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 ‘풀뿌리 민주주의’ 여전히 요원
기업하기 좋은 환경 말뿐…‘민원 내면 찍히는 사회’
민선 7기 원스톱 서비스, 위민행정, 규제개혁…시스템 개선 시급

우리나라에서 지방자치제가 전면적으로 시행된 지 올해로 27년이 됐다. 하지만, 시민이 참여하고 주인이 되는 ‘풀뿌리 민주주의’는 여전히 요원하다.
막강한 권한을 가진 단체장은 내·외부의 적절한 통제장치 없이 각종 인·허가권을 휘두른다. 지방의회는 ‘거수기’ 노릇에 머물고 있거나 여전히 주민 대표 기능에는 크게 미흡한 실정이다.
이처럼 지방자치가 답보를 거듭하는 데는 주민참여가 미흡하고 내·외부의 적절한 통제장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다행히 민선 7기 들어 지자체는 부패척결을 통해 행정의 혁신을 이루기 위한 다양한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있어 기대감을 갖게 하고 있다.   (편집자주)

◇ “불이익 걱정에 건의 주저”

주민들의 가장 큰 행정 불만은 제때 해결되지 않는 민원이다. 어떤 규제가 문제이고 무엇부터 개혁돼야 하는지를 누구보다 피부로 느끼고 잘 아는 당사자는 바로 중소기업, 소상공인, 그리고 다양한 업종의 자영업자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행정의 보복이 무서워 할 말을 못한다.

“괘씸죄에 걸리면 지역에서 사업하기 어렵다”는 사업가들의 하소연을 종종 접한다. 담당 공무원과 틀어지면 그가 보직 바뀌기 전 까지는 많은 공을 들여야 하거나 그렇치 못할 경우 담당자가 바뀔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

행정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건설업체 A씨는 “민원처에 민원을 접수하면 해당부서로 이관돼 친분 있는 공직자에게서 전화가 오는 등 신분이 밝혀져 난감한 경우도 있다”면서 “정당하게 민원을 넣었더라도 담당자가 트집 잡고 법대로 허가 기간을 채우면 방법이 없다. 업자에게 시간은 돈과 직결 되다보니 쉽게 민원을 넣을 수 없다”고 말했다.

중소기업도 마찬가지다. 규제개혁 관련 민원을 제기하지 않는 데는 ‘어차피 해결되지 않는다’, ‘번거롭다’, ‘꺼림칙해서’ 등 스스로 포기한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인 B씨는 “지역에서 기업을 해 나가려면 언젠가는 행정과 만날 수밖에 없어 민원이나 선의의 건의조차 주저하게 된다”면서 “기업하기 좋은 환경조성을 말로만 하지 말고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이 마음 놓고 민원을 제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중소기업들에게는 기업호민관실(중소기업 옴부즈만)이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이 정부 규제 등에 민원을 내거나 이의를 제기할 경우 오히려 민원인에 대해 보복하는 일이 빈발하고 있다고 한다.

◇ 인사가 만사

군수가 군정을 운영하는 평가 중 하나가 인사다. 지자체 실시 후 능력 중심 및 타지역 공직자 승진 인사 등은 실제로 뒷전으로 밀려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무안군은 공무원 승진, 전보, 징계 등 각종 인사행정의 투명성 확보와 군수의 독선을 막기 위해 인사위원 9명 중 6명을 주민으로 위촉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외부 인사위원들이 단체장의 구미에 맞는 인사 위주로 포진돼 있어 인사위원회 자율심의권이 독립적으로 투명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군수 역시 승진 후보 7배수를 이용해 정실인사, 표심인사, 캠프인사, 측근인사 등으로 예측 불가능한 인사가 없지 않았다. 이는 행정의 발전을 저해, 복지부동을 가져왔던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단체장의 막강한 권한을 견제하기 위해 인사위원회가 독립성을 갖출 수 있도록 각계각층 외부인사 임기를 보장한다면 단체장의 전횡이 상당 부분 견제할 수 있다.

◇ 관급공사, 예산편성 투명성 높여야

무안군이 2006년부터 예산절감을 위해 ‘계약심사제’를 도입했고, 2008년부터는 예산편성 과정에 주민들이 참여하는 ‘주민참여 예산제’를 시행하고 있다. 행정자치부는 계약행정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2011년부터 1천만원 이상의 공사·용역·물품계약 관련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투명성을 높인다는 취지로 무안군은 건설공사 발주 전에 원가산정과 설계변경의 적정성 등을 심사해 절감한 예산을 지역경제 활성화에 재투자하고 있다.

우리나라 재정구조는 자치단체 예산 대부분을 중앙정부로부터 의존하다보니 단체장들이 책임의식 없이 예산을 방만하게 운용해 문제가 발생한다. 자치단체가 벌이는 각종 사업이 투명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내·외부 감사시스템 운영과 의사결정단계부터 시민이 참여할 때 지방자치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

◇ ‘복지부동’ 모럴해저드 위험 수위

공무원들의 뿌리 깊은 보신주의와 무사안일 관행이 굳어져 생긴 공직사회의 고질적인 병폐가 복지부동이다. 또한, 뚜렷한 이유도 없이 인허가를 거부하거나 민원서류를 장기간 방치하는 갑질 사례도 많다. 갑질이 임계치를 넘으면 민원인들이 파산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공무원의 갑질 행각이 가장 심한 곳이 인허가 부서다. 인허가 결정 때 중앙정부 유권해석과 법령 대신에 공무원 재량을 우선시한 탓에 민원인들이 골탕먹기 일쑤다.

공직자들이 주민반발을 지나치게 의식해 각종 인허가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일부 지자체는 적법한 민원을 불허하거나 아예 상급 자치단체에 떠넘기기 일쑤다. 특히 단체장들이 갈등을 우려해 인허가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보다는 주민 눈치보기에 급급하면서 결국 행정심판이나 소송으로 이어져 행정력을 낭비하는 결과도 낳고 있다.

자치단체의 행정심판 패소율(민원인 인용률)이 증가한데는 집단민원 등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인허가 문제 해결에 소극적 자세로 일관한 채 상급기관에 떠넘기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행정심판과 소송이 늘면서 그만큼 행정력 낭비로 이어지고 있다.

지자체들은 복지부동 등을 막기 위해 각종 대책을 만들었지만 대부분 요식행위에 그쳤다. 고강도 혁신만이 공직기강을 바로잡을 수 있다.

◇ 군수 치적쌓기 대형사업 혈세낭비

재정자립도가 낮고 매년 인구 감소로 인해 향후 미래재정 역시 불투명함에도 불구하고, 지자체들은 마치 중독된 것처럼 관광·문화시설 짓기에 올인하고 있다. 더구나 철저한 타당성 조사 없이 수익성이 떨어지는 사업에 손을 대면서 막대한 ‘재정 폭탄’의 후유증에 시달리곤 한다. 지자체들의 혈세낭비 대형사업은 단체장의 선심성 선거 공약용이나 치적쌓기용, 보여주기용에서 시작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 같은 사업 실패는 고스란히 주민의 고통이 된다.

따라서 사업 전에 타당성 사전·사후 심사 강화는 물론 단체장의 선심성 공약을 차단할 수 있는 법안 및 이를 폐기할 수 있는 조례 제정도 필요하다. 특히, 거액을 들여 관광문화시설을 건립·조성해 그로 인한 지역경제 파급효과를 과대포장 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 시설이 외지인을 끌어들여 인근 음식점, 숙박·편의시설 등의 매출이 상승하고 지역이미지가 개선된다는 막연한 추정을 갖고 ‘단체장 치적사업’을 강행하고 있다.

하지만 관광문화시설 적자가 매년 누적되면서 군 재정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이미 오랜 기간 운영돼 온 시설도 대부분이 적자인데다 향후 들어설 시설 역시 적자를 면하기 어렵다. 인구 감소, 고령화 등으로 복지·의료 분야의 재정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수익을 창출할 것으로 예상하고 투자한 관광문화시설은 지자체의 재정난만 가중하고 있는 것이다.

무안생태갯벌센터, 오승우미술관, 초의선사탄생지, 호담항공우주전시장, 회산백련지 등도 일례다. 문제는 현재의 적자구조에 상관없이 계속해서 인위적인 시설을 만드는데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려 한다는 점이다. 시설의 필요성이나 수요, 사업성 등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는 선거를 의식한 단체장의 치적쌓기나 의미 없는 시설 만들기 경쟁 등의 부작용이 결국 지자체 발목을 잡고 있다.

한때 지자체마다 불빛관광으로 루미나리에를 설치했지만 지금은 시들었고, 요즘은 우후죽순 캠핑장을 만들어 관광객 유입에 열을 올리지만 지역경제 기여도는 낮다. 또 이들 시설은 시간이 갈수록 노후화되고, 콘텐츠도 부실해져 추가 투자가 불가피하지만, 지자체는 신규 시설 건립·조성에만 관심을 보일 뿐 기존 시설의 보강·보완은 외면하고 있다.

◇ 지자체 입맛 맞추는 용역 안돼

지자체의 입맛에 맞게 ‘짜고 치는’ 결과 도출 용역도 이제는 개선돼야 한다.

지자체가 사업의 명분 쌓기용으로 용역을 발주하고, 용역을 수행하는 기관은 발주처인 지자체의 의견을 반영할 수밖에 없어 경제성 부풀리기가 비일비재하다. 어떤 사업이든 사업 시행에 앞서 사업 타당성 용역 등을 하지만 그런 용역의 전문성이나 객관성 담보가 안 된다. 객관성이 담보되지 않는 것은 민간업자의 탐욕이 용역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도시의 개발이나 계획, 기반시설 설치 등은 지역주민과 지역 전체를 두고 고민해야 하는 문제인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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