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 초대석 <강경호>

일요일 새벽 4시께 갑자기 옥상에서 후다닥 발자국 소리가 났다.

잠결에 느낌이 이상해 속옷 바람으로 용수철처럼 밖으로 튕겨 나갔다. 우선 몽둥이를 하나 쥐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아버지도 따라오셨다.

아버지와 함께 옥상 아래를 살펴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도망간 걸로 생각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주택가 한 가운데 있는 우리 집에 어떻게 도둑이 들어왔는지, 마침 밖에 있는 화장실에서 아버지가 소피를 보고 있는데 아버지와 눈이 마주치자 문을 냅다 닫아 버리고는 옥상으로 도망을 친 것이다.

내가 들은 것은 도둑이 옥상으로 달려가는 발자국 소리였고, 그 소리에 깨어 밖으로 뛰어나간 것이었다. 다시 방에 들어와 멈칫거리고 있는데 옆집에서“도둑이야!”하는 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직감적으로 도둑이 옆집으로 숨어든 것을 짐작하고 밖에 나갔다.

낯선 시커먼 그림자가 다시 우리 집 담장을 넘어 집으로 들어왔다. 이번에는 옥상으로 올라가지 않고 급한 김에 뒤안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나는 몽둥이를 들고 뒤안으로 쫓아갔다. 뒤안에는 출구에 보일러가 놓여져 있어 길이 막혀있는 막다른 공간이다. 그런데 낯선 방문객은 보일러 통 위의 작은 구멍에 몸을 절반쯤 쑤셔 박고 엉덩이가 걸려있었다. 나는 몽둥이로 냅다 후려쳤다. 그리고는 발을 잡아 당겼다. 땅바닥에 내팽개쳐진 도둑에게 소리쳤다. “머리 박아! 그리고 두 손들어!” 그리고 도둑이 내 눈을 보지 못하도록 하여 기를 죽였다.

나는 도둑이 혹시 흉기라도 들고 있을지 몰라 두렵기도 했지만, 도둑 역시 내가 무서울 거라는 생각을 하였다. 다행히 도둑은 크게 반항하지 않았다. 그 사이 아내가 경찰서에 신고를 해 도둑을 경찰에 넘겼다.

요즈음 우리 동네뿐만 아니라 도둑 맞았다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들린다. 작년엔 사무실에 도둑이 들어 사무실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놓았다. 사무실에서 라면을 끓여 술까지 마시고 갔는지 술병과 먹다 남은 라면 국물이 엎질러 있기도 하였다. 크게 잃은 것은 없었지만 마음이 씁쓸하였다.

기왕에 도둑이야기가 나왔으니 이야기를 더 해보자. 오늘날 도둑이 각처에서 날뛰고 있다. 그것도 좀도둑이 아니라 국민이 낸 혈세를 모르게 또는 합법적으로 야금야금 깎아 먹는 큰 도둑이 설치고 있다. 자고 일어나면 언론에는 강도에서부터 좀도둑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단골소식으로 나타난다. 별의별 제도와 장치를 만들고 있지만 교묘하고 교활한 수법이 날로 지능화 되어가고 있다.

따지고 보면 인간은 지구상에서 가장 악랄한 도둑이 아닐 수 없다. 먹이 사슬의 맨 꼭대기에서 지상의 모든 동식물은 물론 땅 속의 보이지 않는 것까지 인간 마음대로 훔쳐 쓰고 있다. 즉 하루에도 수많은 나무를 훔치고, 수많은 어족을 훔치고, 그것도 부족해 달까지 훔치고 말았다. 이제 우주까지 훔치려 하고 있다.

그런 인간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욕망은 모든 자연을 인간의 것이라고 믿는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사고가 도사리고 있다. 어쩌면 그것이 인류의 문명을 발전시킨 원동력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그것이 잘못되었음을 인식할 때가 온 것 같다.어쨌든 도둑질은 이기적인 욕망에서 연유한다. 내 것이 아닌 것을 훔치는 일은 지양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도둑질로 인해 아름다워질 수 있는 일도 있다. 이른바 ‘아름다운 도둑’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명저 『시학(詩學)』에서 창작은 ‘모방’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였다. 즉 남의 것을 훔치는 일을 말한다. 이를테면 인간의 삶을 모방하고, 선·후배 시인의 시작품에서 슬쩍 이미지 몇 개를 도둑질해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변용 시켜 자신의 시를 만드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에 생몰 했던 수많은 현자들의 고귀한 생각을 훔치는 일, 또는 갖지 못한 자들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시킨 수많은 천사들의 아름다운 마음은 얼마든지 도둑질해도 괜찮을 것이다. 청춘시절에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훔치기 위해 참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훔치기도 하고, 상대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기꺼이 자신의 마음을 도둑맞을 줄 아는 일도 아름답다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아름다운 도둑이 되어야 할 것이다. 꽃의 마음을, 어린아이의 미소를, 조국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알았던 선열들의 용기를,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을 훔칠 줄 아는 도둑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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