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박금남

[무안신문] 대학시절 4학년 여름 어느 날 이었다. 문득 소록도(小祿島)가 가고 싶었다. 앞뒤 재지 않고 목포버스터미널에 가서 고흥행 버스표를 끊었다. 처음 방문하는 고흥은 꽤 멀었다. 고흥터미널에서 소록도를 가려면 녹동항 버스를 한번 더 갈아타야 했다.

녹동에서 바라본 지척의 섬이 사슴을 닮았다하여 소록도라 부른다고 했다. 수시로 오가는 철선을 탔고 소록도에 닿았다. 사고무친인 이곳에 아무런 지식 정보조차 없이 방문한 소록도는 외지인을 반겨줄리 만무했다. 일반인과 나인들의 생활구역이 분리돼 있었고, 나인들의 거주 지역은 초청이나 알음 있는 사람이 없으면 출입이 금지됐다.

무작정 방문한 곳이라 당연지사 나인들의 생활구역 방문은 허락되지 못했다. 허탈했고, 그냥 나오는 발걸음이 민망해 민간인 구역의 바닷가를 향했던 곳이 해수욕장 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해변에는 몇몇 안되는 사람들 중 함께 걷던 한 중년여성이 말을 건냈다. 무슨 일 때문에 왔느냐는 심문이다. 그들의 성역에 낯선 이방인은 금방 알아 차렸다.

자초지종을 듣고 나 같은 사람들은 많이 온다고 무안을 준다. 그리고 시험이라도 하듯이 나인들의 생활구역을 가보고 싶으면 내일 오란다. 전화번호와 이름을 알려주는 행운을 얻었다.

당시 소록도 내에는 숙박할 곳이 없어 녹동으로 나와 밤을 보내고 다음날 다시 방문해 그를 따라 통제구역을 넘을 수 있었다.

사람들을 빤히 쳐다보지 말라는 주의사항을 들었고, 병실과 화장터(만영당), 미첼천사 동상이 세워진 공원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한 기억으로 머물러 있다.

“우리나라에 공산사회가 있다면 이곳이 공산사회”라고 했던 말에 학교에서 반공으로 무장된 나로서는 공산사회 단어에 놀랐던 기억도 난다. ‘공동 생산 공동분배’ 공산주의 이론이 그대로 적용되는 곳이란다. 남의 것을 탐내지 않아 울타리가 없는 것도 특징이라고 했다.

바다 건너 육지 사람들의 욕심은 나인들을 두 번 슬프게 한다고도 했다. 나인들이 기른 가축이라며 헐값으로 매입, 육지에 나가서는 제 가격을 받고 판다고 귀뜸했다. 이곳을 떠난 자식들은 부모를 찾아오는 경우는 드물지만 부모들은 통장 하나씩 두고 자식들을 위해 푼돈을 차곡차곡 모은다는 이야기 등등.

내가 소록도를 가봐야겠다는 생각은 이청준 작가의 「당신들의 천국」을 읽은 후부터다. 취업 걱정이 컸던 때였고 당시 비빌 언덕조차 없었던 나로서는 불만의 표출 일환으로 모든 세상이 그들만의 천국으로 보였다. 그래서 책제목 「당신들의 천국」은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를 다룬 장편소설로 가슴에 깊이 새겨졌다.

나인들의 거주지 소록도 병원장으로 취임한 의사 조백헌과 나환자들과의 미묘한 관계, 권력과 자유, 개인과 집단, 사랑과 공동체 문제를 정신적 방황과 애환을 담아 실감 있게 묘사했다. 소록도를 주민소유의 농지를 만들고 육지와 섬을 연결해 나환자들의 천국으로 만들겠다는 명분으로 추진한 간척사업 과정에서 조백헌 원장과 이를 끊임없이 견제하는 이상욱 보건과장의 대립이 이야기의 큰 줄기다.

나인들은 처음 간척사업에서 자연과의 거대하고 지난한 싸움 속에서 손가락 발가락이 떨어져 가는 고통을 참고 전개된다. 그들의 천국을 만들기 위해서 였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상호 배신에 대한 두려움이 그들을 엄습하면서 일을 더디게 만든다. 결국 조백헌이 추진해 온 간척사업은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닌 조 원장의 천국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허울은 언젠가는 밝혀지게 된다. 요즘 정치인들이 부르짖는 포장된 립서비스가 그렇다. 국민을 위한다는 허울 쓴 복지정책, 경제정책, 민생을 위한다는 법들은 결국 그들의 정치 생명을 연장시키는 생존권 다툼 포장이라는 것이다.

20대 젊은 시절 보았던 그들만을 위한 정치판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여의도 국회의 말장난에 갇혀 있다.

20대 국회는 ‘막말정치’, ‘패싸움 정치’, ‘식상한 이념정치’ 그리고 ‘막장정치’로 국민들에게 사랑과 신뢰를 잃었다. 사랑과 신뢰없는 공동체는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건설되든 「당신들의 천국」 이다. 사랑과 신뢰만이 우리들의 천국이 될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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