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 있는 문화재’에서 ‘살아 있는 문화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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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 있는 문화재’에서 ‘살아 있는 문화재’로
  • 박금남 기자
  • 승인 2020.04.22 14: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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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일로성당, 격납고(6기), 방공포대 국가등록문화재 지정 추진
일제강점기 군용기 격납고 희소성
군산동 상수시설 상수도 관련 연구 보존가치 높아
방공호·참호는 전라남도 문화재 지정 필요

[무안신문=박금남 기자]

무안군의 근대문화유산은 그동안 전문가나 일반인에게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근대문화유산이란 19세기 말 개항기 무렵부터 한국전쟁 후인 1950대까지 건립되거나 만들어진 각종 건축물, 산업구조물, 기록물 등으로 짧은 시기에 조성된 유산이지만 학술적이나 생활 문화사 측면에서 그 가치는 매우 높다.

이에 무안군은 지역 내 근대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을 위해 지난해 목포대에 근대 문화유산 조사를 용역 의뢰하여 지난 1월 최종 용역 결과를 받았다.

그 결과 ◇천주교 일로성당 △천주교 무안성당 ◇격납고(6기) ◇방공포대 △무안 병산 방공호 △무안 병산 참호 △삼향읍 군산동 상수시설 △왕산리 근대한옥 등 7곳이 근대문화 유산으로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무안군은 천주교 일로성당, 비행기 격납고(6기), 방공포대(1기) 등 3곳을 국가등록문화재 지정을 추진, 4월에 문화재청에 서류를 제출할 계획이다.

무안군은 이번 용역을 통해 무안에 현존하고 있는 근대건축물을 자산으로 인식하고, 데이터베이스를 구축, 체계적인 관리로 관광 등 콘텐츠 개발에도 나설 계획이다. (편집자주)

■ 무안·일로천주교 성당

1950년대 후반 건립된 천주교 무안성당과 일로성당은 근대건축물 그 자체로 보존 가치가 있다. 두 건물의 보존 및 지속적 활용은 지역의 1950년대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무안지역 종교 활동을 투영 시켜 주는 본보기가 될 수 있다.

◆ 천주교 일로성당

천주교 일로성당은 60여년의 역사를 가진 농촌지역 성당이다.

목포 산정동 성당의 모란(T, Moran, 안)신부가 일로에 공소 설치(1952. 5.1.)를 계기로 시작됐다. 공소 설립 후 4년만인 1956년 5월 10일 일로성당으로 승격됐고, 현재의 본당 건물은 1958년 9월 건립됐다. 현재 경내에는 본당 외에 수녀원, 사무실, 식당 등이 있다.

일로 성당은 남향으로 위치하며, 철근콘크리트 2층 구조다. 건축구조는 석재를 사용한 조적식으로 전면 진입부만 2층 형식이고 그 외는 단층이다. 공사는 손양동이 지었다. 그는 무안성당도 맡아 공사를 마무리했다.

◆ 천주교 무안성당

천주교 무안성당은 1899년 목포 이내수보좌신부가 무안 우적동에 정착하면서 시작됐다.

정식으로 무안읍에 천주교 성전이 들어선 것은 1953년 함평성당 무안공소다. 이 공소는 다음 해인 1954년 11월4일 무안성당이 됐다.

현재의 본당은 1957년 12월22일 착공하여 1958년 1월8일 헨리주교의 집성으로 본당 축성식을 거행했다. 본당의 시공은 일로성당을 시공한 손양동으로 일로성당(1958.10.)보다 10개월 정도 일찍 건립됐다. 무안성당은 동남향이며 본당 등 주요 건물도 같은 향이다. 건축구조는 석재 조적식이며 지붕틀은 목조트러스 구조이다.

■ 격납고, 방공포대 등 전쟁 관련 시설물

비행기 격납고, 방공포대, 방공호 등은 2차 세계대전 말기 일본군이 연합군의 공습을 대비하기위해 건설한 시설물로 역사적으로 보존 가치가 매우 높은 건조물이다.

보존 방법은 현상 그대로 유지하여 일본 침략의 생생한 역사적 현장을 교훈 장소로 그대로 보여준다. 진입로 정비, 편의시설 및 안내판 설치 등 주변을 공원화하고 기념관 건립 등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비행기 격납고는 소규모 공연장이나 예술가들의 활동공간 등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이는 격납고의 면적이 우선 농촌지역의 규모에 적정하고 형태도 특이하며 방음 등도 갖춰져 있어 주민들의 문화공간으로 제공하기에 모든 여건이 적정하다. 또 하나는 예술가들의 작업 및 전시공간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 현경 격납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일본군의 병참기지화 정책으로 인적·물적 수탈과 함께 전쟁에 대비하기 위한 각종 군사시설이 들어섰다.

무안 일대는 1943년에서 1945년 해방 직전까지 축조한 비행기 격납고, 지하벙커, 방공호 등이 남아있다. 태평양전쟁 말기 무안군에는 현 망운면 무안국제공항 자리와 현경면 평산리 일대 등 2곳에 군용비행장을 건설했다.

망운면 국제공항 자리는 당시 건설이 완료되어 잠시 사용했었고, 현경면 비행장은 건설 마무리쯤에 전쟁이 끝나 완성되지 못했다. 항공사진 측정상 미완성 공항 활주로 길이는 약 2.15km, 망운공항은 약 1.8km로 나타났다.

일본군은 비행장 건설과 함께 비행기를 보관하는 격납고도 건립했다.

현경면 송정리와 평산리에는 각각 3기의 격납고가 있다. 모두 100∼200m의 간격을 두고 있다. 송정리 격납고는 망운면 무안공항 비행장용으로, 평산리는 현경면 비행장용으로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6기 모두 거의 평탄한 구릉성 지형에 위치하고 있고 주변은 경작지화됐다.

구조는 3기 모두 철근을 약간 넣은 타원형 일체식 콘크리트 구조다. 현 상태는 비교적 양호하다. 콘크리트 재료 중 모래는 상부에 조개껍질이 일부 드러나 있는 것으로 보아 인근 해사가 쓰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건립은 지지대를 세우고 흙으로 일정 크기의 마운드를 축조한 후 그 위에 길이 약 1,800mm, 폭 150∼180mm 판재를 촘촘히 이어대어 그 위에 콘크리트를 타설했다. 그리고 그다음, 내부 흙을 제거하여 구조체를 완성했다. 일부 격납고 후미와 측면은 판재 없이 그냥 흙 위에 타설을 한 곳도 있다.

◆ 현경 방공포대

현경 방공포대는 현경면 외반리 산 88에 위치하고 있다. 일본 군용비행장 근처에 축조한 군사시설이다. 용도는 포 등 무기를 설치하여 하늘을 방어하는 구축물로 알려져 있다.

방공포대는 주변에 산지 등 장애물이 없어 당시 하늘을 감시하는 데 좋은 위치였고, 반 지하형 정방형 구조물로 구조는 철근콘크리트다. 지하 내부는 중앙에 내경 1.33m의 복도를 두고 양 측면으로 같은 규격의 4개의 실(3,290x2,290)이 꾸며져 있으며 출입을 위한 별도의 계단실은 좌측에 두었다. 각 실 상부에는 850x600 정도의 개구부가 지붕 상부 슬래브에 1,1m 높이까지 돌출되어 있다. 즉, 4개의 돌출구조물이 지붕 상부 슬래브에 있다.

◆ 병산 방공호

모두 방공호 3기를 발굴됐으나, 다수의 방공호가 병산 곳곳에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방공호 3기는 각각 약 100m의 거리를 두고 병산 8부 능선에 위치하고 있다. 내부는 모두가 암반이기 때문에 크게 훼손된 곳 없이 축조 당시의 구조를 잘 유지하고 있다.

방공호 1호는 전체 길이 3.6m, 높이 1.8m, 폭 3.3m로 길이는 짧지만 폭이 상당히 넓다. 내부가 웅덩이식 원형 모습이며 입구는 현재 높이가 0.65m로 매우 낮고 좁으며 경사가 심하다.

방공호 2호는 전체 길이 20m, 높이 2.7m, 폭 2m로 전형적인 터널식 구조다. 높이도 2.7m로 매우 높아 사람의 이동에 불편함이 없다. 상부구조는 단면이 아치형식이 아닌 평평한 구조다. 방공호 3호는 1호와 2호의 중간 규모로 전체 길이 9.89m, 높이 2.1m, 폭 1.88m다. 구조는 방공호 2호와 유사한 터널식구조다.

◆ 병산 참호

참호는 넓은 의미로 야전에서 적의 공격에 대비하는 방어시설이다. 형태는 도랑형식으로 땅을 파고 상부에 소총이나 기관총 등을 거치하고 방어와 공격을 한다.

군사 방어용 시설이 병산 상부에 2기가 있다. 위치는 그들이 건설한 군용비행장 방향으로 설치되어 있고 그 주변에는 여러 개의 방공호도 있다.

구조물은 병산 진입로와 약 550m 위쪽에 또 1기가 있다. 2기 모두 상태는 비교적 양호하다. 이 구조물은 숲속에 가려져 그간 식별이 잘 안 됐고 그 형태가 지표에만 드러났기 때문에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참호 2기 모두 도랑형식이 아닌 단독형 참호다. 형태는 1,300x1,300mm 크기의 방형 호가 있고 그 전면으로는 날개 형식의 대칭 구조물이 홀과 연결되어 있다. 설치 방향은 모두 군용비행장을 바라보는 하향이다. 구조는 바닥면까지 철근콘크리트 구조이며 벽체 두께는 150mm다. 호 깊이는 0.985m로 예상보다 깊지 않다.

■ 군산동 상수시설

군산동 2기 상수시설은 일제강점기 초기에 목포시민의 식수 공급을 위해 축조된 대형상수시설이다. 현재 수원 확보를 위해 막은 댐과 취수정, 그리고 정수를 위한 구조물 등이 건립 당시의 모습으로 잘 남아있다. 이곳은 근대기 수원지 구조를 살펴볼 수 있는 국내 유일한 대형시설로서 그 차체로도 흥미를 유발할 수 있다. 특히 기계실 건물은 디자인이 매우 독특하고 조형미가 있다.

◆ 군산동 제1 상수시설

군산동 제1 상수시설은 목포와 약 13km 거리로 1914년 4월 착공하여 1916년 4월 통수식을 했다. 유역면적은 103.9ha였다. 공사비는 총 23만5천원이었고 반은 국고로, 반은 부채로 충당했다. 이후 1923년에 둑을 90cm 높여 저수능력을 증가시켰다. 당시 이 수원지에서 생산된 용수는 인구 2만명이 189일간 소비할 수 있는 수량이었다. 현재 수원지 및 댐, 침수정 및 교각, 정수시설 등 옛 모습이 비교적 잘 남아있다.

군산동 제1 상수시설 출입구는 정교한 석제 아치구조로 되어 있고, 문은 철제문이 달려있다. 상부 처마 돌림띠 중앙에는 원형 일장기가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 군산동 제2 상수시설

제2 상수시설은 제1 상수시설 북쪽에 인접하여 있다. 공사는 1926년 6월 시작하여 1928년 3월 준공됐다. 공사비는 13만5천원이 들었고 유역면적은 49.2ha였다. 제1 상수시설 준공이후 10여년 만에 대형 수원지를 또 개발한 것은 당시 목포 인구가 1915년 12,782명에서 1925년에는 26,718명으로 10년 만에 배가 늘었기 때문이다.

■ 왕산 근대한옥

왕산리 한옥은 일제강점기 부농의 주생활을 살펴볼 수 있는 근대한옥이다.

현 관리자의 증조부가 건립, 관리자의 부친(1936년생)이 2살 때 건립한 가옥이라고 한다. 1938년경으로 여겨지나 건축물대장에는 1944년으로 기재되어있다.

한옥은 일제강점기 삼향읍 주변에 많은 토지를 보유한 부농가의 가옥으로 전통가옥과 크게 구별되는 근대한옥의 특징을 잘 보유하고 있다. 현재 안채만이 남아있으나, 건립 당시 문간채, 헛간채, 사랑채 등이 있었던 매우 규모가 큰 가옥이었다. 안채 전면 한쪽 편에 자리하고 있는 사랑채는 오래전에 매도되어 현재는 별도의 가옥으로 관리되고 있다.

현재 무안군 내에는 국가 민속 문화재인 유교리 고택이 있으나 왕산리 한옥도 그에 못지않은 건축적 특징이 있다.

■ 문화재 지정을 통한 보존

역사 및 구조적 특징이 잘 드러나 있는 근대문화유산의 보존을 위해서 국가 등록문화재 지정이 필요하다.

등록문화재 제도의 가장 큰 목적은 지역의 역사 문화적 환경을 나타내주는 근대문화유산의보호를 위한 것이며 거시적 문화재 정책에서 벗어나 지역 주민의 생활과 삶, 장소, 그리고 역사까지를 포함하여 보존하고 관리하기 위한 것이다.

무안군의 근대건축물의 경우 목포의 영향을 받아 석조 중심의 건물이 비교적 많이 남아있다. 특히, 현경면 일대에 집중되어 있는 비행기 격납고, 방공호, 방공포대 등 일본군의 군사시설도 매우 중요한 근대기 전쟁시설로 주목된다. 군산동 상수시설은 그 가치가 매우 큰 근대 산업시설임에도 그간 세상의 관심 밖에 있었다.

비행기 격납고가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사례로는 남제주 비행기 격납고(등록문화재 제39호, 2002년 지정)와 밀양 구 비행기 격납고(등록문화재 제206호, 2005년 지정)가 있다. 남제주 격납고는 현재 19기가 남아 있는 전쟁 관련 시설물로 1937년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제주도민을 강제 동원하여 건설한 대규모 전투기 격납고다. 밀양 격납고 역시 일본군이 1940년 전후에 축조한 것으로 현재 2기가 있다.

상수시설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사례로는 1940년 초에 만들어진 강원도 동해 구 상수시설(등록문화재 제142호, 2004년 지정)이 있다. 침전지, 기계실 및 여과지, 정수지 등 6식이 문화재로 지정됐다. 군산동 상수시설은 동해 상수시설 보다 설치연도가 약 24년 정도 빠르며 관련시설물도 규모나 형식 등에서 크게 비교가 된다.

성당건축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사례는 무척 많다. 이유는 근대기 서양문화가 한국에 들어오는 과정에서 천주교의 역할이 매우 지대했고 그 중심 공간으로 일찍이 성당을 세웠기 때문이다. 최근에 마지막으로 지정된 사례로는 2019년 12월에 등록문화재 제764호로 지정된 목포 경동성당이 있다. 석조 건물인 이 성당은 1954년에 건립됐으며 시공은 무안 일로 성당을 건립한 손양동이 건립했다. 즉 4년 후에 일로 성당을 건립했으며 이보다 1년 먼저 무안성당도 공사했다.

근대문화유산 활용으로는 ◇지역의 독자성을 표출하는 심벌로 활용 ◇주변 문화재 및 문화시설과 연계한 관광자원 활용 ◇관광안내소나 갤러리 등 관광객의 편의시설로 제공 ◇특산물 판매장 및 공방 등 이용 ◇지역주민 문화공간 활용 방안 등이 있다.

등록문화재 지정 여건이 충족되지 않는 유적은 전라남도 지방문화재(유형문화재, 기념물, 자료 등)로 신청하여 제도권 속에서 보호될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도 있다. 왕산리 근대한옥, 무안성당, 병산 방공호와 참호 등 4건이 여기에 해당된다. 특히 병산의 방공호와 참호등은 근대기 군사시설은 전라남도에서 문화재로 지정된 것이 하나도 없어 희소성 측면에서도 적극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또한, 「무안군향토문화유산보호조례」에 의거, 무안군 향토문화유산으로 우선 지정하는 방안도 있다. 현재까지 무안군에 지정된 향토문화유산의 대부분이 재실, 정자 등 전통건축에 한정되어 있다고 볼 때 근대시기까지 그 범위를 확대하여 지정할 필요성이 있다. 특히 훼손과 멸실의 우려가 큰 일제 시기 군사시설인 방공호와 참호 등은 먼저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한 후 전라남도 지방문화재로 신청할 필요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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