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는 사람냄새 나는 정(情) 있었으면
상태바
가을에는 사람냄새 나는 정(情) 있었으면
  • 발행인 박금남
  • 승인 2019.10.07 11: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발행인 박금남

뜨겁던 냄비 식듯 가을은 여름의 꼬리에 이르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 요즘 날씨가 지난 여름 더위가 언제 있었느냐는 듯이 긴팔이 챙겨 입어야 하는 지경이 됐다.

가을이 오면 아직 겨울도 아닌데 벌써 한해가 다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육십을 향해 달려가는 나이가 언제 여기까지 세월이 끌고 왔는지 싶다. 예전처럼 몸의 날렵함이 무뎌지고 잠을 자고 나도 피곤의 찌꺼기가 남아 있는 것도 내가 함께 가는 나의 세월이 허름해 졌음이다.

살아 갈 날 보다는 살아 온 날이 많았는데 과거를 돌아보면 연속 드라마는 없고 토막토막 기억 뿐이다. 머리에 새긴 것은 잊어지고 가슴에 새겨진 뭉클한 것들만 생각난다.

그리고 한때 의롭다고 생각하고 행했던 일들이 지금은 왜 그랬는지 자문이 든다.

언젠가 한 선배가 그랬다. “나도 젊어서는 불의를 보고는 못 참았는데 나이가 드닌까 그 불의들이 타협이 되더라”고. 세월이 좀더 나를 깊이 데려오고서야 공감이 간다.

나도 한때는 그랬다. 비판이나 지적질이 이지적이고 정의라고 착각했다. 사회의 정의는 모두 지고 사는 냥 매스컴에서 떠드는 특정인물이나 지역 기득권을 두고 헐뜯고 회 뜨기를 좋아했다. 지역 신문을 한답시고 내가 아는 정보는 적은데도 굉장한 내용을 아는 것처럼 과장해 주도하기까지 했었다. 여기에 상대방은 각자 보고 들은 정보에 평가까지 더해져 우리와 아무 이해관계도 없는 그 특정인 생선회 뜨듯 발라졌다. 그리곤 때론 언쟁도 한다. 그것도 재미였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아는 것도 깊지 않으면서 잘난 체 하는 내가 싫다.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내가하면 에로스 남이하면 불륜이라는 ‘내로남불’ 뿐이다. 나는 과연 어떻길래 나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에게 확신을 하고 나쁜 평가를 내리고 있을까.

때문에 사람을 유난히 비판하는 사람에게 거부감이 느껴지고, 만나기조차 싫어진다.

이 같은 불편함과 거부감은 그 사람이 아니라 내 과거의 모습에 대한 부끄러움에서 기인한다. 이 말을 들은 지인은 우울증이라고 병원을 가보라는 충고를 한다. 여전히 그의 판단이다.

물론 불의에 대해 비판과 비평은 옳다고 본다. 그래서 지금도 지역신문에 끈을 내려놓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되는 곳을 안다. 상대방의 자존심이다.

<한비자>에 실려 있는 ‘역린(逆鱗)’의 고사다. 역린은 용의 목 아래에 있는 한자 정도 되는 거꾸로 난 비늘이다. 만약 이 비늘을 건드리면 그가 누구라도 죽음을 면할 수 없다.

역린은 오늘날로 치면 콤플렉스 곧 자존심이다. 따라서 이 곳을 건드리면 사람은 폭발한다. 과거에는 이를 무시하고 기사를 썼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펜대가 무뎌졌다고 평가한다.

신념이나 주관은 한 사람의 가치관을 말해주는 것으로 삶을 살아가는 목적과 같다. 그것에 상처를 받게 되면 누구라도 견디기 어렵다. 자존심 앞에서는 성인군자도 유치해 지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악덕의 행위는 지적하되 그 악덕을 가지고 자존심을 건들면 안된다. 반성하라면서 반성한 사람에게 상황이 되면 옛날에 그랬지 않느냐고 자꾸 허물을 씌우면 안된다.

충고는 어렵다. 특히 윗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해야 할 때는 반드시 해야 한다. “모르면서 말하는 것은 무지함이고 알면서 말하지 않는 것은 불충이다.” <한비자>에 실려 있는 글이다.

“충언은 듣기 싫지만 행함에는 도움이 되고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병에는 도움이 된다(忠言逆耳利於行 毒藥苦口利於病·충언역이리어행 독약고구리어병).” 고 했다.

신문쟁이지만 어떤 사항이나 사람에 대해 비평이나 판단 역할을 할 자격이 내게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요즘에는 편한 사람이 좋다. 이야기 하지 않아도 옆에 있으면 든든하고, 어른답지 않는 이야기를 하며 곧잘 웃는 그런 사람이 좋다. 훌륭하고 멋진 사람은 될 수 없어도, 적어도 더 나쁘고 심술궂은 사람으로 늙어가고 싶지는 않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