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균 무안문화원장

[무안신문] 희망찬 신축년 2021년 새해가 밝아오고 있습니다. 2020년 경자년은 전 세계가 유래 없는 코로나19로 시대 변화가 나타나고 아울러 생활환경이 사람 접촉을 멀리하게 하는 시대가 형성되었습니다. 이런 자각에 옛 글귀를 소회하고자 합니다.

▲오해균 무안문화원장
▲오해균 무안문화원장

한시를 공부하는 모임에서 각자가 좋아하는 사자성어를 말했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비육지탄(髀肉之歎), 명경지수(明鏡止水), 법고창신(法古創新) 등이 나열되었다. 명경지수(明鏡止水)는 장자의 덕충부(德充符)에 나는 말이다. 거울 같이 맑고 잔잔한 물이란 뜻이다. 집념과 가식, 허욕 없이 맑고 깨끗한 마음을 말한다.

비육지탄(髀肉之歎)은 중국 촉(蜀)나라의 유비(劉備)가 은거하고 있던 시절, 오랫동안 말을 타지 못하여 넓적다리에 살이 찌는 것을 한탄한 고사로,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가지지 못해 헛된 세월만 보냄을 탄식한 말이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은 논어 위정(爲政)편에 나오는데,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서 새로운 것을 아는 것이다.

나는 그 모임에서 법고창신(法古創新)을 추천했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은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이고, 우리나라에서 만든 성어다. 그리고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이 연암집 권1, 초정집서(楚亭集序)에서 사용했다. 그는 열하일기(熱河日記)로 잘 알려진 북학파의 거두다. 법고창신’의 뜻이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이니, 논어(論語) 위정편에 나오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과 의미가 비슷하다. 그런데 연암은 굳이 ‘온고이지신’을 두고, 왜 법고창신’이란 말을 새롭게 만들었던 것일까?

옛것을 본받는 사람들은 옛것에 구속되어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근심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이들은 그 불경(不經)됨을 걱정한다. 그런데 옛것을 본받으면서도 변화할 줄 알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면서도 근본을 잃지 않는다면 매우 이상적일 것이다.

연암 당시의 문인들은 진한(秦漢)의 문장과 당송(唐宋)의 시를 모범으로 여겼다. 연암에 의하면, 그들은 글을 쓸 때마다 고어를 생각하고 경전에서 뜻을 찾아서 근엄함을 가장하며 위엄을 뽐냈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대상이든 참다운 묘사를 할 수 없었다. 연암은 고문에 대한 단순한 모방, 즉 방고(倣古)를 가장 경계했다.

그가 유한준(兪漢雋·1732∼1811)의 글을 읽고 쓴 편지에, “문장은 기이하지만 사물의 명칭에 중국말을 빌려 쓴 것이 많고 인용한 출처도 맞지 않는 데가 있으니 옥에 티가 되었다”는 내용이 있다. 이어서, 연암은 “문장을 짓는 데도 법도가 있다, 글 쓰는 일은 행상이 제 물건 이름을 외치듯 해야 한다. 땔나무를 지고 다니면서 소금을 사라고 외친다면 온종일 돌아다녀도 나무 한 짐 팔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고’는 긍정적인 것만이 아니다. ‘창신’ 또한 무조건 옳은 것이 아니다. 법고는 말 그대로 옛것을 모방하는 것이니 그 안에 빠져 나올 수 없게 될 수 있으며, 창신은 자칫 지나쳐 기이함으로 흐를 수 있다. 지나친 창신은 차라리 법고가 지나친 것만 못하고 법고에 흐른 듯하나, 참신(斬新)하다 못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혁신적인 문투와 내용이다. 그가 얼마나 창신에 힘썼는지 능히 알 수 있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이 꼭 문학에 속한 말은 아니다. 이 세상 살아가는 모든 이치를 그 말 앞에 둔다면 삶의 질은 부족함이 없겠다. 물론 이 사자성어는 중국이나 일본에서 사용하지 않았다. 앞으로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보다 이 말이 널리 사용되기를 희망한다. 이것 또한 우리의 문화가 해외로 수출되는 한 예가 될 것이다.

무안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지 3,000년, 혹은 더 오래 됐다고 말한다. 그 긴 시간 동안 삶의 모습은 곳곳에 스며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서, 그들이 쓰던 유물에서, 또 거대한 지석묘에서, 역사의 한 장을 기록한 인물에서 그 흔적들이 발견된다. 이 모두가 문화유산이다.

문화란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전반적인 생활양식이다. 언어, 의상, 종교, 법, 도덕과 같은 규범, 예술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그리고 문화 중 오랜 세월에 걸쳐 이어져 내려와 고유한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 문화유산, 곧 전통문화다. 전통문화는 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전통을 지키면서 새로운 콘텐츠로 계발해야 한다. 이때 법고창신(法古創新)처럼 적절한 말은 없다. 법고창신의 핵심은 단지 전통을 계승하는 것에만 있지 않다.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우리의 고유성을 살리면서도 세계인들이 친근감을 갖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전통 무예인 태권도와 태껸에 중국의 무술 등을 접목하여 세계적 공연으로 찬사 받는 뮤지컬 ‘점프(JUMP)’가 그 예다.

수주 김환기 화백의 ‘우주’라는 작품이 136억에 낙찰 되었다. 그의 작품은 한국의 수묵화에서 번지는 기법과 서양의 유화에서 머무는 화법이 절묘하게 섞였다는 평을 받는다. 이 또한 우리 수묵화의 법고창신일 것이다.

우리 무안의 문화에서 법고창신 할 것들을 나열해 보면, 품바와 각설이가 있다. 각설이패의 전통연희를 무대화하여 마당극의 외연을 넓혔고, 장기공연 레퍼토리로 정착되었다. 각설이와 품바는 공연자의 개성이 빛난다. 이 또한 세계로 나갈 우리의 귀한 문화이며 자산이다.

약 500년 전 무안 도공들이 빚어낸 분청사기 귀얄문이 제작되었다. 무안에서 처음 시작한 독특한 그릇이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분청사기 귀얄문이 가진 옛것에서 새로운 무안만의 분청사기를 빗는 것이 어떨지.

노촌 임상덕의 문집은 그의 사후 그 부인이 노력한 끝에 세상에 나왔다. 이제 그 부인의 공적 또한 여성을 괄시하던 옛 제국의 문화에서 남녀가 동등하고 나아가서 능력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회자되는 이 시대. 그녀의 능력을 세상에 내놓는 것도 하나의 일거리다.

초의선사의 ‘동다송’을 읽고 더 나아간 제2, 3의 동다송이 나오는 것도 기원한다.

현세를 사는 우리는 오래된 삶의 그릇을 보면서 먼 미래를 내다보는 것에 가치를 두어야 한다. 그 모든 것을 보존하며 그것에서 변화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것이 우리 후손들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한다. 옛것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옛것이 더 이상 남루하지 않도록 새롭게 변화시키는 것이다. 곧 그것이 법고창신(法古創新)일 것이니, 이 또한 문화원이 해내야 할 덕목 가운데 하나이다. 나는 문화원의 수장으로 이 말을 항상 새기며 지키는 것 또한 나의 본분으로 여겼다.

코로나 시대는 우리네 일상을 참으로 많이도 바꾸어 놓았다. 예전 같으면, 각종 문화 행사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저마다의 의견을 제시했다. 또 저소득층들을 위한 봉사나 도움의 손길로 대중매체나 종교계가 상당히 시끌벅적할 법한데 잠잠하다. 이는 장기간 지속되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민생경제나 민심을 흔들고 있는 탓이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생활자체가 바뀌었다. 손을 맞잡고 흔들며 반기던 몸짓, 술잔을 부딪치며 건배사를 읊던 일, 서로 어깨동무를 한 채 마이크를 잡고 노래방에서 춤추며 노래 부르던 일 등이 그렇다.

예부터 우리 민족은 노래하고 춤추던 것을 즐겨하지 않았던가. 이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만나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주먹을 내밀어 맞댄다. 이 또한 달라진 문화의 한 모습이다. 그러나 이런 것도 우리 민족 정서에 맞는 새로운 문화생활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이처럼 우리는 전통문화와 외래문화가 함께하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무안의 문화를 기록하고 보존하고 또 새롭게 하는 것이야말로 문화원의 지대한 책임이요 의무다. 법고창신. 다시 한 번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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