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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人材를 얻는 자가 天下를 얻는다 25
인재(人材)를 옆에 두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던 제갈량의 용인술(중)
언론인 이정랑(전 조선일보 기자 현 서울일보 수석 논설위원)
2018년 03월 06일 (화) 16:34:10 언론인 이정랑(전 조선일보 기자 현 서울일보 수석 논 무안신문

   
[무안신문] 하지만 제갈량은 위연(魏延)의 제안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융중대(隆中對-제갈량이 유비에게 말한 계획안으로서, 이후 삼국시대 때 촉나라의 대전략으로 기능했다)’에서 이미 제기했던, 두 갈래 노선으로 중원을 협공하겠다는 구상을 잊어버린 듯했다. 이처럼 위연의 적극적인 제안은 매번 제약을 당했으니, 그가 불만을 품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제갈량은 편견을 갖고 위연을 대했다. 이것은 그의 커다란 실수였다.

두 번째 원인은 소인배의 중상모략이었다. 이미 제갈량이 위연에 대해 선입견을 갖고 있고 그를 믿지 않는 상황이었으므로 중상모략이 쉽게 먹혀들 수밖에 없었다. 위연을 음해한 소인배는 그와 심한 갈등이 있는 자였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소인배가 제갈량과 친밀한 관계였으며 나중에 대권을 손에 쥔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이 자는 바로 양의(楊儀)이다. 《비의전(費禕傳)》 상편에는 위연과 양의 두 사람이 ‘서로 증오하고 매번 말다툼을 벌였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두 사람을 가리켜 ‘물과 불의 관계였다’ 고 묘사한다.

서기 234년, 제갈량은 마지막 북벌을 수행하던 중 병으로 쓰러졌다. 자신이 오래 버티지 못하리라 직감한 그는 위연을 따돌리고 몰래 양의, 비의, 강유 등과 철군 문제를 논의 했다. 그러면서 위연을 강등시키고 강유가 그 자리를 이으며, 혹시 위연이 따르지 않을 시엔 군대를 발동시킬 것을 결정했다.

제갈량이 이렇게 철군을 계획하긴 했지만 위연이 양의에 불복하고 그 지위를 거부하리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제갈량이 죽은 뒤, 양의는 쉬쉬하며 장례를 미뤘고 비의는 위연을 찾아가 의견을 물었다. 과연 위연은 다음과 같이 반응했다.

“승상이 죽었다고 해도 내가 있지 않소. 관속들을 시켜 장례를 치르고 내가 군을 지휘하여 적을 무찌르겠소. 한 사람이 죽었다고 어떻게 큰일을 포기할 수 있겠소? 나 위연이 어떤 사람인데 양의에게 밀려 뒷전에 선단 말이요?”

비의가 제갈량의 생각을 잘 설명해줬다면 위연이 지시에 따를 가능성도 꼭 없지는 않았다. 아무튼 곧 위연과 양의가 대립하면서 촉나라 군대는 한바탕 혼란에 휩싸였다.

전략에 있어서는 누가 옳고 그른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양의는 제갈량의 시신을 확보하고 왕이 하사한 보검을 지녔던 까닭에 그 자체로 정당성이 있었다. 이에 반해 위연은 반란군의 괴수로 몰렸다. 하지만 양의의 위연에 대한 태도와, 그가 나중에 보인 형태를 관찰한다면 어렵지 않게 그의 사리사욕과 야심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마대(馬岱)가 위연의 머리를 베어 바쳤을 때, 양의는 발로 밟으며 말했다.

“어리석은 놈, 다시는 악행을 저지를 수 없겠구나.”

사람의 본심이란 끝까지 지켜봐야 알 수 있다. 위연을 죽여 정의로운 기개를 떨친 양의는 바로 성도로 돌아왔다. 그는 큰 공을 세운 자신이 마땅히 제갈량을 이어 정권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중군사(中軍師)라는 높지도 낮지도 않은 관직에 임명되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양의는 후회하며 말했다.

“승상이 죽었을 때, 군대를 일으켜 위연을 따를 걸 그랬구나. 이제는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이 말속에서 국가에 대한 양의의 충성심을 어디 한 점이라도 찾아볼 수 있겠는가!

위연은 제갈량이 죽은 뒤, 일시적인 충동 때문에 대세를 그르쳤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논공행상이나 처벌의 문제를 따지려는 게 아니다. 문제는 위연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 수도 있었으며, 그렇게 된 원인은 전적으로 제갈량의 실책이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위연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으며, 위연 역시 제갈량 밑에 있으면서 자신의 재능을 다 발휘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인재 활용의 차원에서 본다면 제갈량은 조조에 비해 한참 뒤처져 있음을 보여준다.

마속(馬謖)을 참수한 사건에서도 제갈량의 잘못된 인재 정책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제갈량이 눈물을 흘리며 마속의 목을 벤 ‘휘루참마속(揮淚斬馬謖)’에서 아끼는 부하를 죽일 수밖에 없는 상관의 안타까운 심정 속에 그가 얼마나 법 적용에 엄격했던가 하는 측면만 보곤 했다. 혹은 자신을 최대한 낮춰 반성하는 그의 정신에 감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제갈량이 마속을 죽이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혹은 공을 세워 죄 갚음을 하게 하거나 전투 경험을 갖춘 대장으로 육성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품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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