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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탐방 - 현경면 수양리 수양촌 석북 두동 마을
2017년 11월 29일 (수) 08:54:11 무안문화원장 백창석 무안신문

   
[무안신문] ▲ 농민운동이 활발했던 팔방미인의 마을-수양1리 수양촌

수양촌은 수양1리에 속하는 마을로 무안군에서 발행한 마을유래지에는 지명의 유래를 ‘소를 기르는 곳이라 해서 <소양>으로 불렀다고 하나 그 이후 마을에 버드나무가 많아「垂楊村」으로 개칭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주민들은 마을 입구에 커다란 버드나무가 있어서 마을 이름이 그곳에서 연유되었을 것으로 생각하고있었다.

마을은 윗츰 아랫츰 함평골 노두께 등의 마을이 모여서 수양1리를 이루고 있으며 봉화대가 있었던 옹산을 주산으로 함해만을 바라보고 형성된 반도형의 지세다. 마을 주변이 모두 밭이어서 현경면에서는 마을 단위당 경지면적이 동산리를 제외하고는 제일 넓은 지역이다. 해서 주민들이 대단히 부지런하다. 마을 주변이 모두 농경지일 뿐 아니라 하우스재배 등으로 쉴 틈이 없기 때문이다. 마을 앞의 둑은 1970년대 아시아개발은행의 차관으로 막아 농지를 조성하였다.

   
▲ 수양촌 마을 전경

하지만 지하수가 개발되기 전에는 참으로 가난하게 살았다. 농지도 없을 뿐 아니라 주변이 전부 야산이어서 곡식을 재배할 땅덩어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둑막이 공사를 할 때 주민들이 가지고 간 점심은 대부분 대나무 도시락에 밀가루와 쑥을 버무린 것이 전부였다. 공사가 끝나고 오면서 먹는 주변의 소나무 송키와 띠풀이 허기진 위장을 채워주었다고 한다.

이 마을은 1970년대 80년대 농민운동의 발상지였으며 특히 1988년 전국을 뒤흔들었던 고추파동이 이 마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현실참여도 활발해 2000년대 들어서는 마을의 임원들이 대부분 여성들로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 마을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현재 무안군에는 여성 이장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다. 또한 마을 앞의 함해만과 접해 있는 보습 끝(지형이 쟁기의 보습 끝처럼 보여 주민들은 보시꼬치라고도 부른다)이라 부르는 곳에는 길이 20미터 폭 1미터가 넘는 패총 군락지가 있었다. 원래 원을 막기 전에는 현재의 상태보다 훨씬 많은 조개껍질들이 있었으나 파도에 패이고 깎여 많이 유실되었다고 한다.

주변에서 토기 조각 등도 발견된다.

마을 주변에 물 저장고가 많이 있다. 이 저장고는 2000년대 초 ‘밭기반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세운 것인데 지하수개발이 잘 된 지금은 애물단지로 전락해있다. 마을 주변에 저장창고가 많이 있다. 대부분 고구마와 양파 냉장고이다.

남아있는 지명으로 함평골이 있다. 함평골은 조선시대 이 마을이 함평현에 속했을 때 함평군수가 봉오제를 넘어 해제를 갈 때는 반드시 이곳에 있는 주막에서 머물다가 갔는데 이 주막이 있었던 자리를 말하는 명칭이다.

▲ 특이한 당산 관련 유래를 갖고 있는 감풀 마을-수양2리 석북

석북은 수양2리에 속하는 마을로 한자 표기는 石北으로 쓰기도 하고 席北으로 쓰기도 한다. 마을의 오래된 족보에는 石北으로 표기되었다. 席北이란 지명은 ‘또때’에서 비롯된다.

   
▲ 석북마을의 당산나무와 칼당산

石北은 쌀과 관련된 지명이다. 쌀을 세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는 홉인데 10홉이 모여 한 되[升]가 되고 10되가 모여 한 말[斗]이 되고 10말이 모여 한 섬[石]이 된다. 수양리는 봉오산(봉대산)의 줄기를 잇는 주변의 형세가 홉 되 말 섬의 모습을 이루고 있다. 그중에서 이 마을은 섬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마을이 북쪽을 향해 있다 해서 ‘石北’이라 칭한 것이다.

   
▲ 석북마을의 박노학
처음 이 마을에 터를 잡을 때는 마을 너머 함해만에 접해있는 淡拜峙(담배장이라 부르기도 한다)라는 곳이었다. 그런데 도적이 많아 도적을 피해 현재의 마을로 이주한 것이다. 광산김씨 족보나 진주강씨 족보에 나타난 淡拜峙의 지명이 재미있다.

마을의 당산나무 유래가 특이 하다. 당산나무가 마을을 둘러싸고 해안가를 향해 세군데 있다. 세군데 모두 각각 두 그루씩의 나무를 심었으며 곳곳에는 칼과 창 그리고 철퇴를 상징하는 돌이 세워져 있었다. 원래의 나무들은 두 아름드리가 넘는 나무였는데 오래 전에 태풍으로 쓰러져 고사되었다. 이후 주민들이 다시 나무를 심었는데 또한 두 그루씩 심어 관리하고 있었다.

마을유래지를 보면 ‘어느 무더운 여름날 마을이 형성될 때 도둑과 무서운 돌림병이 나돌아 마을은 하루 아침에 쑥대밭이 되었다. 주민 중 한 사람인 김영감이 꿈을 꾸는데 마을 태극당에 한 신령이 나타나 서쪽에 남신당과 남쪽에 여신당을 세워야만 마을이 해를 면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 말을 들은 주민들은 당산을 세우고 남신당에는 돌칼 여신당에는 돌창을 세우니 그 후부터 마을은 평온을 되찾고 전염병도 퇴치되었다’ 고 기록하고 있어 도둑 방지와 액막이용으로 나무를 심고 돌을 세우지 않았는가 여겨진다. 당산제를 지낼 때는 마을 위에 있는 철퇴당산에서 먼저 제를 지내고 화살당산 칼당산 순으로 크게 지냈으나 현재는 지내지 않고 있다.

예전에 이 마을은 얼마나 가난했던지 ‘이 마을 큰 애기는 쌀 서말도 못 먹고 시집간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마을 못지않게 경제적으로 안정 되고 여유가 있었다.

함해만에 접해있는 이 마을은 아늑한 만의 형국이어서 각종 어류의 산란장이었다. 주민들 말에 따르면 예전에는 건복(참복 큰복)과 장어 준치 덕자도 죽상어 돌고래 등등이 잡혔으나 현재는 구경할 수도 없다고 한다. 특히 이곳의 장어는 영산강의 구진포나 명산 장어의 명성을 얻게 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한다.

▲ 동구비 등 세 가지 특성을 갖고 있는 마을-수양3리 두동

두동은 수랑골 밤자골 한아지로 이뤄진 수양3리에 해당하는 마을로 죽산 안씨의 동족마을이다. 이 마을에 처음 들어온 성씨는 문씨였다. 그러나 지금은 한 세대도 살고 있지 않으며 그들의 흔적도 없이 구전으로만 전해지고 있다. 이후에 들어온 성씨가 죽산 안씨다. 경기도 파주에서 세거하던 죽산 안씨 중 일부가 임진왜란을 피해 충북 영동을 거쳐서 이 마을로 들어온 것이다.

   
▲ 두동마을의 죽산안씨제각

斗洞이란 지명의 유래는 지형이 마치 쌀을 세는 말[斗]과 같이 생겼다 해서 비롯된 이름이다. 쌀을 세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는 홉인데 이 10홉이 모여 한 되[升]가 되고 10되가 모여 한 말[斗]이 되고 10말이 모여 한 섬이 된다. 마을 앞에 세 개의 섬이 있는데 모두 쌀을 세는 단위와 관계가 있는 이름을 갖고 있다. 즉 소스랑섬이 소두말을 가리키고 되섬[升島]이 되를 가리키고 소스랑 섬 앞의 조그만 섬을 홉이라 한다.

이 마을은 세 가지의 특징이 있다. 하나는 마을 앞에 세워진 洞口碑다. 길이 180㎝ 너비 58㎝의 이 비는 마을의 입향조는 누구이며 어떤 성씨들이 함께 살고 있는가를 기록하고 있다. 1919년에 세워졌는데 입향조는 죽산안씨 안정후이며 진주강씨 광산김씨 김해김씨 수원백씨 파주윤씨 전주이씨 장수황씨 등 9성씨가 모여 화목하게 살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 두동마을의 동구비
두 번째는 주변 마을에서 말하는 가갸 거겨의 두동마을이다. 이는 주변에서 이 마을을 지칭할 때 부르는 호칭인데 이곳에서 글자를 배운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즉 일제 강점기 때 학교가 없었던 시절에 이 마을의 주민이 크게 서당을 열어 주변 마을 사람들에게 가갸 거겨 한글을 가르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세 번째는 당산제이다. 지금은 없지만 10여년 전만 해도 마을회관 앞에는 두 아름이 넘는 전나무가 있어 훌륭한 당산목이 되었다. 주민들은 이 당산나무 아래에 있는 제단에서 매년 정월 보름에 당산제를 지냈다. 거리제와 샘굿을 거쳐 걸궁까지 하는 당산제는 주변 마을에서 제일 크게 치르는 행사였다.

또한 음력 7월 15일 백중날 정오에 지내는 진세놀이가 있다. 주민 총회와 함께 열리는 이날은 마을의 안녕과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것만이 아닌 일종의 성인식이 열리는 날이기도 했다. 주민들 중 17세가 된 사람은 당산나무에 진세술(성인으로 인정 받는 술)을 올려 성인이 되었음을 고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런 의식을 거친 사람은 품앗이 할 때나 품삯을 정할 때 한 사람의 성인으로 인정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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