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신문]

사회가 갈수록 포악해진다는 생각이다. SNS 등 미디어 급성장이 개인들의 생각을 전달하는 과정이 다양해지면서 사회는 정의로운 공론보다는 개인의 인신 공론장이 늘었다.

과거 정치권은 독재와의 싸움이었다. 인신공격보다는 독재에 항거, 자유를 두고 연대 투쟁했다. 그리고 자유를 얻었다. 그렇게 얻어진 자유가 지금은 SNS 등을 통해 간접 살인 무기가 됐다. 정당은 정의도 없다. 정당 내에서 공론화되지 않는 개인 트위터를 통해 특정인을 공격하는 앞잡이가 되고, 공격 세력과 연대해 특정인을 함께 매장해 나간다.

그 과정에서 언론들도 한몫을 거든다. 공인의 매도는 흥밋거리가 됐다. 마치 정의인양 연일 대서특필하며 국민간 편 가르기를 조장하고, 특정인을 끝장내면 그것이 언론의 힘처럼 의기양양 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진정 ‘내로남불’ 식으로 남을 비난 수 있는지는 한번쯤 돌아봤으면 한다. 누군가 나를 겨냥하면 나 역시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결국 억울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수없이 보아왔다. ‘역지사지’로 입장을 바꿔 보면 간접 살인자로 동조하진 않는다.

그래도 양심 있는 사람이다 보니 극단적 선택을 한다. 그만큼 사람들을 의식하고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반면, 질타와 비난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뻔뻔한 사람들도 많다. 그들에 대해서는 시간이 지나면 용서(잊어짐)를 한다.

본디 남의 칭찬 10분은 어렵다. 그러나 비난은 1시간도 부족할 만큼 우리는 타인에 대해 칭찬보다 비난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오고 있다. 칭찬은 나와 가깝게 지낸 사람이지만 비판은 나와 친분이 없어도 매우 가까운 사람처럼 3인칭 사람까지 동원하곤 한다.

세상이 너무 각박해졌다. 예수의 말처럼 죄 없는 자 저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고 했을 때 누구도 돌을 던지지 못했다. 그때만 해도 사람들의 심성이 착했나 보다. 지금 같으면 예수까지 나쁜 사람으로 치부하며 누군가 게답지도 않는 용기로 앞장 서 삿대질을 하면 두 사람 모두에게 돌팔매질을 할 세상이다. 잘잘못보다는 군중심리 힘을 보태는 것이다.

싸움도 멈춰야 할 때가 있다. 적장도 죽으면 잠시 싸움을 멈추는 경우가 있었다. 최근 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을 보고,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매칭된다.

박시장이 지난 10일 숨진 채 발견된 후 13일 장례가 치러졌지만 한국 사회는 연일 논란이다. 특히 박 시장이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서울시의 5일장 장례는 안 된다는 청와대 청원이 50만명을 넘었다.

그가 살아온 업적이나 도덕성 평가까지 몽땅 매장돼서는 안 된다. 역사는 현실만 보고 판단하지 않는다. 물론 시각이 다를 수는 있다. 그러나 장례식 기간만이라도 시시비비를 덮어 둘 여유가 없다는 게 문제다. 장례식장은 시시비비를 따질 때가 아니고, 측은지심으로 함께 애도해 줄 시간이다.

그런데 야당은 문상을 가지 않겠다고 하고, 사회는 미투를 등장 시켜 고인의 유가족에게까지 상처를 준다. 가족도 공범이 된다. 누구보다 가족의 상처는 크다. 정쟁이나 규명은 장례를 치룬 5일 후부터도 가능하다. 우리 사회는 기다려 줄 5일의 여유도 없다.

권력을 이용한 미투였다면 마땅히 처벌을 받아야 한다. 미투로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현재 감옥살이를 하고 있고, 오거돈 부산시장이 수사를 받고 있다. 죽은 박시장이 미투였다면 죽음으로 스스로 벌을 받았다고 치자. 더 이상 허물을 들춰 본들 유가족들의 고통만 커진다. 미투 피해 당사자 보호를 위해서라도 관용이 필요할 때다. 그런데 당리당략만 있는 정치가 문제다.

여유를 갖고 자신을 돌아보는 세상이 됐으면 싶다. 불만의 돌출구를 누군가의 비난으로 가세해 간다면 우리 2세들의 사회는 더욱 각박해질 수밖에 없다.

나는 정말 비난받지 않을 사람인가. 나는 타인에게 아무 상처를 주지 않았을까. 법의 잣대를 대면 침소봉대 된다. 내가 누구에겐가 준 상처도 그 사람에게는 고통스러웠다. 공인이나 그들이 저지른 행위보다 가볍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청문회나 검찰 조사를 보면, 비난하는 정치인들에게 당신들은 정말 비난할 자격이 있는지다. 당신도 그 자리에 서면 똑같은 상황이 된다. 다만 정도 차이일 뿐이다. 물론 공인의 죄는 사회의 모범을 지탱해 가는 점에서 가볍게 간과돼서는 안 된다.

남을 용서하고 배려하는 역지사지 사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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