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삼석 전 무안군수

▲ 서삼석 전 무안군수
23일은 상강이다. 상강은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는 때를 일컬으며 24절기 중 18번째인 셈이다.

색색의 국화는 더욱 활짝 피고 붉다 못해 타버린 단풍도 절정에 이르며 가을걷이도 웬만큼은 마쳐가기 시작하는 때로서 어쩌면 혹독한 시련의 겨울을 미리 알리는 시기인지도 모르겠다.

늦가을 서리야 추억과 낭만이 있지만 초겨울 서리는 그야말로 말 그대로 서릿발이다.

가을 달밤의 아름다운 대화도 나눠 보지 못한 체 맞는 초겨울은 밋밋하기 그지없을 터인데 우선은 아까운 달빛을 노래하기 보다는 겨우살이 채비를 서둘러야 하는 것이 현실인 것 같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선풍기와 에어컨을 끼고 살면서 계곡을 멀다 않고 찾아다니며 피서를 즐기곤 했는데 아무리 빠른 세월이라고 벌써 하는 사이에 계절은 어김없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갓 비어낸 들깻잎에서 마지막 향이 묻어나고, 늘씬하게 자란 무청이 매끄럽게만 느껴지는 사이로 들판은 푸른 옷을 벗어 던지기 시작했다.

짧아진 가을 해 만큼이나 농부의 손길은 더욱 바빠지는데 쌀값은 올해도 여전히 차분하다. 언제쯤이나 사먹는 사람이 손사래를 먼저 치고 파는 농부가 여유를 갖을지 지금은 아무에게 물어도 답이 없다. 농부에게는 과거도 미래도 희망도 없다는 말이 더욱 실감나 마음이 무거운 이 계절에 추수의 기쁨 보다 처리에 겪는 고통을 위로 할 수 없어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차라리 옛날처럼 독에 쌀 채워 놓고 땔감 싸놓으면 그래서 등따숩고 배부르면 나라님도 안 부럽다는 시절이 좋았을지 모르겠다.

요즘 세상은 그 시절처럼 밥만 먹고 사는 세상이 아니라서 어쩌면 더 어렵게 사는지도 모르겠다. 그야 인간이 자초한 일이니 어쩔 수 없다지만 피해갈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 매년 이때쯤이면 누군가의 손길을 필요로 하고 또 기다리는 이들 또한 많아졌다.

바로 그 손길이 올 겨울도 우리의 이웃을 살찌우게 해 주고 사랑으로 온정으로 감싸 주시는 농촌의 아름다운 여인네들의 손길이다.

사실 공직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섬세한 부분들에까지 마을이장님은 물론이고 부녀회장님들과 심지어는 노인회장님 그리고 새마을 부녀회 등 여성단체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농촌의 겨울은 그 여인들의 손끝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눈발이 휘날리는 찬 기운도 아랑곳 않고 이겨내며 시린 손 마다 않고 비벼대는 김장으로 할머니의 가슴을 훈훈하게 덥혀 주고, 자식도 못해주는 목욕봉사로 천사를 자처하며, 크고 작은 행사 때 마다 후라이팬에 기름 부쳐 가며 모은 돈으로 장학 사업에 보테고, 헌옷과 폐품, 고철까지 모아서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이 여성들이 있기에 그나마 추위도 어느 정도는 넘어설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아이들 돌보고 등굣길 살펴주고, 도시락 배달하고 간병까지 일삼는 우먼파워는 그칠 줄을 모른다. 문제는 의당 그들이 그런 일을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데 있다. 그러니 적십자 회비를 안내신 분이 그 자리의 최고 책임자가 되었다는 등의 어설픈 일들이 일어나는가 싶다.

공무원 연금법에 손을 되겠다는 정부라면 공권력을 대신해서 무보수로 봉사하는 이들에게도 눈길 한번쯤은 주고 넘어가야 하는 것 아닌가?

이 말은 온전히 내 뜻이다. 그러니 절대 오해는 없기를 바란다.

지금이니까 그나마 이분들이 봉사를 주저 하지 않으시지만 정작 그들에게는 누가 그렇게 봉사해줄 것인가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듯이 대가로 보기 보다는 작지만 제도의 틀로 끌어 안아야한다고 본다.

영국의 대처와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처럼 얻는 명성은 없을지라도 그들의 소박한뜻 만큼이라도 기억해 줄 수 있는 배려를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아무리 추운 겨울도 더 쉽게 더 따뜻하게 날 수 있을 것이고, 그래서 세상은 좀 더 살만해 지기 시작하지 않겠는가?

제발 쩨쩨하게 노인 겨울 난방비와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돈으로 정치적 흥정 말고, 복지비용은 미리 떼 놓고 다음 예산을 논하라.

약자에게는 베푸는 게 아니고 배려하는 것이다. 국가가 나설 일을 언제까지 봉사로만 때우려 말고 더 추워지기 전에 단단히 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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