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회사 명진을 찾아서

1995년 44세의 나이로 최연소 국제 와이즈맨 한국 남부지구 광주 지방장을 지낸 (주) 명진 김봉재(51)사장, 그는 사회 봉사활동과 함께 사업에의 열성도 남다르다.

김사장과의 첫 만남은 사장실이 아닌 낡은 작업복을 입고 현장에서 공정을 점검 하고있는 공장 에서였다.

주머니 부분이 찢긴 옷을 입고 새참으로 라면을 끓여 먹는 소탈한 모습을 보고 김봉재 사장의 평소 검소한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김봉재 사장은 주 1회 직원전체 회의를 통해 직원들의 의견을 경영에 반영하는 한편 매달 사장이하 전 직원이 모여 식사를 함께 하면서 가족 같은 우애를 다지는 것이 회사의 큰 자랑거리라고 했다.

김사장을 중심으로 한 전 직원의 단결은 지난해 매출액 10억원의 성과를 올리는 계기가 되었고 올 목표 24억원은 불가능하지 않은 것이라는 느낌을 갖게 했다.

주식회사 명진을 설립 할수 있었던 동기는 (주)서산 콘크리트사 재직 당시 현장에서 콘크리트 흄관의 단점인 파손율, 시공의 어려움, 경제적인 손실, 수밀성의 문제점을 수 없이 보아 왔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 이유로 모든 문제와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흄관을 대체할 PE소재 개발에 착수하게 되었고 김사장의 노력은 1999년 7월 한국화학 시험 연구원으로부터 품질 보증 업체지정(Q마크)를 받았다.

그후 9월에는 한국 플라스틱 공업 협동 조합으로부터 표준 표시 인증(PL)과 우수 단체 표준 확인을 받고 2000년 5월에는 ISO9002 인증을 받는 등의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이렇듯 (주)명진이 크게 도약 할수 있었던 것은 김사장의 헌신적인 노력과 미래 지향, 인간존중, 기술 혁신, 사회 봉사의 경영 철학과 그의 끈질긴 인내심과 학구열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1979년 8월 한양대학교 산업 대학원 산업기계과를 졸업하고 1988년 고려 대학교 경영대학원과 1995년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수료했으며 1998년에는 조선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을 마치기까지는 그 만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고 한다.

김사장은 이 뿐만 아니라 평생을 국가와 어려운 이웃을 위해 헌신하신 부친(김희철)의 영향을 받아 1998년부터 국제 와이즈맨 한국 남부지구 총재직을 수행하고 있고 2001년부터는 무안군 체육회 이사로 활동을 하고 있다.

2002년에는 무안군의 ‘육상’ 인재가 교육 여건으로 인해 타 지역으로 스카웃 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로 육성하기 위해 망운중학교 박찬민(16), 조주연(16) 학생에게 매월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김사장은 이러한 사회 활동과 끊임없는 연구, 경영의 세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혼자서 해낼 수 없는 일이며 부인 염명자씨의 적극적인 지원과 말 없는 내조가 있었음으로 가능했다고 얼굴을 붉혔다.

‘주식회사 명진’ 김봉재 사장의 겸손과 격식을 차리지 않는 자발적인 노력과 실천은 불신임이 팽배한 현 사회 세태 속에서 따뜻한 참 경영인으로 각인되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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