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종합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류권호

[무안신문] 제목 그대로 우리는 누구나 슬픔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슬픈 마음이 든다면 근심스럽거나 답답하여 활기가 없어질 것이고 이를 우울이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누군가가 “슬프다, 우울하다”라고 표현한다면 주변의 반응은 어떨까? 대부분은 “힘내, 슬픈 마음은 떨쳐버려, 우울한 마음 갖지 말고 긍정적으로 생각해”라고 위로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슬픔, 우울한 마음은 꼭 떨쳐버리고 잊어버려야만 하는 것일까?

내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을 떠났다거나 사업에 실패했다거나 목표로 했던 일에서 좌절을 겪었을 때 슬픔, 우울한 마음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단언하건대 상실, 실패, 좌절의 고통을 이겨낼 수 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음을 맞이했다면 우리가 그 상황에서 웃고 기뻐한다거나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해서 그 상처가 치유되진 않을 것이다. 충분히 울고 슬퍼하고 상실의 고통을 느끼고 괴로워해야 차츰 차츰 그 상처는 조금씩 아물어간다. 장례를 치루고 나서도 가끔은 멍한 채 집중력을 잃기도 하겠고 한동안은 모든 일에 흥미나 의욕을 잃고 밥맛도 없어서 식사도 자주 거르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슬픔과 우울의 감정을 겪고 시간이 흐르다 보면 점차 현실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욕창이 있으면 새 살이 돋아나도록 매일매일 아프게 소독하고 오염된 상처를 긁어내야 하듯이 우리는 슬픔과 우울을 느끼며 상처를 회복해가고 이겨나가게 된다.

2015년에 개봉한 ‘인사이드 아웃’이라는 애니메이션 영화에서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다뤄진다. 이 영화에서는 자아를 구성하고 있는 마음들이 ‘기쁨이, 슬픔이, 버럭이, 까칠이, 소심이’라는 캐릭터로 표현된다. ‘라일리’라는 주인공이 외부세계를 경험하면 이 캐릭터들이 그 상황에 따라 작동을 하게 된다. 여기서 ‘라일리’ 라는 학생은 평화롭고 즐거운 일상에서 기쁜 마음으로 즐겁게 생활에 왔고 당연히 ‘기쁨이’라는 마음 캐릭터가 주로 작동을 해왔다. 그런데 낯설고 삭막한 도시로 갑작스럽게 이사를 가게 되었고 한순간에 가족, 친구, 익숙한 환경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슬픔의 감정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라일리’가 무기력해지고 우울하며 비관적인 생각만 하게 되는 것은 ‘슬픔이’ 때문이라며 ‘기쁨이’는 ‘슬픔이’를 구박하고 ‘슬픔이’가 작동을 못하게 막는다. 그러다가 결국 어려서부터 만들어져온 성격들과 자아가 무너져버리게 된다.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하는 부분은 사람의 감정은 ‘기쁨이’가 ‘슬픔이’를 억누르지 못했던 것처럼 스스로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 일어나는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것은 다른 감정으로 대체할 수 없다.

한편 우리 사회에서는 사회생활을 잘하려면 진취적이고 능동적이고 적극적이고 활발해야 한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다소 소극적이거나 자신의 주장을 잘 펼치지 못한다면 비난받기 쉽다. 기쁘고 긍정적인 것은 좋은 것으로 간주되고 슬프고 우울한 것은 부정적으로 인식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내가 우울증이 있다고 하면 부끄러운 것으로 생각되고 마음이 나약해서 걸리는 병으로 생각해버리게 되는 것 같다.

우울증은 10명 중 1명이 걸릴 수 있는 흔한 질병이다. 물론 우울증은 우울한 기분, 슬픔의 감정과는 다르다. 가장 큰 차이점은 우울한 감정의 지속성과 사회적, 직업적 역할수행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사망, 실패, 좌절 등의 어떤 특정한 상황으로 인해 발생한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라 하루 종일 우울한 기분이 2주 이상 지속될 때 또는 흥미나 의욕의 저하가 2주 이상 지속될 때에는 우울증이 아닌지 심각하게 고려해 봐야 한다. 예를 들면, 가정주부가 평소에 잘 해왔던 집안일을 못하고 무기력하다거나, 직장인이 의욕이 떨어져 일의 능률이 저하되고 결근도 잦아진다면 이 역시도 우울증이 의심될 수 있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처럼 슬픔의 감정도 꼭 필요한 것이긴 하나 위의 설명처럼 지나치게 된다면 그 때는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자. 슬픔을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우울증도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고 이는 그 사람의 마음이 약해서가 아니다. 그냥 감기에 걸리듯 그냥 병에 걸리는 것이다. 슬픔도 우울증도 부끄러워하지 말자. 아픈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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