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신문] 잠자리에 누워 오늘 하루 동안 거짓말을 꼽아보면, 생각보다 많은 손가락이 접힌다. 오늘 만났던 사람들에게 알면서도 모른 채, 모르면서도 아는 채 하며 괜찮겠지 싶은 거짓말까지 합한다면 더 많은 손가락이 접힌다.

학교에서는 거짓말이 가장 큰 죄라고 배웠고, 진실을 정직이라고 배웠던 교육이었다.

그런데 바깥세상은 다르다. 요즘 대통령을 비롯해 그 측근으로 청와대에서 활동했던 사람들과 비선실세 최순실과 엮여 있던 사람들은 거짓의 극치를 보여준다. 자신이 행하고 벌인 일들을 국회 청문회에서 모두가 아는 거짓인데도 거짓말에 능숙한 그들이 국정을 이끌어 왔다는 데 화가 치민다. ‘모르쇠’로 일관하며 거짓말로 국민 감정까지 자극하다 보니 국민들의 가슴은 답답하다. 시간이 갈수록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고, 비리가 쏟아지니 너무 허탈하고 울화통이 터진다. 전문가들은 상실감과 무력감이 커지는 이런 현상을 사회적인 ‘집단 우울증’으로 진단하고, 최근 ‘순실증’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거짓말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 대어 사람을 기망하는 것이다. 거짓말을 듣는 상대방은 그 사람이 살아온 이력을 모른다면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할 수 있다.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직간접적인 부역자들이 거듭해서 키운 위악(僞惡)으로 나라가 망가지고 분노한 국민들이 거리로 나서고 있음에도 안중에도 없다. 우매한 백성들은 교묘하게 포장하고 속이면 넘어갈 것으로 믿었겠지만 침묵하면서도 이들의 행태를 지켜보던 국민들이 결국 촛불을 들고 국민의 목소리를 정치권에 반영시켜 박 대통령을 탄핵시켰다.

박근혜 대통령을 보면서 민주주의는 지도자가 될 사람의 교육수준, 경험, 사회공헌, 통치역량 등에 대한 진지한 검증 없이 투표로 지도자를 선출하는 허술한 정치체제를 실감했다. 대부분 대통령이나 정치인들은 이미지 정치 시스템 하에서는 인기 많은 사람이 지도자로 선출되곤 했다. 이들은 당선이 되고 나면 나라를 운영할 지식과 경험, 역량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고, 현 정부에서 민낯 그대로를 보여 주고 있다.

무능한 지도자에게 비선은 필수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박근혜정부를 통해 무자격자 민주주의의 극단을 목격하고 있다. 부족한 지도자를 무자격자 비선실세가 휘감아 흔들어 국가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린 상황은 우리가 목격할 수 있는 가장 충격적인 타락 정부의 모습이다.

‘멘붕’ 상태에 빠진 우리를 그나마 위로해 주는 것은 넘쳐나는 패러디와 신랄한 풍자뿐이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이 됐나”라는 대국민 담화를 놓고 온갖 패러디가 난무했다.

비선실세로 알려진 최순실 씨에 대한 기상천외한 패러디들도 많았다.

패러디(parody)란 내용이나 이미지를 변형·과장시켜 가치관의 허위를 풍자하고 폭로하는 수단이다. 상대를 조롱하면서 스스로 쾌감을 느끼는 것도 패러디의 묘미다. SNS 등이 발달하면서 전파력도 뛰어나다보니 패러디가 문화의 한 장르로 평가받고 있다.

‘최순실은 위대한 여인이었다’라는 글도 있다. 이유인즉 “일거에 국민통합을 이루고, 국민으로 하여금 박정희 망상에서 깨어나게 하고, 청와대 민정수석과 문고리 삼인방도 단숨에 제거하고, 대통령으로 하여금 국민 앞에 머리 숙이게 하고….”

역설적으로 보자면 그렇다. 촛불혁명 덕택에 5000만명의 눈과 귀를 가진 정보네트워크가 만들어졌다. 절제된 분노속에 성숙된 국민의식은 대통령이 하락시킨 국가 품격도 높였다.

박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지난 9일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국가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으로서 모든 권한 행사가 공식 중단되면서 언제 끝날지 모를 관저 생활을 시작했다. 사실상 유폐된 것이나 다름없다.

대통령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이유야 많지만 민심의 눈높이에 맞는 인재를 등용하지 못한 게 대표적이다.

공자는 백성들이 믿고 따르게 하기 위해서는 거직조저왕즉민복(擧直措猪枉則民服)을 해야한다고 했다. 논어의 위정(爲政)편에 나오는 말로 ‘정직한 자를 등용해 굽은 사람 위에 올려놓으면 백성들이 복종한다’라는 뜻으로 애공이 공자에게 “어떻게 하면 백성이 복종합니까?”라고 묻자 대답한 말이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님을 새삼 깨닫게 되는 작금의 현실이다.

박 대통령은 끝까지 대통령 권한을 내려놓을 생각이 추호도 없는 듯하다. 지금 우리는 민주화 이후 최악의 무자격자 민주주의를 체험하고 있는 셈이다. 분노가 치밀지만 추락하는 국제 위신과 그 속에서 침체되는 경제난을 겪으며 특검과 헌법재판소의 결과까지 인내하고 기다려야 한다. 성역없는 수사를 통해 관련자들을 처벌하고 해당되는 책임을 지도록 하는 정의가 실현돼야만 상처받은 국민들의 ‘순실증’은 치유되리라 본다.

작금의 우리 정부를 보면서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선출하는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원천적으로 무자격자 민주주의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포기하는데 동의하지 않는다면, 지금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그 폐해를 줄이는 일이다. 더 좋은 후보를 발굴하고, 엄격한 검증을 통해 무자격자, 자격 미달자. 이미지 정치인을 잘 걸러내 자격 미달자가 지도자로 선출되는 것을 막으면 된다.

이번 국정논단과 박 대통령의 고집스러움의 학습효과가 국민들로 하여금 헌법 절차나 정치 이론에 관심갖게 만들고 있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무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