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소강상태를 바라보는 안타까움(하)

[무안신문]

■ 미국은 민주당 때 전쟁이 더 많았다

사실 미국 민주당은 공화당보다 상대적으로 남북문제에 관한 한 열려있고, 평화를 사랑하는 정당이다. 하지만 크고 작은 전쟁 개입에서 보듯이 민주당 집권시절 전쟁이 더많이 일어나고, 공화당이 이의 뒷수습을 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민주당의 겉포장을 보았을 뿐, 깊숙한 속살을 보지 못했다.

가까운 예로 민주당의 오바마 8년동안 공화당 출신 아들 부시가 분탕질한 남북문제, 북미관계를 해결하지 못했다. 중동정책에 방점을 찍었다고 하나 북의 핵 완성이 턱밑까지 왔다고 난리가 났는데도 방임하고 외면했다. 그 앞의 민주당 출신 클린턴 대통령 역시 전보다는 진일보된 관계를 보인 것 같지만 내용적으로는 거기서 거기였다.

오히려 공화당의 닉슨 시절(1972) 7.4남북공동선언을 통해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3대원칙을 천명하는 박정희-김일성 성명이 나오도록 견인했다. 이는 노태우의 북방정책, 김대중-김정일, 노무현-김정일, 문재인-김정은의 남북공동성명을 훨씬 뛰어넘는 담대한 구상이었다. 상호 중상·비방·무력도발 금지, 남북한간 제반 교류의 실시, 적십자회담 협조, 남북 직통전화 개설, 남북고위급회담 구성과 운영, 합의사항의 성실한 이행 등 구체적인 합의내용으로, 이는 지금까지 남북교류의 바탕이 되었다. 이것이 46년 전 미 공화당 닉슨 대통령 집권시절 나온 성과물이다.

이런 가운데 미 공화당 출신 트럼프가 지금 독특한 카리스마를 통해 북미관계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그러나 그는 여러 가지 국내적 압박으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언론을 통해 북의 핵실험 가동 보도가 나오는 것도 예사로 볼 일이 아니다. 그것은 미국 네오콘이 정략적으로 흘리는 정보일 수 있고, 미국 정부에서 북한 압박용으로 흘리는 정보일 수 있다.

우리에게도 문제다. 미국 네오콘 못지않게 우리의 네오콘들도 남북관계가 실패하기를 바라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들은 평화보다는 긴장을 원하고, 긴장보다는 전쟁을 부추기는 집단이다. 그들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 이익을 전제로 세상을 보는 집단이다. 그래서 평화에 대한 담론보다 대결 대립을 앞세우고, 모함과 분열을 부추긴다. 여기에 말려들기를 도처에 덫을 깔아놓고 있다.

■ ‘평화가 밥’이라는 인식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부는 장단기 대책을 강구해 당당히 앞장서 나가야 할 것이다. 세부적으로는 미국과의 관계를 긴밀하게 해야 할 것이다. 단선적인 접촉이 아니라 복합적이고 중층적으로 인력풀을 가동해야 한다. 미국의 여론시장은 다양하다. 특정 대상만을 대상으로 해서는 안된다. 그중 언론대책이 시급하다. 언론을 활용하는 방안을 여러모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내의 언론환경도 우호적이지 않다. 상호 태생과 방향이 다르니 그럴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보수매체는 구체제의 냉전사고에 젖어있다. 따라서 빌미를 제공하지 말아야 한다. 빌미를 제공하지 않기 위해 관료사회는 법규에 충실한 것 같다.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이것을 크게 벗어날 수는 없지만, 그러다 보니 남북관계가 진척되지 않는다. 남북 문제는 상상력과 미래에 대한 담대한 청사진이 요구되는데, 몇걸음 앞서 나가면 당장 저항에 부닥친다.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빌미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안주하는 태도는 남북관계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근래 통일부가 조심스런 보폭을 유지하는데, 옛 관성대로 가면 변화를 추동할 수 없다. 영혼없는 자세로는 해결되는 것이 없다. 내 한 몸 다치지 않겠다는 조심성으로는 남북관계의 호기를 살려나갈 수 없다. 용기와 헌신성이 요구된다.

청와대는 콘트롤 타워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해당 기관과 유기적 소통과 정책 점검을 하고 있는가. 나태와 안주와 이완이 있으면 채찍을 가하고, 잘한 것은 더욱 잘할 수 있도록 지휘해야 한다.

다음으로 북한이다. 북한은 지도층의 의지와 결단만으로 정책을 일관성있게 끌고갈 수 있는 힘이 있다. 또 수십년씩 한군데서 일하는 전문성을 갖춘 테크노크라트들이 있다. 정권이 바뀌는 우리 사화와 확연히 다른 점이다.

그러나 거기에도 장단점이 있다. 다원성과 다양성의 결여가 자칫 교조주의로 흐를 수 있다는 점이다. 남한사회의 다양한 의사 분출이 오히려 경직성과 실수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북한은 유연성을 배워야 한다. 자기 것만이 옳고 정당하며 반드시 맞다, 라는 것도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북한이 고집부리고 억지를 부리면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가를 냉철하게 살피기 바란다. 문재인 정부에 협력하지 않으면 반사이익이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가. 반평화세력이 기회가 왔다 하고 기뻐할 것이다. 그래서 또 10년 세월을 까먹을 것인가. 남북이 공동번영할 수 있는 이 좋은 기회를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대처해주기 바란다. 이는 우리나 미국이나 다른 외세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남북은 ‘평화가 밥’이라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증명해보일 때가 되었다.

● 이 칼럼은 인터넷신문 breaknews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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