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군통합 ‘행정지도 다시 그리기’ 곳곳에 암초

■통합 논의, 주민이 중심돼야

정부와 국회는 지방행정체제개편을 통해 도를 폐지하고 시·군을 통합하는 방안을 그 동안 수차 진행하려다가 당시 학계와 여론, 지방정치계의 반발에 부딪혀 실패한 경험이 있다.

이번에도 정부가 앞장서고 국회가 지방행정체제개편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본격적인 논의를 다시 추진하면서 행정구역 개편에 앞서 시·군의 자율적인 통합을 먼저 추진하자는 안으로 손발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지방행정체제개편(통합)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의 역할배분, 지방정부의 계층구조, 지방정부의 행정구역에 관한 개편을 의미하는 만큼 헌법개정문제나 남북통일문제도 고려하면서 신중한 논의를 해야 하는 백년대계의 중대한 과제인 만큼 학자나 시민사회, 지역사회는 배제한 채 정부와 국회 중심으로 논의하려 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전문가에 의한 심층적인 검증과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고, 지방행정체제개편이 지역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인 만큼 지역사회가 논의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정치권에서 현재 논의되고 있는 행정체제개편은 지방자치계층과 행정구역개편에 치중되어 있다. 하지만 지방행정구역개편이나 지방행정계층구조는 지방정부가 수행하고자 하여야 할 기능을 먼저 염두에 두고 논의를 해야 하는 데도 지방정부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깊은 고려없이 진행되고 있어 우려가 크다.

국가전체의 시스템을 짜면서 국가경쟁력을 좌우할 정부간 역할에 관한 청사진이 없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시·군통합 밀어붙이기 안돼

광의적 차원에서 지방행정체제개편(통합)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대체적인 공감대가 높다. 하지만 지역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주민불편을 가중시키는 지방행정체제 개편은 국가의 장래를 위해 반드시 막아야 한다.

광역지방자치단체(시·도)는 경제적 정치단위로서 지역의 경쟁력을 높이고 효율성을 강화 방향으로 통폐합이 필요하고, 기초자치단체(시·군)는 일상적인 생활단위로 주민의 편익을 높이고 생활불편 해소 방향으로 경계조정이나 폐치분합(廢置分合)이 필요하다.

세계화로 인한 지역간 경쟁은 국가의 매개적 보호막이 엷어지면서 개인은 무한 경쟁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삶의 질을 보장하고, 사회적 유대와 참여 등을 통해서 가꾸어 가는 향토적 생활공동체로서 기초자치단체가 필요하다. 하천과 산책로를 정비하고, 운동시설과 생활편의시설을 설치 관리하고, 주민들에게 삶의 안식과 휴식의 공간을 제공하도록 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서는 16개 시·도 지방정부를 쪼개 40개 내지 70개의 통합광역시로 만들고 몇 개의 시·군을 더 묶어서 통합하려고 한다. 이는 지방자치의 핵심인 기초생활자치를 포기하려는 발상이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통합을 지원하려는 통합촉진법안은 기초자치를 돈폭탄으로 파괴하려는 것과 다름없다.

물론 생활의 변화로 행정구역과 생활구역이 불일치하게 된 지역은 기초지방자치 단체도 행정구역의 경계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통합 쪽으로만 밀어붙이려는 발상은 타당성이 약하다.

■도시·농촌 욕구 달라 부정 견해 극복 필요

통합을 위해서는 시민이 주체가 돼야 한다. 각계각층의 시민이 전문성과 관심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제도화가 먼저 필요하다.

무엇보다 열세 지역을 배려하는 게 필요하다. 군 지역은 ▶화장장·쓰레기소각장 등 혐오시설이 들어설 가능성이 높고 ▶마구잡이개발의 위험이 있으며 ▶농어촌 지역에 주어지는 세금 혜택이 없어지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끌어안아야 한다.

지금 고유지명을 잃어버린 옛 여천시와 여천군 주민들의 상실감은 크다. 통합 당시 약속과 달리 시청사가 운영되지 않고, 1청사(옛 여천시청)와 2청사(옛 여수시청), 3청사(옛 여천군청)로 흩어져 있는 것도 효율성과 행정력 낭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때문에 시군통합이 단순한 땅합치기가 아니라 지역공동체의 형성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인 정체성을 유지하도록 하여야 한다.

정치적 대표성은 지역주민이 자신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을 정도의 범위 내에서 구역이 결정되어야 한다. 특히 농촌 지역의 대표성 저하로 도시 중심으로 행정이 치우칠 경우 농촌은 다양한 혜택이 축소될 수 있다.

기초의원 선출 구역을 제한하여 농촌 지역이나 소규모 지역 주민의 요구를 정책에 반영, 각종 위원회와 사회단체에 지역의 대표성을 고려하여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무엇보다 도시 주민은 도서관, 미술관, 운동장, 공원 등 공공 서비스를 선호한 반면 농촌지역은 농지개량, 농도 등 진입도로 포장 및 확장, 영농 시설의 지원, 배수 설비의 설치 등의 공공 서비스를 선호한다.

이에 대한 투자 우선 순위를 결정하기가 어려운 만큼 주민 참여 예산제를 통한 예산 편성 우선 순위 선정과 농어촌 지역 재원 투자 비율 명문화가 필요하다.

■국회·학계의 움직임

민주주의 기본 원칙은 주민들의 참여이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주민들의 의사와 달리 정부와 정치권, 학계 중심으로만 논의를 해오다 보니 정치적 이해 때문에 진척된 적이 없다.

1996년 신한국당이 도 폐지안(기초 50-60개 통합)이 마련됐고, 2006년 국회 특위 구성(도 폐지 자치 1계층화, 시군 통합, 자치구의 행정구 전환), 2008년 11월 3일 한나라당 권경석 의원 대표 발의(도 존치, 50-80개 광역통합시로 개편, 특별시 4-5개 통합 자치구)로 법사위 회부, 2008년 12월 12일 민주당 우윤근 의원 대표 발의(도 폐지, 5-7개 광역시, 70-80개 통합시로 개편, 특별시 존치, 자치구 통폐합 행정구, 상임위원회 회부 중), 2009년 3월 31일 자유선진당 이명수 의원 대표 발의(특별시, 광역시, 도 통합하여 전국을 5개 광역주로 하는 강소국연방제), 의안 발의에 이어 올들어서는 2009년 2월 9일 민주당 노영민 의원이‘기초자치단체자율통합특별법’발의, 4월 15일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해 4월 22일 법안심사소위 상정 실패한 상황이다.

행정구역 개편(통합)은 장기적 관점에서 국가 경쟁력 제고와 남북 통일, 주민 불편 해소 등을 고려해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때문에 학계에서는 통합은 향후 10년간 3단계 통합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다.

▲1단계(2-3년)로 통합 추진 기구 발족과 통합에 필요한 행정·재정·법률적 기반 마련 ▲2단계(5-7년)는 폐기물 처리나 상하수도 시설 등 인프라 공유 및 공무원 인사 교류 ▲3단계(7-10년)는 주민 투표 실시 등 단계적 접근 방안 제시이다.

■통합 시너지는

1995년 도농통합은 중앙이 통합의 결정 및 집행을 거의 주도하고, 지방은 중앙의 결정이나 집행 지시에 따라 수행되었기 때문에 대상 지역의 주민이나 공무원들의 불만이 많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 중심의 단기적이고 획일적인 구역 개편 정책을 지양하고, 사전 조사 및 계획 하에 장기적, 순차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중앙정부가 획일적으로 추진하기보다는 지방이 처한 경제적 여건에 따라 의견을 잘 수렴할 필요가 있다.

전국 최초의 주민발의를 통해‘3여(麗) 통합’을 이끌어 낸 여수시는 1997년 9월9일 주민 합의로, 이듬해 4월 1일 통합시가 출범해 올해로 11년째를 맞고 있다.

3여 통합은 정부가 강제로 추진한 것이 아니라 주민투표법이 제정되지 않은 상태에서‘주민 의견 조사’를 3개 자치단체장의 합의를 통해서 행정구역을 통합했다.

지역의 최대 현안인 통합을 위해서 옛 여수시쪽에서 행정동 수와 의원 수, 통합 청사 등 민감한 부분까지 먼저 양보도 한몫 했다. 또, 여수시 출신 시의원과 여천시·군 출신 시의원의 동 수가 되도록 시의원들이 지역구가 없어지는데도 찬성하여 27개 동을 14개 동으로 13개 동을 감축했다.

여기에 1998년 통합 시장 선출도 지역 규모에 있어서 가장 열악한 여천군수가 인지도 면에서 가장 불리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무소속인데도 초대 통합 시장으로 당선됐다. 이것은 그만큼 시민들은 소지역주의를 초월하여 투표했음을 의미한다.

이후 통합 전에는 지역의 인사들이 좁은 지역에서 활동하였지만 통합 이후에는 시민 사회단체장을 비롯한 각종 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하기 위해 경쟁력을 갖추는 모습도 보였다. 즉 자리는 한정되어있는데 선택의 폭이 커져서 안배와 당연직이 없어지고, 각 단체에서 추천하는 형식을 택해 종전과 달리 안주하지 않고 나름대로 전문성과 도덕성을 키우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됐다. 특히 특정 몇몇 인사가 지역의 문제를 좌지우지하는 무원칙적인 행위가 사라지게 돼 도시가 역동성을 갖게 된 것도 통합의 긍적적 효과이다.

현재 여수시는 통합 이후 목포와 순천을 앞지르며 전남 제1의 도시가 됐다. 중복 업무와 행사 감소로 예산이 절감됐고, 국고보조금과 시도비 보조금도 크게 늘었다. 여수에 대한 인지도도 상승해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여수엑스포) 개최권 획득에도 크게 기여했다.

 

통합 추진, 명분 분명하고 생산적인 축제가 돼야

현행 행정구역의 골격은 조선 말기인 1896년(고종 33년)에 도보와 우마차가 교통수단일 때 정해졌다. 그러나 지금은 비행기, 고속철도, 자동차, 지하철 등으로 생활권이 넓어져 각종 도시 인프라가 구축됐고, 인터넷과 휴대폰을 통한 전자 민원 처리가 보편화 됐다.

하지만 이런 명분만 가지고 인근 지자체끼리 통합하여 무조건 규모만 커진다는 논리는 위험하다. 필요한 경우는 규모가 작은 것이 훨씬 지방자치의 장점을 살릴 수도 있는 점을 간과해서도 안된다. 왜 통합을 하고, 통합을 누가 필요로 하는 것인지가 분명히 해야 한다.

때문에 통합 논의는 시민 합의를 거치는 것을 우선으로 하여 각종 토론회와 연구 용역 결과, 시민 여론조사 등이 필요하다. 아울러 통합이 정확한 지역의 실정에 대한 분석과 지향점, 목표 등이 분명하여 다수의 시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물론 통합이 정부의 일괄적인 조치에 따라 할 수도 있지만 해당주민간 필요로 해서 논의를 거쳐 하는 주민 주도형 통합이어야만 그 힘이 지역 발전과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근간이 된다.

특히, 통합은 상층부만의 결합이 아닌 공개적인 프로젝트가 되어야 한다. 통합을 추진이 무조건 밀어붙이기보다 즐거움을 더해 주어 시민의 입으로 전파되는 축제가 되어야 한다.

통합 운동은 대의정치의 한계인 특정 대표자의 개인적 판단에서가 아니라 시민 모두의 요구로 끌어올리는 직접 참여형이 되어야 한다. 통합이 되고 안 되고의 모든 판단은 시민들에게 맡기고, 찬반을 추진하는 단체나 개인간의 감정의 골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고, 필요하다면 선거공영제처럼 찬반 양쪽에 일정액의 예산을 지원해서 연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통합은 지역의 최대 현안이라는 점에서 언제든지 충분히 검토할 수 있다는 열려있는 자세와 더불어 풀뿌리 지방자치의 건강성을 회복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임을 인식하여 생산적인 지역 발전 방안 모색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통합과 관련된 모든 활동을 누리집을 만들어 공개하여 누구든지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도록 하고, 통합 논의가 소모적인 논쟁이라는 폄하보다는 시민을 상대로 한 민주적인 훈련이라는 생각에서 논의도 확산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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