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신문] 우리나라 법원은 3심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1심에서 억울하면 항소하고 2심에서도 안되면 대법원까지 상고한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언제부턴가 죄를 짓고도 권력자들은 죄를 낮추기 위한 생존권 수단으로 항소, 상고를 관행처럼 한다. 권력 연장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무죄가 아니면 죄가 감경됐다 쳐도 죄가 없어지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직위 유지만큼만 감경이 되면 권력자는 마치 죄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이 우리사회다. 반면 서민들은 변호사 비용이 없어 항소조차 못해 죗값을 그대로 받는 경우도 많다. 곧 죄를 돈이 감경함을 반증하고 있음이다. 이러다 보니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법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있다. 우리사회의 리더자인척 하는 정치인들의 문제는 ‘인정하고, 수용하고 내 탓이다’는 책임감이 없다는 점이다.

지난 10일 헌법재판소 재판관 8명 전원의 찬성으로 박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했다. 법의 엄정한 명령을 어기고, ‘최순실 국정 농단’에 개입한 말로다. 그 죄과를 떠나 4년 간 이 나라를 통치했던 대통령이었다는 점에서 보면 동정심이 일기도 했다.

그런데 이틀 후인 12일 청와대를 나와 민간인 신분으로 사저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일말의 동정심마저 사라졌다. 집앞 골목길을 메우고 태극기를 흔들며 연호하던 지지자들을 향해 박 전 대통령은 마치 개선장군처럼 차 안에서 손을 흔들었고, 차에서 내려서는 환하게 웃으며 지지자들과 악수를 나누었다.

그리고는 그토록 국민들이 듣고 싶어했던 ‘승복하고 지지자들에게도 화합을 요구한다’는 대국민 공식입장은 커녕 대리인을 통해 표명한 말은 이 나라 대통령이었다는 것을 의심스럽게까지 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는 짤막한 입장 표명은 헌재 결정에 사실상 불복하고 오히려 지지자들을 선동하는 듯한 태도는 치졸하기 짝이 없었다.

헌재가 주목한 부분은 대통령의 헌법상 ‘공무수행 투명성’ 의무였다. 대 국민 담화를 통해 검찰과 특검 조사를 받겠다고 약속하고도 지키지 않았고 청와대 압수수색을 불허했던 그런 행위들로 대통령이 지켜야 할 헌법적 가치가 훼손됐다는 판단에서 헌재는 파면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이 선고가 국론 분열과 혼란을 종식하고 화합과 치유의 길로 나아가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해 법치주의의 진정한 가치와 힘을 새삼 일깨워 주었다.

그러나 박 전대통령은 국민의 뜻을 끝내 저버렸고, 탄핵심판은 우리나라의 허약한 법치주의 치부를 그대로 드러냈다. 탄핵 찬·반 세력이 막말 시위를 벌이고, 정치인들도 막말 페레이드로 부채질하며 정치 후진국임을 자인했다. 이를 우리 국민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촛불 혁명으로 불의한 권력을 합법적 절차에 따라 무너뜨렸다. 지난해 10월29일 시작된 촛불집회가 지난 11일까지 20회에 걸친 집회 참가자 수는 전국적으로 1600만여 명으로 추산했다. 세계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성숙하고 명예로운 시민혁명이었다.

촛불은 언제나 위를 향해 타오른다. 지난 겨우내 매주 토요일 타오른 촛불은 분노한 민심이고 ‘법치와 민주’를 향한 타는 목마름이었다.

우리나라는 농경사회에서 이어진 산업화 사회는 가난 탈출이라는 지상과제 해결 명분하에 철저하게 자본논리에 매몰돼 왔다. 이 과정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디지털 세대들에게는 사회 속에 만연한 불공평과 가진 자들의 견고한 카르텔이 끝없는 좌절감을 안겼고, 불공정은 잠재된 화약고가 됐다. 그 도화선에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이 불을 붙여 폭발력은 촛불집회에 그대로 드러나 대한민국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온국민에 일깨워줬다. 헌재도 대통령의 가장 큰 덕목이 바로 헌법수호 의지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각 정당의 대선 질주가 본격 달아오르고 있다. 정치권이 당리당략만을 앞세우는 모양세는 과거나 별반 다름없다는 생각이다. 용들의 전쟁이라는 대선후보들은 용이 아닌 이무기들의 전쟁이다. 이들 이무기 중 한명이 용이 되어 임기를 다할 때는 결국 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국가와 민족, 지도자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한다. 지금 우리 국민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갈등과 대립의 상처를 아물게 할 치유다. 지난해 어느 영화의 한 소절인 ‘뭣이 중한디’라는 말이 페러디 된 적이 있다. 우리 앞에는 정경유착 고리를 끊기 위한 재벌 개혁, 선거제도 개혁, 국정 농단을 방임하고 은폐한 권력기관 개혁, 불통 정치 등의 숱한 과제가 쌓여 있다. 소득 불평등, 빈부격차 해소를 위한 경제 민주화와 복지 제도 정비도 시급하다. 탄핵 반대 측도 이제는 헌재 결정에 승복하고, 모든 국민이 분열의 종식과 통합을 위한 동력을 확보해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에 힘을 모아야 할 때다. 따라서 정치권의 책임있는 노력이 어느 때 보다 중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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