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전국을 아수라장으로 휩쓸고 간 루사의 상처는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될지 엄두를 못 낼 지경이다. 도로가 끊기고 하천이 범람하여 물길이 바뀌고 농경지가 초토화되어 버린 현실 앞에서 망연자실해 하는 피해 민 가운데 농민이 입은 피해가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곳 전남 서남부 지역은 여느 지역에 비해 피해가 적어 황금빛 가을 들녘은 겉으로 보기에 풍성한 것 같다. 그러나 가을걷이에 신명이 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짧은 추석연휴 기간 객지에 나가있던 자식들이 달려와 잠시 잠깐의 위로가 되었지만 자식들이 떠나간 골목길에서는 아이들 웃음소리, 울음소리가 먼 추억처럼 가라앉아 있다.

이는 농촌에 대한 희망이 없어 젊은이들이 모두 도회지로 떠나고 없음을 반증해 주고 있는 것이다. 요즘 농촌에는 홀로 사는 노인이 증가하고 있다. 그 가운데 무연고 노인들도 있지만 자식에게 신세지지 않고 뼈를 묻을 고향에 남겠다는 착하디 착한 노부모들이 많기 때문인 것이다. 덩그라니 홀로 앉아 사진 액자 속에서 웃고 있는 어린 손주녀석들의 얼굴을 그리워하며 살아가야 하는 많은 노인 분들은 어찌 되었거나 혼자인 셈인 것이다. 이렇듯 농어촌 노인 인구가 증가하는 것은 도시로 빠져나간 젊은이들의 자리를 메울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이런 농촌의 현실을 감안하여 각종 세재 혜택을 부여하고 농특자금을 방출하여 돌아오는 농촌을 만들겠다고 공언한 바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로 피폐해 가는 농촌현실을 지금은 어떤 시각에서 접근해야 하며 어떤 방법으로 이 문제를 풀어가야 할지 아직은 이렇다할 대안이 없다. 이는 단위시간당 노력과 투자에 비해 농업소득이 여타 산업소득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데다가 미래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그 문제의 근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젊은이들이 과연 농촌에 정착할 수 있겠으며 부모 또한 자식들에게 농사를 대물림하고 싶겠는가? 젊은이가 없는 농촌은 노동력 저하를 불러 특수작물을 하는 소수를 제외하고는 주곡작물 생산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미 쌀 농사는 더 이상기대할 수 없는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지만 조상대대로 물려온 논농사를 포기한다는 것 또한 불가능한 현실인 것이다. 오직 농사에만 전념하던 사람들이 작금에 와서야 도시 노동자로 상인으로 직종을 변경할 여력도 없을 뿐더러 설령 그 일이 가능하다고 할지라도 농토에 대한 애착은 고향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인 것이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말은 이제 케케묵은 고사성어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는 실로 위험한 생각인 것이다. 산업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밀릴 수밖에 없는 것이 농산업이겠지만 이런 이유로 이를 무시해 버린다면 식량산업의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을 때는 이미 헤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농업을 육성하는 차원이 아닌 보호 쪽에 더 큰 비중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농어촌 지역 노인 인구 증가의 가속화가 심화되고 있음에 대하여 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특별한 관심과 노력이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농어민을 위한 보조금 또는 융자 등이 달콤한 미끼가 되어 부채를 가중시켜 왔음을 직시하여 이제는 지원이 아닌 보호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1994년 3월 김영삼 정부에서는 농어업 경쟁력강화와 농어촌 산업 기반 시설 확충 및 농어촌 지역 개발 사업에 따른 재원 확보 목적으로 법인세에 대해 농어촌 특별세를 제정했었다. 이후 동년 7월 1일부터 시행되어 2004년 6월까지 한시적인 목적세로 운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특별세가 당초의 목적대로 제대로 쓰여져 왔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자신 있게 답변할 사람이 없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농어촌 특별세는 현재 소외 받고 있는 농어민에게 도움을 주지 못해 왔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늦지 않았다. 이제라도 농어민을 위한 목적의 특별세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 일부 특수층을 위한 농촌기반 조성이니 경쟁력 강화니 하는 지원보다는 소외 받는 대다수의 농어민 보호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생활여건을 개선하고 농어민 복지와 의료 생활 보장까지 그 범위가 확대된다면 농촌을 더 이상 떠나고 싶은 곳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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