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상이군경회 무안군지회, 지회장 박 종 울

[무안신문] 지난 6월 26일부터 6월 30일까지 4박 5일 동안 항일운동 유적지 중국, 동북, 3성을 탐방한 바 있다.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옛 만주) 대한민국 상이군경회 전남지부(지부장 이연득) 인솔하에 실시됐다.

우리나라는 불행하게도 1910년 8월 29일 나라를 통째로 상실하여 국권을 일본에 강탈당한 치욕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소위 경술국치라고 한다. 그 과정에서 국내는 3. 1운동 등 말할 것도 없고 해외에서도 치열한 독립운동을 전개한 사실을 기록과 흔적으로 알 수 있다.

특히 안중근 의사는 그 당시 호족으로써 최고 상류층에 속했다.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위해서 고귀한 희생을 선택했다. 의병을 조직해서 그 수장이 되었고 우리나라 침략의 원흉인 이토오히로부미가 만주시찰을 위해서 하얼빈 역에 기착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역에 대기하고 있다가 권총 6발을 발사하여 즉사케 하였다.

그 후 일경에 체포되어 여순 감옥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나의 재판은 일본이 약소민족을 부당하게 침략한 원죄가 있으므로 정당방위에 해당하니 국제법상 위법성이 조각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일본 법정은 이를 묵살하고 사형을 선고하였다. 이 때 그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는 관속에 입고 들어가는 수의 한 벌을 들고 형무소로 면회를 가서 절대로 일본에 생명을 구걸하지 말라. 상고를 하면 1년은 더 살 수 있지만 나라와 대의를 위해서 사나이답게 당당하게 죽어라 하시면서 눈시울을 적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때 안 의사의 나이 32세 였다. 안의사 母子는 절세의 애국자요 위대한 혁명가였다고 중국의 국부라고 할 수 있는 손문도 칭송하였다.

또한 홍범도 장군의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 전사자가 시산혈하(屍山血河)를 이루었다는 기록의 현장을 보았다. 백야 김좌진 장군도 만석군의 아들로 태어나서 부족함 없이 살 수 있었으나 노비문서를 불살라 노예를 해방시키고 소작문서를 소각하여 토지를 소작농에게 조건없이 분배하였다. 대궐같은 가옥은 학교로 개조하여 교육장으로 활용하면서 민족 계몽운동을 전개하시다가 만주로 망명하여 그 유명한 청산리 대첩을 철기 이범석 장군과 함께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어 일본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그 후 독립군의 양성과 관리를 위해서 정미소를 운영하다가 박상실이라는 좌익계통의 불순분자의 흉탄에 42세를 일기로 순국하고 말았다. 안타까운 일이다.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독립운동가 윤동주 시인 등을 상대로 731부대에서 생체실험을 했다는 사실이다. 악성독균을 생산하여 2차 대전에 생화학 무기로 사용하려는 야만적인 행동은 아연실색할 따름이다. 참으로 모골(毛骨)이 송연(悚然)하다.

이는 제네바 협정에도 위반되는 반인륜적 만행이다. 그런데 같은 2차 대전 패전국인 독일은 반성하고 세계와 피해 민족에 용서를 구했지만 거꾸로 일본은 반성하지 않고 재무장을 꿈꾸고 있다.

최근 아베 정권은 갈수록 우경화 하면서 우리나라에 무역보복을 하고 있다.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다. 아마 우리 대법원에서 미쓰비시에 조선인 강제징용 9천 만원 신 일본제철에 1인당 1억 원의 배상을 판결하고 박근혜 정권에서 맺은 위안부 화해치유재단 해산 문제를 들고 나온 것 같은데 이는 몽리 부리는 것 같다. 그러면서 65년 한일협정에서 일괄타결 되었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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