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바른 산기슭에 고개숙인 할미꽃

“뒷동산에 할미꽃/ 호호백발 할미꽃/ 젊어서도 할미꽃/ 늙어서도 할미꽃/ 무슨 꽃이 못되어 할미꽃이 되었나.”어릴 적 봄철 무덤가에 돋아난 할미꽃을 보며 불렀던 동요가 생각난다. 70년대 통기타 가수 박인희가 부른‘할미꽃’노래가사를 들어보면 애처로운 할미꽃에 얽힌 전설을 노래로 불렀다.

옛날 옛적 남편과 일찍 사별한 어느 여인이 있었다. 이 여인에겐 세 딸이 있었는데 자식들을 위해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하고 부지런하게 살았다. 세월은 흘러 세 딸은 무럭무럭 잘 자라 시집 갈 나이가 되었다. 여인의 큰 딸과 둘째 딸은 이웃 마을에 사는 키도 크고 건강한 사내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다. 두 딸들을 시집보낼 땐 이 여인이 시집올 때 가져왔었던 고운 옷감이랑 그동안 정성껏 마련한 곡식까지 챙겨서 남부럽지 않게 잘 살도록 없는 살림에 최선의 장만을 해서 시집을 보냈다.

이제 막내딸 하나만 시집을 보내면 됐지만 어느덧 여인은 나이가 들고 노쇠한 할머니가 되어 버렸다. 할머니가 된 여인은 막내딸만 보면 늘 안타깝고 걱정스러웠다. 또 세월은 흘러 막내딸도 시집을 가게 됐지만 두 딸들처럼 혼수장만을 제대로 못해준 게 할머니는 마음에 걸렸다. 막내딸이 시집을 가던 날 할머니는 간신히 지팡이를 짚고 집 앞 언덕까지 올라가 막내딸 가는 걸 바라봤고, 마음 착한 막내딸은 홀어머니 두고 시집가는 게 맘이 아팠던지 몇 번이고 뒤돌아보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어느 날 할머니는 딸들 사는 모습이 보고 싶었다. 아이 엄마가 된 큰 딸 집으로 갔다. 처음엔 반갑게 맞아 주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큰 딸의 태도는 달랐다. 할머니는 큰 딸 집을 나와 둘째 딸 집으로 갔으나 매 마찬가지였다. 이 눈치 저 눈치 다 본 할머니는 막내딸만은 그러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고 막내딸 집으로 가기로 했다. 산 고개 넘어 사는 막내딸 집에 가기에는 어느덧 12월 겨울이라 바람도 차갑고 이미 노령(老齡)이라 기력도 쇠약했다.

그래도 보고 싶은 막내딸이기에 안간 힘을 다해 산 고개를 넘으려다 그만 힘에 겨워 쓰러져 죽고 말았다. 이 소식을 들은 막내딸은 그 자리에 한 맺힌 설움으로 어머니의 묘지를 만들고 살아생전 효도하듯 무덤을 돌봤다. 어느새 그 해 추운 겨울은 가고 따뜻한 새봄이 왔다. 따뜻한 봄날 양지바른 할머니의 무덤가에 이름 모를 고개 숙인 빨간 영혼의 꽃이 피었다. 그 꽃을 꼬부랑 할머니‘할미꽃’이라 부르게 됐다는 가슴 찡한 전설이다.

할미꽃은 여러해살이풀로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며, 전국의 산과 들녘의 길가 마른 곳에 분포한다. 식물 전체에 흰털이 많은 것이 특징이고, 꽃색은 붉은 자주색으로 4∼5월에 꽃이 핀다. 꽃이 지면 실 같은 것이 자라고 씨앗이 여물면서 하얗게 할머니 머리털처럼 된다해서 할미꽃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도 한다. 한방에서는 노고초(老姑草), 백두옹(白頭翁)이라 하고 다른 이름으로는 할미씨까비, 주리꽃, 호왕사자(胡王使者)라고도 부른다.

유독식물이라서 강력한 살충 살균효과가 있어 예전엔 여름철 재래식 화장실에 이 풀의 뿌리를 찧어서 뿌리면 구더기가 생기지 않았다. 약용으로는 뿌리를 소염제, 지사제, 치질치료제, 치통 등에 쓰인다. 민간에서는 전초(全草)를 해열제로 쓰기도 하고, 꽃즙을 관절염에 붙이기도 하지만 이 풀 자체가 독성이 있어서 사용시 반드시 주의를 해야 한다.

신라시대 설총이 여색(女色)을 좋아하는 신문왕(神文王)을 위해 지었다는‘화왕계(花王戒)’를 보면‘모란은 화왕(花王)으로, 장미는 가인(佳人)으로, 백두옹(할미꽃을 일컬음)은 장부(丈夫)로 나온다. 장미는 갖은 아양을 다 부리며 임금을 유혹하고, 백두옹은 바른 말로 임금께 충간하나, 임금은 장미에게 반하여 백두옹의 말을 잘 듣지 않았다. 이에 백두옹이 임금의 행동을 보고 탄식하자 그제야 임금이 잘못을 깨닫고 사과를 한다.’는 내용이다. 대부분의 꽃들은 화려하고 젊고 아름다운 이미지로 부각되지만,‘화왕계’에서의 할미꽃은 나이는 들었어도 올바르고 곧은 선비로 표현되면서 충언(忠言)의 꽃으로 다시금 태어나게 한 것이다.

이탈리아에는 피사탑으로 유명한 피사에서만 할미꽃이 핀다고 한다. 그 전설로는 십자군에 참여했던 피사의 움베르토 사교(司敎))가 예수 그리스도의 못 박힌 현장의 흙을 옮겨다 놓은 땅에서 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할미꽃이 순교의 꽃이라고 부른다. 또, 부활절에는 할미꽃물로 달걀을 염색한다 하여 부활절의 꽃이라고도 부른다. 꽃말 역시 종교적으로는‘당신은 주기만하고 아무 것도 요구하지는 않는다’이다. 어쩜 우리의 할미꽃 전설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의 헌신과 희생 그리고 죽음으로 인한 꽃으로의 부활이라는 의미에서 종교적인 꽃말과 일맥상통하다고 여겨진다.

요즘 철이 철인지라 농촌에 일손이 많이 부족한 현실이다. 더군다나 빠른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다 보니 농촌에는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젊어서부터 자식들 키우기 위해 지었던 농사일이라 이제는 도회지로 나가 사는 다 큰 자식 걱정에 먹을거리라도 손수 지어 주시려고 굽어진 허리를 손수레에 의지하며 오늘도 논과 밭으로 나가신다.

어찌 보면 현대인이라고 자부하며 살아가는 누군가의 자식이기도 한 우리들이 나이든 어른들을 홀대하거나 경시하지는 않았는지 잠시라도 자신을 뒤돌아볼 필요가 있다. 어느 무덤가에 외로이 고개 숙인 할미꽃이 나의 부모, 나의 모습이 될 수도 있기에 부모님의 참사랑을 가슴에 되새기며 노산(鷺山) 이은상 선생의 시조를 읊어본다.

“겉보고만 늙었다 마오. 마음 속 붉은 것을/ 해마다 봄바람에 타는 안을 끄지 못해/ 수심에 숙이신 고개 어느 분이 알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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