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랑의 고전탐구(사자성어)-이화구화(以火救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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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의 고전탐구(사자성어)-이화구화(以火救火)
  • 언론인 이정랑(해제 출신)
  • 승인 2019.03.26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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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로 불을 끈다-⑬

[무안신문] ‘장자’ ‘인간세(人間世)’에 보면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하면서도 냉소적인 일화가 기록되어 있다.

안회(顔回-공자의 수제자)가 공자에게 하직 인사를 하니 공자가 물었다.

“어디로 가려느냐?”

“위나라로 가렵니다.”

“무얼 하려 거길 가려느냐?”

“듣자 하니 위나라 임금은 나이가 젊고 그 행동이 독재적이라, 경솔하게 백성을 부리면서도 잘못을 모르며, 죽은 백성들이 연못을 메울 정도로 가득하고 볏단같이 수북이 쌓여 있어 백성들이 어찌할 바를 모른다고 합니다. 저는 전에 선생님께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잘 다스려지는 나라를 떠나 어지러운 나라로 가라. 의사의 집 문 앞에는 환자가 많다.’ 제가들은 바를 실천하면 위나라를 고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허! 가봐야 잡혀죽지 않을까 걱정이다. 대저 도라는 것은 잡다해져서는 안 된다. 잡다하면 많고, 많으면 어지러워지고, 어지러워지면 걱정이 생기고, 걱정이 생기면 구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옛날 현자들은 먼저 자기를 세우고 난 연후에 다른 사람을 세우거늘, 하물며 자신도 세우지 못하면서 어느 겨를에 사나운 사람의 소행에 간섭한단 말인가? 그리고 덕이 혼란해지면서 지혜가 생겨나는 것을 아는가? 덕은 명예를 추구하면서 혼란해지고, 지혜는 다투면서 생겨나는 법이다. 명예는 서로 해치는 것이요, 지혜는 서로 다투는 기구가 된다. 이 두 가지는 흉기라 그것으로 사람을 이끌 수는 없다. 또 덕이 두텁고 신용이 확실해도 남의 기분을 다 맞추지 못하고, 명예를 다투지 않아도 남의 마음에 통하지 못하거늘, 인(仁)이니 의(義)니 법도(法道니 하는 말로 사나운 사람 앞에서 지껄이는 것은 남의 악을 핑계 삼아 나의 미덕을 과시하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 남을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이라 한다. 남을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은 그 역시 남에게 불행을 당하게 마련이다. 그러니 너도 모르긴 해도 남에게 불행을 줄 것이다. 또 진실로 그 임금이 어진 이를 좋아하고 불초한 자를 미워한다면 무엇 때문에 너를 등용해서 특이한 일을 하려 하겠는가? 너는 말하지 말라. 그 나라 왕은 틀림없이 남의 약점을 틈타 꼭 이기려 들것이다. 그러면 너의 눈은 현혹될 것이고, 너의 안색은 변할 것이며, 너의 입은 변명하게 될 것이고, 너의 기색은 공손해질 것이며, 마음 또한 그의 비위를 맞추게 될 것이다. 이는 ‘불로 불을 끄고, 물로 물을 막는 격이라.’ 이런 것을 ‘한 술 더 뜬다’고 하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이 ‘이화구화‘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이론과 실천을 보여주고 있다. 산불을 진화할 때 바람의 방향에 따라 맞불을 놓으면 그 불길이 약해진다. 사람들이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중에 이 ’이화구화‘도 점차 하나의 계략이 되어가고 있다. 지도자가 어떤 일을 성취하거나 어떤 사건을 막고 싶을 때, 정상적인 부드러운 방법으로는 여러 사람의 반발을 사는 경우가 왕왕 있다. 만약 대세의 흐름을 타고 행동하면서 어떤 인식과 행동을 극단으로 끌어올려 그 약점을 충분히 드러낸 다음 다시 그것을 바로잡으면 오히려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 있다. 이것이 대세의 흐름에 따라 이익을 끌어드리는 통치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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