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등 농산물 줄줄이 폭락…작황 풍년에 소비둔화까지
올 쌀 생산량 정부 예상치 뛰어넘어…재고량 많고 소비량은 줄어
전남 농가부채 2013년 상승폭 전국 ‘최고’
농민들 “경영비 조차 못건져요” 한숨

[무안신문=편집부]농사를 지을수록 빚만 늘어나 ‘팜푸어(farm poor)’가 되고 있지만, 농가들은 뾰족한 대책을 찾지 못하고 때가 되면 벼를 심고, 양파·마늘을 심는 일반적 관행농업을 반복하고 있다. 그렇다고 대체작목을 찾아 재배를 한들 판로가 불확실해 작목전환도 엄두가 나지 않아 희망 없는 농사를 짓고 있다.

양파, 마늘, 감자, 고추, 배추, 깨, 콩, 쌀 등 주요 농산물 가격이 평년과 비교하여 갈수록 줄줄이 폭락, 경영비조차 건지기 어렵다는 게 농민들의 전언이다.

전년 농작물 가격에 따라 줄고 느는 재배면적과 기술마저 좋아져 작황까지 풍년 과잉생산으로 가격 폭락을 부채질하고 있는가 하면, 오랜 경기침체에 따른 소비감소까지 더해져 가격 폭락의 정도가 더욱 심하다.

올해 대풍으로 쌀값이 추락하고 있고, 과일 값도 마찬가지여서 풍년농사를 짓고도 농민들은 한숨이 나온다. 그나마 올해는 양파 가격이 나은 편이었지만 전국화 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내년도 양파가격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실정이다.

문제는 재배면적, 기상여건, 경기상황 등에 따라 농산물 가격파동이 주기적으로 닥친다는 데 심각성이 있지만 정부는 영구적 대책보다는 땜방식 정책을 펴고 있다는 것이다.

◆ 쌀농사 풍년, 재고량 많고 소비량은 줄어= 올해 전국 벼 재배면적이 작년보다 2% 줄었지만 날씨가 좋고 병충해·태풍 등의 피해가 없어 단위면적(10a)당 생산량이 520㎏에서 533㎏로 2.5% 늘어 풍년이다.

지난 8일 통계청과 농협 등에 따르면 올해 쌀 예상 생산량은 지난해(424만1000t)보다 0.4% 증가한 425만8000t이다. 전남 쌀 생산량 역시 지난 2003년 80만9201t에 비해 5.9% 늘어난 85만7224t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생산량은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지난해 1인당 쌀소비량은 65.1㎏로 2005년(80.7㎏)보다 19.3% 줄어 쌀 재고가 늘고 있다. 지난 9월 말 기준으로 쌀 재고는 136만t으로, 적정 규모(80만t)보다 약 56만t이 많다.

이러다 보니 쌀 가격이 내리고 있다. 현재 쌀 재고물량이 많은데다 소비량도 해마다 감소, 생산량이 증가할 수록 제값을 받지 못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쌀값은 지난 5일 기준, 80㎏당 14만400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최고 1만2000원(8.3%) 하락했다. 올해 쌀값 폭락의 한 이유도 정부가 밥쌀용 쌀을 수입하기로 한 것이 큰 요인이다.

전남지역 쌀값은 더 형편없다. 전남쌀은 현재 3만7476원으로 전국 평균 4만849원을 밑돌뿐만 아니라 충남(3만7179원) 다음으로 싸다. 전국적으로 가장 높은 강원도 산지 쌀값 5만667원에 비하면 1만4천원 가량이 낮다.

이렇게 되면서 농가들은 다가오는 년말 ‘빚' 걱정에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실제 지역 농민들이 쌀농사를 짓기 위해 구매하는 쌀 종자값만 40㎏ 한포대에 5만원선이다. 여기에 토지임대를 통해 농사를 짓는 이들은 토지임대료를 추가로 내야 한다.

쌀값을 결정하는데 농기계 비용이 포함되지 않는 것도 농민들에게는 부담이다. 농기계 중 땅을 가는 트랙터는 1억원, 모내기 이양기 3천만원, 수확에 쓰는 콤바인 1억원 등을 호가할 정도로 높다. 이 때문에 농기계를 구매한 농민들은 시작부터 2∼3억원의 빚을 떠안아야 할 지경이다. 여기에 모내기, 거름, 농약, 수확 시기마다 드는 인건비와 수확후의 건조비에 이르기까지 쌀 생산에 드는 비용도 만만찮다. 하지만 쌀값은 10년전 그대로다.

농민 A(45)씨는 “40㎏들이 나락 한가마니 생산 비용이 5∼7만원은 들지만 올해 나락값은 4만5천원으로 생산비용보다 낮게 책정됐다”며 “여기에 정부 수매 할당도 턱없이 부족해 농사를 짓고도 오히려 손해를 보고 팔아야 하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 도박이 된 농사= 올해 양파가격이 좋아 밭뙈기 거래도 마지기당(200평) 150만에서 200만원까지 팔렸다. 하우스 조생양파를 비롯해 일찍 생산된 조생양파는 망당(12kg) 1만원 이상도 나왔고, 지금도 양파가격은 높다. 하지만 농민이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상인들이 돈을 벌고 있다는 게 문제이다.

무엇보다 양파·마늘 수확은 인건비가 농가소득을 좌우한다. 양파·마늘 수확철에 무안지역 양파작업 인건비는 15만원대를 형성한다. 때문에 농산물이 과잉하면 인부를 동원해 수확하여 공판장으로 실어다 파는 것보다 산지 폐기 처분이 이익이 되다보니 농가들은 과잉재배되면 갈아 엎곤 한다. 인건비, 종자대, 비료 등을 제외하면 투자금도 회수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음 해에 양파재배가 줄지는 않는다. 오히려 재배 농가는 더 늘어나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는 농민들 사이에서는 2∼3년에 한번만 ‘대박을 터트리면 된다는 한탕주의 투기 심리가 한몫을 하고 있다. 여기에 양파 대신 심을 대체작물도 마땅치 않고 다른 작물에 비해 재배가 상대적으로 쉬워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특히,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도 뿌리깊게 자리잡은 것도 한몫 거들고 있다.

전남도가 매년 농가를 대상으로 재배의향조사를 거쳐 작물별 적정 재배량을 권하고 있지만 농민들 투기 심리를 잠재울만한 수준은 못된다. 대체할 작물을 제시하지도 못하면서 형식적인 ‘적정 재배량 권고’만으로는 농민들 마음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 갈수록 빚더미= 당연히 농산물가 하락은 농가의 실질 농업소득은 줄고, 부채는 크게 늘면서 농촌경제가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전남도의회의 ‘전남 최저가격 보장조례 시행방안에 관한 연구 보고’ 자료에 따르면 지난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이후 농산물 가격폭락이 구조화되면서 전국적으로 농업소득은 1995년 1047만원에서 2013년 1004만원으로 4.15% 감소했다. 물가인상률을 감안한 실질농업소득은 무려 68.05%나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농가부채는 지난 1995년 916만원이던 것이 2013년 2736만원대로 18년 만에 무려 134.72%나 증가했다.

농림식품부의 ‘2014년 농림축산식품 주요통계’ 자료와 통계청의 농가경제조사에 따르면 전남지역 한해 평균 농가소득은 3천400만원이고 부채는 2천700만원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8월말 농림축산식품부 농가부채 현황 분석자료에 따르면 전남지역 농가부채는 2012년 1천853만2천원에서 2013년 2천657만1천원으로 무려 43.4%(803만9천원) 급증, 농가부채 상승 폭은 전국에서 가장 컸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전체 부채규모는 19% 늘었고, 1가구당 채무는 평균 31% 급증했다. 특히 도내 농가부채 증가율은 37%에 달해 전국 평균보다 높다.

이는 전남이 논농사 중심인 점을 고려하면 벼 재배 농가의 경쟁력이 크게 약화했음을 보여주고 있어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때문에 빚더미에 눌려 금융권 대출금을 못 갚아 재산을 탕진하는 농가들도 속출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14년 8월말 현재 경매로 넘어간 전국 농가재산만도 모두 2,427건에 6,774억원 규모로 추정됐다. 여기에 가압류도 2,482건에 총 1,280억 원대에 달했다.

농민들은 생산비 증가, 판로 안정화에 필요한 기초 농산물 수매제 외면, 십 수년째 제자리 걸음인 쌀값 문제 등을 꼽고 있다. 무엇보다 흐지부지된 현 정부의 농가부채 동결약속 등 정책부실도 원인이다.

◆ 농가 10년간 49만명 줄고 고령농 44%=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 2월 발표한 ‘2015 농업전망’에 따르면 올해 농가인구는 전년(279만명) 보다 약 3만명(1.1%) 감소한 276만명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2024년 농가인구는 2014년보다 49만명 줄어든 230만명 수준에 이를 것으로 예측됐다.

전남도의 농가인구는 2013년 말 37만명으로 농가인구 감소율은 지난 1990년(108만명) 대비 23년 만에 무려 71만명(65.7%)이 감소로 9개 도 가운데 단연 1위이다.

65세 이상 농가인구 비율도 2013년 38.4%에서 2024년에는 43.8%로 5.4% 포인트 늘어날 것으로 점쳐졌다. 전남지역 65세 이상 농가고령화율은 2013년 현재 43.7%(전국 평균 37.3%)로 전국 9개 도 가운데 가장 높다. 농업에 종사하는 65세 이상 고령자가 2명 중 거의 1명 꼴인 셈이 된다.

농가호수는 2014년 112만7천가구에서 2015년 112만가구로 7천가구 줄어들고, 2024년엔 99만1천가구로 2014년과 비교해 13만6천가구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다.

평균 농가소득은 2011년 3천14만8천원, 2012년 3천103만1천원, 2013년 3천452만4천원으로 꾸준히 늘었지만, 평균 농가부채가 2011년 2천603만5천원, 2012년 2천726만2천원, 2013년 2천736만3천원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2013년 기준 경지규모별 농가부채는 0.5㏊ 1천600여만원, 0.5∼1.0㏊ 2천200여만원, 1.0∼1.5㏊ 2천700여만원, 1.5∼2.0㏊ 2천800여만원, 2.0∼3.0㏊ 2천800만원, 3.0∼5.0㏊ 4천300여만원, 5.0∼7.0㏊ 5천800여만원, 7.0∼10.0㏊ 8천600여만원, 10.0㏊ 이상 9천500여만원으로 경지규모가 클수록 농가부채의 규모 역시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전남지역 연간 농산물 판매액이 1000만원 미만인 농가는 11만여 가구로 전체 농가의 65.5%에 달했다. 반면 판매액이 1억원 이상인 농가는 3500여 가구(2.2%)에 그쳤다.

◆ 정부정책 불신= 농산물 값이 폭락하면 정부는 비축수매, 양파 산지폐기, 공직자 농산물사주기 운동을 펴고 있지만 가격 회복에는 한계가 있다.

FTA(자유무역협정),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등 경제협정에 따른 수입농산물의 국내 유입 급증이 농업의 소득을 떨어뜨리고 있다. 때문에 지역별 불균형을 최대한 줄이기 위한 기준과 원칙이 있고, 지자체와 함께 농작물 수급 안정을 위한 근본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농가 부채가 심각한데도 정부는 특별한 대책도 없이 FTA나 쌀 관세화를 통한 시장개방에만 몰두하다 보니 농가들은 당연히 정부를 향한 원성이 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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