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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유희(遊戱)에 포장된 상생(相生) 의미
2015년 05월 13일 (수) 09:25:34 박금남 발행인 무안신문

   
[무안신문]지난 주말 게으름을 피우다 해가 중천에 뜬 한낮 더위에 산을 올랐다. 당연히 산을 오르는 발걸음은 더딜 수 밖에 없었고, 두어 시간이면 일주하는 산행을 30여분을 더 걸려 하산했다.

특별한 약속이나 비가 오지 않으면 휴일 산행이 하나의 일과처럼 된 것은 40대 후반부터 인 듯 싶다. 집에 있어도 딱히 할 일이 없고 아이들은 휴일을 기다렸다는 듯이 아침부터 부산을 떨며 나간 휑한 집안에서 아내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자칫 말 한마디 잘못 붙였다간 말다툼이 될까 두려워 홀로서기에 노력한 결과 산행이 휴일 도피처로 삼았다.

그렇다고 친구를 불러 보내는 젊은 시절도 지난 만큼 물 한병 챙겨 인근의 산을 오르면 한나절 보내기는 안성맞춤이다. 무엇보다 남 보기에도 건강 챙기고 등산이 취미인 것 같아 가정내 가장의 초라한 눈속임 정도는 산행만큼 좋은 것도 없다.

처음에는 혼자가 멋쩍기도 했지만 한두 번 다니다 보니 남의 시선도 타지 않는다. 어쩌다 아내와 동행하더라도 대화 몇 마디 나누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걷다 보니 동행은 무늬에 불과하다.

산은 매번 오를 때 마다 다른 느낌을 주기 때문에 좋다. 오월의 나뭇잎은 아직 표피가 두껍지 않는 가냘픈 연두빛이어서 더욱 싱그럽다. 사계절이 뚜렷했다던 금수강산도 언제부턴가 봄이 왔는가 싶으면 여름일 만큼 오월 햇빛은 여름 땡볕에 버금갈 정도이다. 햇빛이 그리웠던 겨울산행에서 이제는 등줄기에 땀깨나 흘러 그늘이 더 애틋하게 느껴졌다.

한달 전만 해도 산 주인은 소나무였고, 산세를 가늠케 하는 산봉오리 주변 바위들도 활엽수림에 덮여 산 주인이 바뀌었다. 수북한 낙엽 밑에서 겨울을 견뎌낸 잡목들의 키 자람을 보며 걷다보면 내 존재감은 한 그루 나무만도 못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요즘은 눈 뜨고 귀를 열어 놓다 보면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세계 각국에서 시시각각 일어나는 사건사고들을 접할 수 있다. 매스컴 세상에서 만큼은 세상의 간극이 그 만큼 좁아져 있다.

문제는 대부분 뉴스가 사건사고나 연예인, 스포츠 영웅들로 꾸며져 단순화 된다는 점이다. 몇십명의 죽음은 사건 축에도 끼지 못한다. 최근 네팔에서 대지진으로 8천여명이 사망했고, 2만여명의 부상자가 속출했다.

대 재앙이고, 현재도 사고수습이 진행형이지만 우리는 곧잘 잊어버리고 또 다른 사건사고에 익숙해 진다.

곧 남의 아픔을 오랫동안 기억에 남길 만큼의 여유가 없을 만큼 세상은 또 다른 화제 거리를 제공한다. 이 과정에서 날이 새면 또 하나의 인터넷 신문들이 생겨날 만큼 밀려나는 매스컴은 경쟁적으로 제목부터 더 선정적인 단어 구사로 유혹하고, 거기에 현혹되는 우리는 본디 거짓에 더 관심을 갖는다는 것도 반증한다.

그도 그럴 것이 좋은 말은 이미 성현들이 모두 기록해 둔 글을 도용한 언어 유희, 곧 디자인 포장된 감언이설 말장난 시대에 살고 있다.

요즘 경기침체가 길어지면서 화두가 되고 있는 상생(相生)이란 말도 그렇다. 상생은 너도 살고 나도 살자라는 상호 Win-win으로 너 죽고 나 죽자의 반대 개념이다. 비슷한 말로는 공생(共生)이나 공존(共存)이 있다.

공생은 악어와 악어새 관계처럼 서로 해치지 않고 부족분을 채워가며 더불어 같이 산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들 단어는 포괄적 의미에서는 같은 뜻을 지녔지만 상생은 서로가 이익을 취하고 발전을 도모한다는 의미가 커 공생이나 공존보다 우리 사회에서 더 필요한 덕목이다.

노자의 도덕경 상편 제2장에는 ‘유무상생(有無相生)’이란 구절이 나온다. 있음과 없음이 서로 함께 사는 화합의 정신을 강조한 노자사상의 하나다. 이분법적 사고에 사로잡혀 좋고 나쁨을 구별하는데 급급한 현대인들이 되새길 경구다. 미래학자들은 지난 세기가 갈등과 대립의 연속이었다면 21세기 인류를 이끌 지침은 상생으로 보고 있다.

요즘 우리 사회는 내가 살아야 너도 산다는 생각, 공존은 하되 상생은 바라지 않고, 내 잘못은 너 때문이라는 흠집내기, 무슨 일을 하든 안된다부터 출발하는 인식이 팽배하다. 이들 말장난이 결국 지역 발전을 가로막는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

우리지역이 최근 남악에 들어서는 대형쇼핑몰을 두고 찬반 논쟁이 점입가경이다. 인접한 목포에서 상인연합회는 물론 정치인들까지 나서 상권 쏠림 운운하며 입점을 반대하며 브레이크를 걸고 있다.

그러나 대형쇼핑몰 입점은 흐름으로 적법한 절차에 따른 인허가는 불가피하다. 만약 인허가를 해 주지 않는다면 상대는 행정소송을 할 터이고 패소할 경우 무안군은 혈세만 축내게 되어 있다. 때문에 무조건 반대보다는 지역의 자금이 대도시로 흘러가지 않고 지역에 재분배될 수 있도록 상생 묘안을 찾는 것이 찬반 갈등을 막을 수 있다.

입점 찬성측은 현재 무안에는 무안국제공항 활성화를 위한 KTX 경유와 광주공항 국내선 이전문제 등 공동 상생을 위한 큰 틀의 현안문제가 많다고 주장한다. 이들 문제는 수수방관한 채 목전의 피해만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반박이다.

과거에는 여러 사람이 때로 움직이면 법보다 때 법이 통한 시대도 있었다. 말장난으로 판단을 흐리는 그런 시기도 지났다. 공존, 공생, 상생하는 방법, 내가 살면 너도 살수 있다는 언어유희 말장난보다는 함께 살아야 나도 산다는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 특히 상생은 내가 조금 손해 볼 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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