생님과 부모님의 똑 같은 쇠뇌교육에 아직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음에 열심히 살아가야 하는 의미를 찾는다.

반백년 이상 살아온 연륜이면 꿈은 원하는 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법도 한데, ‘꿈은 삶의 성장과정이기에 언제나 새로 만들어 갈 수 있고, 그런 삶 속에서 또 다른 꿈을 꿀 수 있다’는 변명이다. 그러다보니 마음 한켠에는 늘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고통을 안고 산다.

50대 이상 가장들을 보면 살아온 삶에 대해 인정을 받고 싶은 생각에 변명이 많다. 들어 줄 사람이 없고 마음 편히 대화할 사람도 흔치 않다. 때문에 이들의 술자리는 언제나 말이 많지만 언행일치는 말 많은 사람일수록 어렵다보니 실수도 많다. 벼랑에 누워 있는 이들, 언제든지 잠꼬대 한번 잘못하면 벼랑길로 떨어지게 되어 있는 이들이다.

무엇보다 이들은 직장에서는 젊은 세대에 쫓기고 가정에서는 외톨이다. 아내에게 지고 사는 게 편하다고 스스로 자포자기하고, 자녀에게는 귀감이 되어야 하기에 가족은 있지만 가정이 없는 존재감 들이다.

떠도는 유머 중 사필귀처(事必歸妻 반드시 아내에게 돌아온다), 진인사대처명(盡人事待妻天 아내에게 최선을 다하라) 등도 집안에서의 가장의 위치를 말해 준다. 여기에 우스개 말로 60대, 70대, 80대, 90대 할아버지가 목욕탕에서 만났다. 그런데 그들의 눈가에는 모두 멍이 들어 있었다. 이유는 60대는 아침밥을 달라고 했다가 맞았고, 70대는 어디 가느냐고 물었다가 맞았고, 80대는 아침에 눈을 떴다고 맞았고, 90대는 아직도 숨쉬고 있다고 맞았다는 이야기를 웃고 넘기기에는 씁스름 하다. 며칠전 막내딸은 인터넷 토론에서 동요 “아빠 힘내세요” 노래도 엄마도 직장생활을 하는 사회에서 “엄마 아빠 힘내세요”로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곳저곳 몸둥이를 끌고 다니다 여느 때처럼 주변 사람들이 퇴근하는 것에 맞춰 집으로 향하는 마음은 답답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아내 눈치를 살피고, 아내의 작은 지시(?)라도 떨어지면 후딱 처리하고서는 아내에게 자랑질까지 하는 가장, 휴일에도 혼자 어디를 가지 못해 눈치를 보는 모습이 측은지심까지 든다.

하지만, 나로 인해 함께 더불어 사는 사람의 삶이 위축된다면 불행이다. 양보 없고 이해하지 않으려는 요즘 일부의 가정 다툼은 쉽게 이혼이나 별거로 이어지는 것도 다반사이다. 변화도 상대가 함께 노력하지 않으면 미움으로 자란다. 50년 희노애락을 같이 해온 노부부는 아내가 미워지면 가장 아내를 사랑했던 시절을 생각해 보라던 조언도 현실에서는 녹녹치 않다.

배우자와 반백년 살다보면 당연히 미움이 틈을 비집고 들어오게 마련이다. 그러나 각박한 사회가 될수록 함께 꿈꾸는 가족간에는 서로의 배려와 희생이 선행돼야 한다. 가족이기 때문에 이해할 거라는 막연한 기대는 스스로의 위안일 뿐, 그 사이 무관심이 틈을 벌이게 된다.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듯 부모도 자식의 행동에 대해 짐작할 뿐이다.

겨울날 유난히 생활고로 자살하는 뉴스들을 자주 접하면서 노력해도 안되는 그들의 최후 선택을 50대 이상의 평범한 사람들은 ‘오직 했으면’ 하고 이해를 한다.

사람을 용서하고 보듬고 산다는 것은 어렵다. 가족은 우리가 최후까지 가장 편한 공간이어야 한다. 싫은 사람은 안 만나면 되고 피하면 되지만 가족은 다르다.

휴일에도 딱히 갈 곳이 없는 반백 이상의 남성들에게 빈자리는 늘 희생만 강요한다.

이럴 때는 그나마 지방에 사는 것이 다행이라고 느껴진다. 휴일이면 자동차로 10여분만 가면 바다와 산을 접할 수 있어 사시사철 계절을 느낄 수 있다. 도로는 교통체증 스트레스도 없어 공짜로 내준 자연의 혜택에 눈이 호강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래서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운동을 핑개삼아 산을 오른다. 그리 높지 않아도 정상에서 확 트인 전경을 스마트폰에 담아 보고, 눈에 보이는 만큼 절경을 담아내지 못해 다시 찍어대는 아쉬움은 과학의 미래 과제로 남겨 두는 것도 하루의 흔적이다.

‘과거가 많은 사람은 산을 오르고 미래가 창창한 사람은 바다를 찾는다’고 한다. 산은 오른 만큼 되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천천히 주변을 살피고 가다 보면 숲의 어울림에 나의 존재감은 사라진다. 여름에는 활엽 상록수가 주인인 듯 싶지만 겨울이면 산을 벌거벗기는 주체가 되고 소나무가 진정한 산의 주인임을 알수 있다는 게 반백 이상 중년들의 스스로 위안이다.

요즘 어렵다는 이야기를 사람마다 입에 달고 산다. 설 명절이 다가오면서 느껴지는 경제적 체감은 특수를 누려야 하는 상가나 시장들도 찬바람이 쌩쌩 분다. 직장인들도 매년 초 받아왔던 세금 연말정산 환급액도 올해는 받지 못하고 오히려 더 토해내야 하는 상황이 많다 보니 지갑을 닫아 식당마저 불황을 겪는 모양이다. 본디 설이나 추석을 앞둔 경우 지갑을 닫는 경향이 있지만 올해는 유독 두드러져 가정내 부권도 경기침체와 맞물려 비례해 간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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