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농업연구소 정영호

[무안신문] 지난 여름 대산농촌재단 장학생들이 정은농원을 방문했다. 자급축산을 실현하는 정은농원 흑돼지사육과정을 견학하고 모아작은도서관을 방문해 교육문화공동체운동을 배우고 갔다.

그 당시 대산농촌재단 장학생들이 들고 왔던 현수막 제목이 바로 ‘우리들이 농촌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이다. 그 현수막을 보면서 가슴이 너무도 아팠다. 10여명 청년들이 농촌에서 농부로 또는 농촌의 지역민으로 정착하길 간절히 바라는 희망과 함께 현재 청년들이 도저히 정착할 수 없는 가슴 아픈 현실이 담긴 현수막이었다.

20년 전 이십대 후반 청년이 맨몸으로 농촌에 들어와 결혼을 하고 정착하는데 20여년이 지났다. 지금 거주할 집과 농지를 확보하고 농장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막대한 농가부채가 발생했고 여전히 행복하게 정착했는지는 의문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되돌아 다시 가라면 절대로 거부하겠다는 것이다.

요즘 농촌에는 일명 금수저라 불리는 청년농부들이 종종 보인다. 부모님이 대농으로 성공하신 분들의 자녀들이다. 축산을 크게 하거나 원예작물이나 수도작을 대규모로 짓는 분들의 자녀들인데 내가 겪었던 정착의 어려움을 모르고 정착해 나가는 것 같다. 농촌에서 살면서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주택이나 토지가 있는 친구나 선배들이 너무도 부러웠다. 어떤 이들은 자기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별거 안 된다. 하지만 내가 집과 터를 마련하는데 수억 원의 빚이 발생한 것을 돌이켜보면 별거 안된다가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된다. 그것이 있어서 출발하는 이와 맨몸으로 출발하는 이는 비교자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명 금수저 청년농부들의 농촌정착은 긍정적 측면 보다 부정적 측면이 많은 것 같다. 물론 부모입장에서는 농장과 가업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자연스런 과정이 되지만 대농 자녀들이 농촌으로 들어오면서 농장 규모는 더욱 커지게 되기 마련이다. 요즘 농촌에서는 규모가 커지는 만큼 소농의 퇴출이 불가피해지고 외국인 직원 및 농업노동자 수가 늘어나게 된다. 농민간의 빈부격차는 커지게 되고 마을공동체는 무너져가게 된다. 어찌 보면 대농의 성장은 공동체적 마을의 붕괴촉진과 새로운 회사구조 농장의 등장이라 할 수 있다.

미래를 고민한다면 새로운 흑수저 청년농부들이 농촌에서 행복하게 정착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인구가 늘고 마을이 살아나며 지역이 회복되고 없어져가는 학교를 살릴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정부정책 어디에도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없는 것 같다. 농업정책은 여전히 억대부농육성과 말도 안 되는 6차 산업 육성에만 매달리고 있다. 흑수저 청년농부들이 농촌정착에서 필요할 주거문제, 교육, 문화, 복지에 대한 문제는 아예 고민 대상 자체가 못되고 있다.

이대로라면 여름에 만났던 대산농촌재단의 귀한 장학생들은 농촌정착을 포기하는 것이 현명한 결정일수밖에 없다고 본다. 요즘 농업 문제에서 화두중 하나가 해남에서 시작되는 농민수당이다. 농민수당의 취지에는 백번 공감하나 지금 농촌에서 우리가 우선 고민해야 할 것이 청년의 정착이라고 본다. 농민수당문제는 전체농민을 상대로 하는 보편적 복지확대의 문제로 바라볼 때 지금 농촌의 인구 연령비 구성을 고려한다면 또 다른 방식의 노인복지사업의 일환이다. 이 예산으로 마을 청년사무장을 채용해 청년사무장들이 마을노인들의 복지·문화 활동을 돕도록 하고 마을에서 청년들에게 장기적으로 농촌정착을 준비해가게 만들어주는 것이 우선적이고 효율적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한마을에 지급될 농민수당을 합하면 청년사무장 채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나누고 함께하려 한다면 청년들은 다시 농촌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위정자가 이런 정책적 결정과 판단을 내릴 수 있을지? 막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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