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신문] 올 여름 날씨는 역대 가장 더웠다고들 한다. 밤잠을 설치는 날도 많았고, 가만히 있어도 등줄기에 땀이 났을 만큼 지친 여름날을 기억하면 덥기도 무척 더웠다. 때문에 사람들은 이 더위가 언제나 물러갈까 했다.

그리고 8월말 지역에 찔끔 비가 내리는가 싶더니 가을이 성큼 왔다. 이에 반가움보다는 오히려 날씨의 변덕을 탓한다. 하루아침에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느냐는 반응이다. 변화는 상대가 감응할 수 있는 시간을 주면서 서서히 이루어지는 것이 순리라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 사회도 급속히 발전한 산업화가 낳은 자본주의 산물로 사람들간 정이 사라지고 있다. 대화를 통한 소통보다는 끼리끼리 문화가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틀림’만 내세우며 포용사회가 희미해 지고 있다. 대화 단절로 절친이 사라지고, 장기적 경기침체로 인심마저 각박해 지면서 스스로 자신을 가둬둔 채 상대를 험담하고 편가르기에 열중하는 사회로 전락하고 있다. 곧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문화는 무늬로만 립서비스 소통단어를 동원해 치장하는 데서 기인하지 않나 싶다. 위로는 아름다운 말만 찾아 구사하는 앵무새 정치부터 시작해 정부의 지역차별, 그리고 지역내에서는 지자제 실시 후 단체장을 중심으로 한 기득권간의 존재감 지키기 싸움 만연이 원인 인 듯도 싶다.

오직 ‘틀리다’만 있고 상대를 인정하는 ‘다르다’는 소통은 많지 않다. 하지만 세상살이에 어찌 100% 옳고, 100% 틀린 것이 있을까.

우리사회는 기득권을 가졌거나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다르다'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들은 옳고 그름이나, 협상에 대한 판단을 할 때는 49 대 51의 원리를 먼저 떠올리고, 상대방 설득보다 내 사람 챙기기로 일관, ‘우리’와 ‘우리가 아닌 것’을 구분하고 경계부터 나눈다. 자신과 다른 것을 구분해 ‘우리’ 안에 포함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기도 하고 무시하고 깔보기도 한다.

이렇게 구분 짓는 습관이 차별의 시작이 된다. 때문에 우리의 토론문화는 10분만 이야기하다 보면 의견 절충이 아니라 싸움이 되고 만다. 의견을 조율하기 위해 대화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내가 옳았고, 당신이 틀렸음을 증명하기 위한 토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통에는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고, 잠시만 그 사람 주장을 들어보자. 그러면 내가 그에게 무엇을 더 주고, 내가 무엇을 받을지 알게 된다. 조율하기까지 각자의 노력과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서로 동의하는 순간 크고 멋진 일들이 일어난다. 그런데도 권력을 가졌거나 갑질의 사람들은 여유가 없다. 일방적인 지시같은 설명을 하고는 소통을 했다고 착각을 하곤 한다.

차별의 시작은 곧 기득권을 가진 사람이 자신이 가진 것을 지키려고 ‘틀리다’고 할 때 발생한다. 이는 상대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게 하고 잘못된 편견으로 차별을 가져오게 된다.

사회 여러 분야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기에 사람마다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갑과 정치인들이 늘 말하는 다양함이 존재하는 사회, 평등한 사회,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면 정책이나 제도로 차별을 없애는 일도 중요하지만 먼저 나와 다르고 낯선 것을 그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여유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상대가 '틀렸다'는 말보다는 서로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는 '다르다'는 말을 사용하다보면 소통은 저절로 이루어 지게 되어 있다.

한 사회에 ‘다양성’이 존재하고 발전하려면 나와 다르더라도 그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들과 공존해야만 내가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나를 구성하는 것 가운데 내 것이 하나도 없었음을 상기하면 더욱더 그러하다.

목표는 같지만 과정이 다를 수 있고, 과정은 비슷하지만 목표가 다른 경우가 많다. 서로 대화하지 않으면 상대의 의도를 알기가 어렵다. 무엇보다 틀렸다면 서로 주고받을 게 없다.

우리의 말에서 틀림보다 다름이라는 단어가 훨씬 많이 사용된다면 보다 배려하는 좋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다름'의 뜻에는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의미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국립국어원의 표준 국어대사전을 보면, ‘다르다’는 '비교가 되는 두 대상이 서로 같지 아니하다'이고, ‘틀리다’는 '셈이나 사실 따위가 그르게 되거나 어긋나다. 바라거나 하려는 일이 순조롭게 되지 못하다'로 되어 있다. 곧 '다르다'는 서로를 인정해 주는 것이고, ‘틀렸다'는 나는 옳고 당신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추석을 앞두고 모두 살기 어렵다고들 한다. 더구나 최근 김영란법 시행 확정으로 법이 시행되기 전이지만 벌써 농축수산업계는 경기가 썰렁해졌다는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김영란법 시행으로 연간 약 11조6천억 원의 경제적 손실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 정도의 내수 위축이라면 그렇지 않아도 침체한 경제에 큰 타격이다.

따뜻한 말이 필요한 시기이다. 갑질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다름을 인정하고 진정한 소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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