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신문]

▲이재광 (무안군청 환경농업담당)
▲이재광 (무안군청 환경농업담당)

“‘라떼는 말이야’가 무슨 뜻인 줄 아세요? 저거 모르면 꼰대소리 듣는 답니다. 젊은 세대들이 기성세대를 꼰대라고 나무라는 소리랍니다.”

요즘은 ‘나 때는 말이야’를 ‘라떼는 말이야’로 바꿔 쓰면서 기성세대를 조롱한다는 것이다. ‘나 때는 말이야, 라떼는 말이야’ 드립(adlib)은 중장년층이 젊은 사람에게 뭔가에 대해서 훈계를 하거나 혹은 20대가 10대에게 무엇인가 훈계를 할 때 쓰는 말로 “내가 젊었을 때는 말이야”라고 해석을 하면 된단다.

이때 주로 등장하는 주제는 군대, 직장, 언어, 문화, 취직 등이 있는데, 이 말을 해석하면 훈계하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전성기 시절을 떠올리며 “나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라며 과거의 자신의 영광이나 경험만을 바탕으로 훈계를 하는 것이다.

또는 과거에만 살고 있어 새로운 것은 받아들이지 못해서 일어나는 현상이기도 한다는데, 물론 나이나 세대 차이가 많이 난다면 아랫사람은 자기가 직접 보지 않았기에 ‘진짜로 그랬나?’ 할 텐데 나이로 보나 경륜으로 보나 얼마 차이도 나지 않는 상대에게 그런 얘기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

나이 먹고 아랫사람 눈치 잘 보기

‘나 때는 말이야!’ 같은 직장 내에서 밑바닥생활을 같이 했었고, 차이도 별로 나지도 않는데, 지위(?)가 조금 바뀌었다고 해서 속된 말로 ‘가오’를 잡는다면 어찌 될까? 물론, 그런 위치의 상대라면 직접 그리하지는 못할 것이다.

(여기서 ‘가오잡다’는 멋 부리다, 폼 재다, 허세를 부린다는 의미의 왜놈들 말이니 사용을 자제해야겠지!)

하지만, 이제 갓 들어온 신입들 앞에서 자신의 신입시절을 무용담(?)처럼 얘기하며 일은 혼자서 다 했고 야전교범(FM)처럼 생활해 왔다는 식으로 거드름을 피우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그래, 저런 얘기를 듣고 있는 젊은 저 친구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물론, 좋게 생각하면 되는데…. 행여 모 공중파방송의 드라마 속에 나오는 ‘꼰대인턴’ 쯤으로 생각하지는 않을까? 아무튼 나이를 먹는 것도 서글픈데, 이제 아랫사람 눈치까지 봐야 하는가? 갑자기 슬퍼지는 것이다.

요 근래 들어 느끼는 감정이지만, 오십 고개를 넘어 이마에 인고(忍苦)의 잔주름 하나가 더 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면서 오래전부터 맘먹었던 것을 실행에 옮기기로 마음을 굳혔다.

2년에 한 번씩 의무적(?)으로 실시하는 건강검진, 피만 빼서 주고 나오면서 내 할일 다했다고 해왔는데, 금년에는 몇 가지 옵션을 가미해서 예약을 하고 며칠 전 병원을 찾았었다.

대장 수면내시경 검사를 위해 팔에 주사바늘을 꽂고 침대에 누워 잠이 들길 기다리는 그 짧은 순간에 “이러다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한다면 나란 존재(?)는 이대로 끝인가?” 참 기분 나쁜 상상을 하면서 결심을 굳힌 것이다.

본분 다하고 고심했던 흔적 모아서

호사유피(虎死留皮) 인사유명(人死留名)이라고 했던가? 아직까지 벼슬(?)은 못했기에 이름 석 자 올려놓은 곳은 없어도 살아오면서 몸소 보고 듣고 느낀 진솔한 얘기들을 책으로 묶어 보겠다는 야심(野心)이 그것이다.

물론, 그 동안 아쉬움도 많았고, 서운함도 적지 않았다. 자그마치 30여 해를 줄곧 한 우물만 파왔으니 말이다. 그러면서 용케도 버텨냈으니 나 자신 스스로에게 대견스럽다는 얘기를 해줄 법도 하니 말이다.

여기저기에 남겨 놓은 흔적들을 뒤적거린다. ‘꼰대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나를 낮추고 공직자로써 본분을 다하기 위해 고심했던 흔적들이 역력하다.

무엇보다 부끄럽지 않은 삶을 위해 발버둥을 치던 지난날의 모습들이 한 편의 파노라마 영상처럼 스쳐 간다.

그래, 한 권의 책이 나오려면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서둘지는 않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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