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17.10.20 금 08:45  
> 뉴스 > 오피니언
   
이계홍 칼럼 ‘이 생각 저 생각’ - 숨쉬는 공간
이 계 홍(소설가, 전 언론인, 해제출신)
2017년 09월 28일 (목) 08:38:18 이 계 홍(소설가, 전 언론인, 해제출신) 무안신문

   
[무안신문] 소설가 박범신이 이끄는 충남 논산시 가야곡면 부적면 일원의 탑정호산책길 걷기행사에 다녀왔다. 내가 살고있는 세종시에 강연차 온 그를 만나 담소를 나누던 중 탑정호 걷기행사를 초대받아 찾은 길이었다. 그는 탑정호 주변 숲 한켠에 집필실을 마련하고 작품을 쓰는 한편으로 찾아오는 이들과 함께 탑정호 육십리(24km) 길을 순례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금강길 따라가는 문화예술 순례체험 ‘이제는 금강이다’ 의 행사도 이끌고 있었다. 탑정호 주변에는 계백장군의 유적지와 나당연합군과 대적해 싸운 황산벌, 수변생태공원, 돈암서원 휴정서원 등 명소들이 있었다.

박범신이 탑정호반에 정착한 것은 논산이 고향이라는 인연 때문이지만, 논산시가 풍광좋은 호수 주변에 고향 출신 한국의 대표작가에게 집필실을 마련해주고, 편안하게 글쓸 수 있도록 하면서 고향을 위해 한 역할 해달라는 홍보적 측면도 고려되었다고 본다. 박범신은 그를 찾는 이들과 함께 호수 주변을 걸으며 함께 어울려 담배를 피고, 식음료를 나누고, 물위를 걷듯 잘 조성된 데크 길을 걸으며 순례자들을 이끌었다. 확성기로 요란하게 안내하는 것도 아니고, 절도있게 움직이는 것도 아니었다. 걷기에 지치면 뒤처지고, 걸음이 빠른 사람은 먼저 가서 기다렸다가 함께 가고, 모두들 묵묵히 자유인의 기분으로 걸었다. 출신 국회의원, 시장과 공무원, 사진작가 시인 화가, 실업자라는 이, 농사짓는 이, 그리고 멀리 경기도 이천과 강원도에서 온 팬클럽회원 등 저명성과 익명성의 모든 이들이 층위없이 걸었다. 일주 코스가 길어서 이동버스를 타기도 하고, 농로와 야트막한 산길을 오르기도 했다.

집필실로 돌아오자 뜨락에서 작은음악회와 인문학강의가 열렸다. 박범신은 백제의 역사성, 탑정호의 유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신의 살아온 삶과 고향을 지키는 소회를 담담히 소개했다. 어느 누구에게도 스토리텔링이 없을까만, 아프고 신산했던 그의 성장기와 오늘이 있기까지의 과정을 거감없이 솔직하게 털어놓는 모습에서 같은 길을 걷는 나로서 감동을 받았다.

그는 최근엔 시를 쓴다면서 신작시 ‘길’이라는 자작시를 낭송했다. ‘당신과 함께 걸으면 먼 길이 가깝다/고요히 혼자 걸으면 가까운 길도 깊다’는 잠언시는 가슴에 와닿았다. 이런 시구절도 탑정호반을 걸으며 나온 영감의 소산일 것이다. 친구가 있으니 먼 길이 가깝고, 혼자 걸으니 단독자로서의 자기 세계관이 열린다는 사유체계는 평범하지만 울림이 있다.

인생이란 반드시 소멸의 과정을 밟는다. 박범신도 노령의 문앞에서 ‘틀어진 허리와 삭은 관절마다 한 생애가 아프게 저물고 있다’(머웃잎 따며)고 고백한다. 인생이란 자기존재로부터 부여받은 슬픔 그 자체라고 말하는 그의 이야기에서 우리 삶의 자세를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나는 과연 가치있게 살고 있는가, 가는 방향은 옳은가....

이 행사는 논산문화원과 충남문화재단이 그의 이름을 빌려 주관했다. 우리 무안도 이런 길이 있을 것이다. 긴 해안선과 갯벌길, 황토길, 영산강둘레길 등 어디에 내놔도 풍광 빼어난 길들이 있다. 몇주 전 고향 해제와 봉오제 황토길을 걸으면서 나는 소년기의 그리움을 만났다. 시간이 나는대로 그런 길을 걷고 싶다. 주최자가 있는 듯 없는 듯, 그러면서 마음 속깊이 공감하고 공명하는 순례길. 부담없이 가고, 혼자 걸어도 되고 수십명이 걸어도 편안한 길. 언제 나서도 좋은 길. 일부러 가꾼 길이 아니라 예전부터 있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이어질 길. 많은 예산 투입할 것도 없다. 산과 바다와 농로를 안내하는 표지판만 있으면 족하다. 사람들은 이제 뽄새나게 가꾸는 조형미에 지쳐있다. 눈 코 입술 등 얼굴 전반을 뜯어고치고 길 뜯어고치고, 그래서 모두가 하나로 표준화되는 것에 식상해있다.

요즘 귀농귀촌 붐이 일고 있다. 농업을 직업으로 선택해 정착하는 귀농과, 평화로운 전원생활을 하기 위해 돌아온 귀촌. 농촌에서 밥벌어먹을 사람은 그대로, 자유와 전원생활을 향유하려는 사람은 그대로 살아갈 수 있는 숨쉬는 공간으로 정책이 이어지면 좋겠다.

■ 무안(해제) 출생.

● 동국대 국문학과 및 동대학원 석·박사 수료.

● 동아일보 문화부차장, 문화일보 사회부장·체육부장, 서울신문 수석편집부국장

● 동국대 신문방송학과 객원교수 역임.

● 1974 월간문학 신인상 소설부문 당선(소설가)

   
전체기사의견(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회사소개개인정보보호정책저작권규약이메일무단수집거부광고문의기사제보사이트맵고객센터청소년보호정책
전라남도 무안군 무안읍 무안로 420, 2층 | Tel 061)454-5055~6 | Fax 061)454-5030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금남
Copyright 2008 무안신문 .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aisari@hanmail.net
무안신문의 모든 콘턴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 ·배포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