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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人材를 얻는 자가 天下를 얻는다(32)
조조(曹操)의 용인술(用人術)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마큼 탁월했다 (5)
2018년 06월 11일 (월) 09:11:19 언론인 이정랑(전 조선일보 기자 현 서울일보 수석 논 무안신문

   
[무안신문] 그런데 그 말을 마친 뒤 오래지 않아 병원이 도착했다. 그의 제자들이 병원이 왔음을 보고하니, 조조는 매우 놀라며 기뻐했다. 조조는 신발을 집어 들고 일어나서 멀리 나가 병원을 맞았다.

“현자는 진실로 헤아리기 어렵다고 하더니! 나는 그대게서 오실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는데, 멀리서 이렇게 자신을 굽히고 찾아오시니, 제 허전한 마음이 채워지는군요.”

병원이 술자리를 마치고 돌아가겠노라고 아뢰며나가자, 군대 안의 사대부 가운데 병원을 찾아 인사 올리는 자가 수백 명이나 되었다. 조조가 이를 기이하게 여겨 물으니, 이때 순욱이 자리에 앉아 있다가 대답했다.
“인사를 받을 만한 사람은 오로지 병원뿐이지요!”

이에 조조가 물었다.

“이분은 이름이 드높아서, 사대부들의 마음이 기울어진 것이겠지요?”

“이분은 이 시대의 뛰어난 분이며, 선비 가운데에서도 가장 절조를 지키시는 분이니, 공께서는 마땅히 예의를 다하셔야 할 것입니다.”

“정말로 내가 오랫동안 품어왔던 마음이오.”

이 일이 있은 뒤 병원에 대한 조조의 존경심은 더욱 깊어졌다.

병원은 비록 공직을 받았지만 늘 병이 있다는 이유로 집안에 누워서, 일도 하지 않고 얼굴도 드러내지 않았다. 이러니 부작용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명사 장범(張範)도 병원의 맑고도 고상한 삶의 태도를 배우려고 했다. 이러자 조조는 특별히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다.

“병원은 이름이 높고 덕망도 커서, 맑고도 반듯한 삶으로 세속을 멀리하여, 우뚝하니 솟아 내 임용에 따르지 않았다. 장 아무개께서도 그를 퍽 배우고자 한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그의 태도가 걱정된다. ‘처음 만든 사람은 부자가 되지만, 이를 흉내 내는 사람은 가난하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여기서 처음 만든 사람이란 병원을 가리키고, 이를 흉내 내는 사람이란 ‘장 아무개,’ 곧 장범을 가리킨다. 이는 장범을 간접적으로 비판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조조가 병원을 크게 치켜세우면서 존경하는 태도를 보였던 까닭은 그의 명성과 영향력을 이용해 더 많은 인사들을 끌어드리려는 데 있었다. 세속을 벗어나려는 병원의 맑고 드높은 태도를 사람들이 배우도록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조조는 인재에 대해 성심성의껏 예우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생로병사와 그들의 가족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돌봐주었다. 곽가(郭嘉)가 심한 병이 들자, 조조는 계속해서 사람을 보내 병세를 살피게 했다. 또한 가규(賈逵)의 목에 혹이 있었는데, 그 혹이 자꾸만 커지자 의사를 불러 떼어내도록 했다. 조조는 혹을 떼어내는 수술이 잘못되어 가규가 살지 못할까 봐 깊이 걱정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혹을 떼어내는 수술을 받은 사람 가운데 열의 아홉은 죽는다던데, 어찌하면 좋을꼬.”

한편 괴월(蒯越)은 죽기 전에 자기 가족을 조조에게 맡겼는데, 조조는 곧바로 그에게 회답을 했다.

“죽은 사람 다시 깨어난다고 하더라도, 산 사람은 (죽은 사람이 맡긴 일에 대해) 부끄럽지 않아라.” 나는 오래전부터 거두어 쓴 사람들에게 대부분 이렇게 해왔소이다. 괴월 그대의 혼에 영(靈)이 있다면, 역시 내 이 말을 들을 수 있을 거요.

『공양전(公羊傳)』 ‘희공(僖公) 10년’에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 하더라도 산 사람이 그 말에 부끄럽지 않다면 믿음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라는 말이 있다. 조조는 이 말을 가지고 괴월이 맡긴 가족을 잘 부양할 것을 약속했던 것이다.

낭중령(郞中令) 원환(袁渙)의자는 요경(曜卿)이다. 그가 죽었는데, 그의 집안에는 재산이 없었다. 조조는 두 차례나 명령을 내려 그 가족을 돌보게 했다.

부하가 죽게 되면, 조조는 언제나 가슴 아파했다. 특히 중요한 일을 했던 곽가와 순유가 죽자, 조조는 무척 애통해했다. 그는 직접 조문을 하고 봉읍을 보태어주고 그 혜택이 자손까지 미치게 했다.

조조는 정성을 다해 인재를 구했으며, 기뻐 맞아들였고,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돌봐주었다. 그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조조야 말로 인재를 알아주고 또 아끼는 지도자라고 생각하게 했다. 조조는 이리하여 일생 동안 많은 인재를 거두어들일 수 있었고, 인재들은 조조의 사업에 충성을 다해 지혜를 바쳤다. 조조가 적수를 이겨 북방을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