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야)라고..

[무안신문]

이재광(친환경농업담당)
이재광(친환경농업팀장)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늦게 시들어짐을 알 수 있다고 했던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국면을 맞으면서 불현듯 공자(孔子)님의 말씀이 떠오르는 것이다.

잘 아는 바와 같이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은 2019년 12월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시에서 발병한 유행성 질환이다. 처음에는 ‘우한 폐렴’으로 통용이 되었으나 WTO에서 신종 바이러스 이름을 붙일 때 편견을 유도할 수 있는 특정 지명이나 동물 이름을 피하도록 한 원칙에 따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명명을 했다.

주로 호흡기로 전염이 되며, 감염되었을 경우 바이러스는 폐를 침범하여 고열과 기침, 호흡곤란 등의 증상이 발생하고, 폐렴과 유사한 증상을 보이다가 심한 경우 폐포(肺胞 허파꾀리)가 손상이 되면 호흡 곤란으로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젊은 날 지나친 흡연으로 폐가 손상되는 바람에 호흡기에 장애(?)가 있는 필자로선 은근히 걱정되는 부분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는 한번 전염이 되면 3~7일 동안의 잠복기(최장 14일)를 거치며 잠복기 중에도 전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아직까지 백신이나 직접적인 치료제가 없기에 예방이 필수적이며, 외출 전후 흐르는 물에 30초 이상 손 씻기와 외출 시 위생 마스크 착용만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백신이나 치료약이 없다는 사실이 다들 두렵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발병지가 아니고 국내 상황이 이럴 진 데, 중국 후베이성의 우한시는 어떨까? 썰렁하다 못해 ‘유령도시’처럼 오가는 사람 없이 텅텅 비어있는 모습이 TV 화면에 비추는 것이다.

국민 알 권리도 좋지만, 촌놈 겁주듯이 이런 광경을 보여주는 보수 종편채널과 뉴스 전문채널이 위압감과 불안감을 조장하는 것만 같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호주와 미국, 일본이 우한에 거주하는 자국 교민의 탈출(?)계획을 세워 전세기를 띄워서 국민들을 실어 나른다.

뒤늦게나마 우리나라도 교민에 대한 이주대책을 세워 지난 1월30일과 31일 전세기를 보냈다. 그리고 교민들의 임시 집단시설로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과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 수용하겠다는 방침이 발표되었다.

문제는 설 연휴가 끝나고 천안의 ‘우정공무원교육원’과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에 격리시설을 만들기로 방침을 세웠는데, 정부 방침이 사전에 유출돼 천안지역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하자 여론을 의식한 나머지 아산과 진천으로 변경이 되었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일 처리를 엉성하게 했을까?

농기계와 트럭을 동원하여 집단 이주 시설로 결정된 연수원 진입도로를 막고 집단 농성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 실시간 보도가 되고 있다. 다들, 왜 저러는 것일까? 마을 회관이나 경로당에 앉아 TV를 시청하고 있는 시골 노인네들이라면 전쟁이라도 일어난 줄 알 것이다.

그래, 그렇다면 우한시 교민들이 남인가? 이럴 때일수록 한 발짝씩 양보를 하면 안 될까? 전쟁 중 적국의 포로라도 피를 흘리고 있으면 손을 내밀고, 치료해주며 부축해서 일으켜 세우는 것이 사람에 대한 도리이고, 생명외경(生命畏敬) 사상이며, 그렇게 하는 것이 인도주의 실천이 아닐까?

물론, 정부의 책임도 크다. 교민들의 수용 예정지를 천안으로 정했으면, 그대로 밀어붙였어야지 무슨 이유로 중간에 변경을 해서 소란을 자초했을까? 법을 집행하고 행정을 하고 사람이라면 결정은 신중하게 하고 결정된 사항에 대해서는 한 치의 양보가 없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정이 공정하고 투명해야 할 것이다. 이래서 령(令)을 세우고, 원칙을 지키는 일이 어렵다는 것일 것이다.

또, ‘중국인 추방’을 입에 담는 부류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총선을 앞두고 국민여론을 호도하거나 더 이상 반목과 갈등을 조장하지 말았으면 한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나만 살고 우리만 살겠다면? 그게 사람의 도리인가? 어려울 때일수록 지혜를 모으자! 그리고 나보다는 대의를 먼저 생각하자.

폭파된 한강철교를 건너기 위해 철제 난간을 틀어잡고 있던 난민들의 모습을 찍어 놓은 빛바랜 사진 한 장이 떠오른다. 국민들한테는 안심하라고 해놓고 나만 살겠다고 피난길에 오르던 70년 전 한국전쟁 당시 위정자들의 모습과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어려움을 겪어봐야 그 사람의 진가를 알 수 있다고 했는데, 이제 시작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이럴 때일수록 지혜를 모으고 정부의 통제를 따라주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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