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여생은 고향 사람들과 함께 할터

큰 것보다는 작은 일에 마음을 주고 강자보다는 약자나 정의 편에 서서 세상을 살아간다는 이동신(59) 서울시 교통회관 사무국장.

그의 외모에서는 누구라도 도울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엿볼 수 있다.

이동신 사무국장은 전남 무안군 삼향면 임성리 383번지에서 아버지 이용채씨와 어머니 김복순씨 사이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7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고 형들의 공부를 위해 초등학교를 졸업과 동시에 학업을 중단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은 배워야 한다는 집념 하나로 갈퀴나무를 팔아 책을 사서 다시 학업을 시작했었다고 한다.
이 국장은 어려서부터 운동을 좋아해 친구들로부터 항상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그 덕분인지 학창시절에는 규율부장까지 하게 됐고 김대중 대통령을 30년간 모시는 수행 경호비서까지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수행비서 시절은 결코 순탄한 시간들은 아니었다고 회고한다.

1970년대에 김 대통령을 모시기 시작한지 1년여 만인 1971년에 공작정치에 대항하여 방해공작에 앞장섰다.바로 그 사건이 바로 김포강화사건이다. 그 후 고향으로 돌아와 1992년 전남도의원 출마해 자신의 진실을 믿어준 무안군민들의 지지를 얻고 당선의 영광을 차지했다. 그 후 1996년 두 번째 도의원출마를 하였다가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현재는 서울시 교통회관 사무국장을 맡고 있으면서 나에게 남아있는 혼신의 힘으로 일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 국장의 자식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2001년에는 내고향 농민들의 고통을 나누고 싶어 쌀 230가마를 팔아 주었고 무안군향우회 행사 때면 장소제공 등 고향의 일이라면 서슴치 않고 지원과 협조를 해주고 있다고 한다.

‘항상 분수에 맞게 살아라’는 교훈을 가지고 어렵고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며 올바르고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는 보람을 느끼고 산다는 이 국장. 그는 항상 말단 직원들 편에 서서 불편한 점을 먼저 해결해 주고, 격려하고, 직원들을 위해 마음을 쓰는 것이 말없이 지켜보는 아버지의 훈훈한 정을 느끼게 한다.
항상 돈 한푼 벌어다 주지 않는 남편을 끝까지 뒤에서 묵묵히 바라보고 아버지 몫까지 다해 아이들 교육과 훈육에 힘써 훌륭한 자식들을 길러준 아내 장우심(58)씨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뿐이었다고 한다.

앞으로 남은 여생을 고향 분들과 함께 살고 싶고 남들이 나를 평가했을 때 정말 진실되게 살았다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내 주위의 사람들을 돌보며 미래를 지향적으로 살아가다 보면 인생은 항상 보람 찰것 이라고 말했다.

▲약력=▽목포상업고등학교 졸업▽성균관대학원 수료▽미국 죠지 워싱톤대학 최고 정치지도자 과정 수료▽신민당 김대중 대통령후보 수행 비서▽민주당 중앙당 당기위원▽제4 대 전남도의원 ▽현) 새천년민주당 중앙당 홍보위원회 부위원장, 서울시 교통 회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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