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차용시의(借用猜疑) 시기심과 의심을 이용한다-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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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차용시의(借用猜疑) 시기심과 의심을 이용한다-⑨
  • 이정랑(해제 출신)
  • 승인 2019.02.27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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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해제 출신)

[무안신문] 저리자(樗里子)는 진(秦)나라 왕의 배다른 동생으로 장군에 임명되었고, 한때는 승상직을 맡기도 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이처럼 막강한 배후를 가지고 있던 저리자는 책사(策士) 장의(張儀)의 중상에 걸려들어 상당기간 국외로 망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의는 전국시대의 유명한 인물이다. 위(魏)나라에서 태어나 각지로 다니며 유세를 하다가 진나라 왕의 눈에 들어 재상이 되었다. 그러나 장의가 다른 나라 사람인 반면에 저리자는 진나라 왕의 동생으로써 상당한 권력을 소유하고 있었으므로, 중상의 기술이 높지 않으면 화가 역으로 자신에게 미칠 판이었다. 장의의 중상술(中傷術)은 시기와 의심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차용시의(借用猜疑)’라는 계략이다.

장의는 우선 저리자를 초나라 특사로 파견할 것을 건의했다. 국경을 접하고 있는 진나라와 초나라는 세력이 엇비슷해서 늘 밀고 당기며 다투는 사이였다. 얼마 전 장의의 계략 때문에 초나라는 진나라에게 두 개의 성을 빼앗겼고, 그 후 두 나라의 관계는 잔뜩 긴장되어 있었다. 저리자가 특사로 파견된 것은 이 일로 불편해진 두 나라 사이의 대립을 완화시키기 위함이었다.

저리자가 진나라의 특사로 초나라에 도착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초나라 특사도 진나라를 방문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특사는 진나라 왕에게 이런 말을 전했다.

“저희 왕께서는 저리자 선생의 인물 됨됨이를 매우 흠모하고 계십니다. 그분께 초나라 상국 자리를 마련해드릴까 하는데 허락해주십시오.”

특사의 이런 말은 적지 않은 파문을 물고 올 소지가 다분했다. 진나라 왕으로서는 초왕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 모두가 사실은 장의가 막후에서 조종한 결과였다. 장의는 저리자를 초나라로 보내는 한편 비밀리에 초왕에 대해 공작을 진행하여 “진왕에게 저리자를 초에 머물게 해달라고 요청하라”고 부추겼던 것이다.

초나라 사신이 도착한 후 장의는 진왕을 뵙고 이런 말을 했다.

“듣자하니 저리자가 특사로 초나라에 도착한 후 임무는 젖혀놓고 먼저 초왕에게 자신을 초나라에 남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합니다. 지금 초왕의 특사가 와서 하는 말을 보면 그 소문이 진짜인 듯합니다. 그가 만약 대의를 소홀히 했다면 우리 진나라를 초나라에 팔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 말을 들은 진나랄 왕은 크게 화를 냈다. 이것은 장의가 바라던 바였다. 저리자는 귀국할 수 없었고, 그 뒤 다시 다른 나라로 도망가야 했다.

장의의 중상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저리자에 대한 진왕의 경계심을 잘 이용했기 때문이다. 국왕의 형제가 국내외에서 이름을 떨치게 되면, 당시처럼 살벌한 전국시대의 상황에서는 국왕 자리가 언제 뒤바뀔지 모르는 화근이 될 수 있었다. 늘 이런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던 진왕으로서는 저리자가 잠재적인 근심거리가 안일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적국에서 그를 상국으로 삼겠다고 했으니, 경쟁의식과 불안감이 더욱 커질 것임은 빤한 일이었다.

기회는 대단히 중요하다. 기회가 오지 않으면 장작은 있는데 불씨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차용시의’는 적당한 기회를 포착하여 바람을 타고 불을 붙이는 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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