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이색적 결혼식

화려한 웨딩드레스도 입지 않고 부케도 들지 않은 신부, 은사들의 축하의 말로 대신한 주례사.

3월14일 오후6시 광주시 동구 궁동 나인갤러리에서는 무안이 낳은 조각가 고근호(36)씨와 화가 주홍(34)씨가 이색적인 전시회장 결혼식을 가졌다. 판에 박힌 듯 아무 특성이 없는 결혼식이 싫어 자신들을 잘 알고 있는 동료선후배들만 초대해 결혼식을 올렸다. 특히 이 날은 결혼식과 함께 두사람의 조각과 그림들을 모아 ‘즐거운 상상전’이라는 주제의 전시회를 겸한 자리이기도 해 그 의미가 더욱 각별했다.

양승찬(나인갤러리)관장은 시집가지 않을 것 같았던 주홍씨와 사람 좋은 고근호씨가 사귄다는 말을 듣고 남·녀를 엮어주는 월하노인역을 자처했단다. 아끼는 두 화가를 다른 곳에서 결혼식 올리게 하고 싶지 않아, 당사자들의 공동전시회를 기획해 개막 날 동료선후배들 앞에서 식을 올리자고 제안을 한 것.

여느 결혼식에서는 볼 수 없는 진풍경 중 또 하나.
“지금까지 키워주시고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후원해주신 부모님께, 저희들을 잘 가르쳐주신 스승님께, 손수 손으로 입고 있는 이 옷을 지어준 후배화가 전진영에게 감사드립니다”는 신부가 하객에게 올린 인사말 순서.

신랑신부가 ‘대상’이 아닌 진실로 오늘의 주인공이 된 즐겁고 특별한 결혼식이었다. 전시된 작품들은 만남을 갖는 동안 있었던 둘 사이의 에피소드나 연애편지, 어렸을 때 사진 등이다. 특히 주홍씨는 조각을, 고근호씨는 그림을 그려 서로 영역을 넘나드는 시도를 하기도 했으며 고근호씨는 ‘여인두상’‘미스김’의 작품으로 주홍씨를 형상화했다. 주홍씨가 조각으로 내놓은 ‘명상’은 고근호씨와의 만남과 관련이 있는 작품.

선암사 부근의 암자터가 작업실인 그는 어느날 스님과 얘기하던 중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는 말에 골몰하게 되었다. 고민아닌(?) 고민에 몇날며칠을 밥도 못먹고, 잠도 못잘 정도로 매달려 있었다. 그렇게 며칠, 일순간 뭐라고 표현할 수는 없지만 머리가 맑아지고 깨달음을 얻은 것 같은 환희와 기쁨이 밀려왔다. 그때 떠오른 사람이 고근호씨 였고, 서로 연락이 닿아 결혼에 이르게 된 것.

고근호씨는 술취한 도시의 밤, 차배달하는 미스김, 맞짱, 형님 같은 우리주변의 일상적인 풍경들과 인물들을 유머러스하고 경쾌하게 풍자적으로 표현해온 작가. 조선대학교 미술대학과 동대학원을 졸업했고 네 차례의 기획 및 초대 개인전(서울 제3갤러리, 광주 궁동갤러리,나인갤러리)을 가졌다.
주홍씨는 회화의 영역을 넘어서서 퍼포먼스에서부터 거리프로젝트 기획에 이르기까지 문화와 예술이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기위해 끊임없이 ‘즐거운 상상’을 시도하는 작가. 전남대 미술학과와 중앙대 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했으며, 아홉차례 개인전(서울 갤러리이콘, 광주빛고을갤러리, 탑전갤러리초대 등)을 가졌다.
결혼 이후에도 담양과 순천에 있는 각자의 작업실에서 그대로 작업을하며, 살림집은 광주에 마련했다고.

고근호씨와 주홍씨는 3월14일 화이트데이에 결혼식을 올린 컨셉에 맞춰 하얀 다이어리를 제작, 이날 참석한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다이어리는 내년 화이트데이까지로 구성되어있으며 자신들의 작품사진을 담았다.
저작권자 © 무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