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禁煙)에 대한 소회(所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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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연(禁煙)에 대한 소회(所懷)
  • 이재광(무안군청 친환경농업팀장)
  • 승인 2020.09.16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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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무안군청 친환경농업팀장)

[무안신문]

▲이재광(무안군청 친환경농업팀장)
▲▲이재광(무안군청 친환경농업팀장)

코로나19 상황이라 주말이라고 해봐야 딱히 할 것도 없고 근처 공원이나 거닐까 하고 아파트를 나서는데 건물 옆 귀퉁이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담배를 피우던 어린 녀석들이 몸을 숨기는 것이다. 그래, 지금부터 저렇게 하지 않아도 어른이 되면 실컷 할 수 있을 텐데!

그래, 6년 전 이맘때 필자는 삼십 몇 년을 하루도 빠짐없이 한 갑반 내지는 두 갑씩 태워오던 담배를 갑자기 끊었다가 공황장애 증상을 느끼면서 다시 피울까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러면서 끊기로 독심을 품었는데, 이대로 무너지면 안 된다면서 버텼고 하루, 이틀, 닷새, 일주일, 열흘, 한 달, 백 일, 육 개월, 일 년... 고비마다 의미를 부여해 가는 내 자신이 어리석다는 생각도 했다. 그것은 애초에 몰라도 될 것을 알아가지고 그것을 다시 끊겠다면서 고통스러워하니 말이다.

온라인 공간에 회자되는 7초짜리 동영상 하나를 며칠 전 지인으로부터 받았다. 망설임 없이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사무실로 보이는 공간에 열대여섯 명의 남직원들이 자리에 앉아 무엇인가를 하는데, 하나같이 담배를 꼬나물고 있는 것이다. 그 옆에서 일을 하는 여직원의 표정이 무척이나 고통스러워 보인다. 8~90년대 흔히 볼 수 있었던 오피스 공간의 모습인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이 남자들도 과거의 필자만큼 흡연을 즐기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담배는 기호품(嗜好品)이라고 믿었던 사람 중에 한 사람이라 혼자 있을 때는 잠을 자는 시간을 빼고 거의 담배를 물고 지내었기 때문이다.

흔히 하는 얘기로 ❍❍소주를 많이 마셔 준다고 해서 ❍❍양조 사장이 감사패를 준다거나 소주 한 병을 덤으로 얹어주는 일이 없듯이 전매청(담배인삼공사) 사람들도 담배 많이 태운다고 담배 값을 깎아주거나 담배 한가치 거저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담배를 그렇게 태웠던 것이다.

그런 담배를 끊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밝힐 수는 없지만, 금연(禁煙)을 시도했었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본시 담배라는 음식(?)은 ‘참는다’ 고 하지 ‘끊었다’ 고는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두 번 다시 입에 대지 않을 자신이 있으니 끊었다고 말을 하는 것이다.

금연을 실천하고 나니 무엇보다 몸에서 담배냄새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오른손 검지와 중지손가락에 베인 니코틴냄새는 물론이고 온몸과 옷에 베인 역겨운 냄새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사실, 담배를 태울 때는 냄새 때문에 미용실을 못가고 담배를 태우는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 머리카락을 잘라주는 이발관만 찾았는데, 금연과 함께 미용실을 찾게 되더라는 것이다.

미안한 얘기 같지만 시도 때도 없이 담배를 입에 달고 살다보니 버르장머리 없게 비춰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게의 치 않았다. 오죽했으면 필자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주고받던 얘기를 떠올리게 된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지금 담배를 입에 물고 있겠는가? 안 물고 있겠는가?’ 를 놓고 내기를 하고 있었는데, 밖에 있다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니 묻는 것이다. “자네 방금 전(❍시❍분)에 담배 물고 있었는가? 안 물고 있었는가?” 당혹스러우면서도 머리를 긁적거리며 “담배를 태우다 왔는데요..” 라면서 말끝을 흐리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동생이나 조카 같은 젊은 녀석이 싸가지 없고 건방지게 굴었을지 몰라도 눈 딱 감고 받아 주시던 선배님들이 그리워지는 때이다. 다시 7초짜리 동영상속으로 들어가 본다. 80년대 후반 공직에 첫발을 내 딛었을 때만 해도 책상마다 재떨이가 놓여 있고, 민원 접견용 탁자위에도 재떨이가 놓여 있었다. 또, 그것을 비우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얘기를 하면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얘기를 한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그랬다는 것이다.

겨울이 끝나갈 무렵 시작된 ‘코로나19’와의 싸움은 계절이 두 번이나 바뀌었어도 그 기세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확진자 숫자는 누계로 어언 이만 천여 명이 넘었다. 어떻게 지금까지 버텨왔을까? 끝을 알 수 없기에 더 힘겹기만 할 것이다. 싸워왔던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또 그렇게 싸워나가야 한다면 어찌될까? 답답할 뿐이다. 모질게 참아왔던 담배지만 이럴 때는 입에 물고 싶고, 길게 한 번 내뿜어 보고 싶다. 하지만 참아야겠지! 백해무익(百害無益)한 담배 다시는 빠져들고 싶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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