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환 시인
[무안신문] 찌는 더위와 습한 기운이 우리네 삶의 전면에서 요동을 칠 때 지치고 힘든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해봄도 좋을 것 같다.
전도서 1장1절에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도다.”하였다. 무엇이 헛된 것인가? 반문해 본다. 세상을 잘살았다고 하는 사람도, 힘들고 괴로움 속에서 어둠을 삼키며 사는 사람도 결국은 모두가 헛된 것이 아니겠는가?. 힘들어 버티기 어려워도 그 순간이 지나면 헛됨이요, 아무리 즐겁고 행복한 순간도 지나면 부질없는 헛됨이니 우리는 그냥 이 순간에 정해진 운명에 순종하면서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는 것이 정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모든 것이 헛됨인지 알면서 지금 이 순간 살아 숨 쉬고 있으니 이 또한 지나가리라 자신을 위로하면서 생각하면 조금은 힘이 생기고 활력이 생기지 않을 까도 생각해본다. 화려한 꽃들도 때가 지면 낙화하고 수명을 다한 꽃들도 향기와 열매를 남기고 제 명을 다하듯이 우리네 인생도 그러 한 것 같다. 모든 것이 다 그러려니 하고 생각하면 조금은 맘이 편하지 않을까?
‘득지본유 실지본무得之本有 失之本無’라 얻었다고 해도 본래 있었던 것이요, 잃었다 해도 본래 없었던 것이라 했다. 우리가 갖은 슬픔과 고독 외로움은 본래 있었던 것도 아니고 없었던 것도 아니니 그냥 그 순간을 잘 넘기면 되지 않겠는가? 이 모든 것은 시간이 흐르면 바람 같이 사라져 없어져 버린다. 솔로몬과 성철 스님이 죽을 때 하시던 말 같이 이 모든 것이 다 헛되고 헛됨이다. 그냥 이대로 현실에 만족하며 괴로워도 즐겁게 사는 순간 까지 그리 그리 사는 것이 생을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무리 짓 밟혀도 다시일어나 꽃 피우는 야생화도, 얼어붙은 땅을 헤집고 나와 여린 싹을 키우는 생명력 앞에 우리는 항상 염세적인 생각만으로 세상을 살아 갈수 없다.
그러나 억척같은 생명력이 윤회라는 수레바퀴에 얽히고설켜 헛됨을 알면서도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의 숙명이 아닐까?. 그 숙명 앞에 우리는 인간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생이 가야할 길이 결정 되는 것 같다. 또한 우리는 그 운명이 좋던 싫던 함께 하며 살아야한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피하지 말고 즐기면서 모두가 헛됨이요, 이 또한 흘러가리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더 편할 것이다.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것은 인간자신의 결정권 밖에 있다. 막 태어난 어린아이의 울음이 축복에 감사하는 울음인지 아니면 험한 세상에 태어남이 싫어서인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생명은 태어난 순간에 본인의 의도와는 다르게 행복과 불행의 삶이 항상 공존하며 운명이 결정된다.
운명도 변한다 했다. 운명의 정의는 주어진 환경과 상태 그리고 태어날 때부터 물러 받은 성질의 본질을 의미하는 것이고 본성을 바탕으로 성장하면서 나타나는 결과가 생의 길(道)이라 생각한다. 그러하다면 실(實) 생활주변의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에 따라 결론지어지는 운명이 바로 자신이 개척한 운명이라는 것이다.
주역에는 “경이직내의이방외(敬以直內義以方外)”라고 했다. 줄임말은 “경직의방(敬直義方)”이라고 한다. “공경하는 마음가짐으로 자신의 내면을 바르게 하고, 정의로운 행동으로 자신의 행동을 반듯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홍의장군인 곽재우의 좌우명(座右銘)이다.
우리는 후천적인 생을 개척하여 운명을 바꾼다면 바로 내면의 생각과 겉으로 나타나는 행동 들을 바로 정리해야한다는 것이다. 내면의 사고는 바로 윤리관에서 나타나고 바른 윤리관의 정착이야 말로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 될 것이다. 이 또한 헛된 것이라 생각할 때 그래도 살아가는 순간이라도 바르게 인간답게 인간으로 살아가다 저 세상으로 가야 마땅한 인간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이는 곧 자신에 대한 올바른 윤리 경영을 “경직의방(敬直義方)”의 가르침에 따라야 한다.
세상은 험난하고 자연 순수함으로는 살아가기에 힘이 든다. 이 힘듬을 이겨내기 위한 방편으로 인간은 악(惡하)게 변모하고 그 악함 속으로 변해간다. 이런 사회가 계속된다면 사회는 더욱 암울해지고 개개인의 삶 또한 처참한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우리는 전자에 말했듯이 이 모두가 헛됨을 알고 바르게 인간답게 자연 순수한 마음으로 살다 간다는 마음으로 생을 살았으면 하는 바램을 해본다. 그리해야 자신은 물론이요 후손들의 세상도 살아있는 동안에는 편안하고 잠시의 생이지만 안락한 삶이 되지 않겠는가?
이글을 쓰는 동안에도 글 자체가 헛됨이라 생각하며 내 생각의 본질이 바로 스스로 고통의 늪을 만들어 빠져 드는 기분이다. 이는 생각 자체도 없음이니 무아의 경지에 이르러 스스로 자연의 도를 얻음을 알았다.
힘들고 외로운 사람들이 고통의 시간을 즐겨야 하는 까닭을 알았고 고독한 사람들이 그 고독이라는 침몰수(沈沒水)에 흠뻑 빠져 들어야 다시 일어설 수 있음도 어렴풋이 알았다. 이모든 것이 헛되고 헛됨이니 너무 잘 난체 하지도 말고 너무 있다고 과시해서도 안 되고 못나고 가난하다고 자신을 기만하고 좌절해서도 안된다.
힘들고 외로운 사람들이여! 슬픔을 피하지마라 고독을 거부하지마라. 그리고 힘을 내라. 힘들고 외로워도 행복하다 말하라. 있는 자도, 갖은자도, 없고 굶주린 자도 모든 이들이 다 힘들고 외롭고 고독하다 말하니 삶이란 고해가 아니겠는가?. 그 고뇌 또한 헛것이고 헛것이니 살아 숨 쉬는 동안 즐거운 마음으로 즐기면서 인간답게 생각하고 인간답게 살아가라.
봄볕 따스한 날에 있고 없음을 떠난 버림의 철학 속에서 행복을 찾는 길이 최선이라 생각하며 사색의 창을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