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소설가, 전 언론인, 해제출신)

[무안신문] 독도를 다녀오면서 자료들을 찾아보니 독도가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 고유의 영토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엄연히 존재하는 것을 일본이 부정하는 것은 일제 식민통치의 오만에서 비롯된 발상이다. 17세기 한일 양국 정부간 교섭(울릉도쟁계)과정을 통해 울릉도와 그 부속 섬 독도가 우리나라 영토임이 확인되었다. 1877년 ‘태정관 지령'을 비롯한 일본정부 공식문서에 나온 기록들이다. 대한제국은 1900년 ‘칙령 제41호'에서 독도를 울도군(울릉도) 관할구역으로 명시했으며, 울도군수가 독도를 관할했다. 그 이외에도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기록이 수도 없이 명시돼 있다. 2차대전 후 독도는 일제에 침탈당한 한반도와 함께 우리 영토로 돌아왔고, 이후 우리 정부는 실효적 지배로 확고한 영토주권을 행사해왔다. 따라서 독도에 대한 영유권 분쟁은 존재하지 않으며, 외교교섭이나 사법적 해결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주고 있다.

그런데 일본은 1905년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를 통해 독도를 자국 영토로 편입했다. 그것은 일본이 러일전쟁 수행과정에서 독도를 군사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취한 그들의 자의적 조치이며, 이후 우리나라는 일본에 전 영토를 침탈당한 상황이어서 독도영유권 주장 자체가 의미가 없었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제2조에서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포함한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 권원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라고 규정했다. 그 조항에 독도가 직접적으로 거명되지 않았다고 해서 일본은 독도를 자기들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한국의 3천여 개의 섬 중에서 몇 개만 예시적·상징적으로 열거한 것일 뿐인데, 그들은 독도가 명시되지 않았다고 해서 한국의 영토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빌미를 제공한 사람들이 있다. 역사를 통해 볼 때 지도층의 단견과 좁은 세계관이 그런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왜구의 노략질이 심하니 섬을 비우라고 지침을 내리니 주민들이 섬을 비우고, 그러다 보니 왜구들이 얼씨구나 하고 섬을 점령해버린 것이다. 대표적인 섬이 대마도다. 울릉도와 독도는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으니 무탈했지만 대마도는 공도정책(空島政策)으로 지정학적으로나 수산자원 측면에서 우리에게 절대적인 섬인데 일본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없는 것도 자기 것으로 만들어가는 제국주의시대에 우리는 우리 것도 지키지 못하고 놓치고 말았다. 하긴 나라 자체를 통째로 빼앗겼으니 무슨 말을 하랴.

그런데 울릉도에 가서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울릉도엔 여수 앞바다의 거문도 사람들의 집성촌이 있었고, 지금도 일부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어떻게 울릉도까지 진출했을까. 거문도는 바람이 드세고 박토의 땅이어서 풀 이외 큰나무가 자라지 못했다. 그래서 집을 지을 때 애로가 있었다. 인근 섬이나 가까운 육지에서 벌목을 해와야 하는데 임야 주인이 감시하기 때문에 벌목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울릉도엔 나무가 울창했다. 거문도 사람들이 그곳에 가서 나무를 벌목해 배를 만들고, 그 배에 나무와 고기를 가득 싣고와서 집을 지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어떻게 험한 파도를 타고 천리길도 넘는 울릉도까지 진출했을까. 춘삼월이면 동한난류와 동남풍이 불어서 거문도 사람들이 그 해류를 타고 울릉도까지 나아갔다고 한다. 그곳에서 헌 배를 버리고 새 배를 만들어 고기를 잡아 몇 달 뒤 만선을 이뤄 거문도로 귀향한다는 것이다.

이런 개척정신은 거문도의 뱃노래 ‘술비소리’에 그대로 녹아있다. 간다간다 나는 간다/ 울릉도로 나는 간다/ 돛을 달고 노 저으며/울릉도로 향해보면/고향생각 간절하다/고향산천 돌아오면/부모처자 반가워라/동네사람 반가워라/에이아라 술비야 술비여어....

거문도 사람들이 야산에서 자라는 띠를 모아 갯가에서 꼬기작업으로 밧줄을 만들면서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줄을 꼴 때 술술 비빈다고 해서 ‘술비소리’다. 이 노래가 사백년 전부터 전승되어 왔다고 하는데, 이때부터 거문도사람들은 동한난류를 타고 대한해협을 지나 울릉도까지 진출한 셈이다. 이런 진취적 기상을 조정이 막아버렸다. 왜놈의 침탈이 귀찮으니 섬을 비우라고 했으니, 참으로 한심한 지도층들이었다. 이 결과 독도영유권 문제도 시비대상이 되고 말았다. 그 자들이 거문도 사람들의 반에 반만 했어도 비참하게 나라를 빼앗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너무도 분통이 터져서 이 이야기를 중편소설 ‘거문도’로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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